제3의 침팬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 문학사상사 / 199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추천사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있다. “무엇이 인간에게 종교와 문명을 건설하게 하고, 언어를 발달시키고, 우주를 여행하게 만들었으며, 무엇이 인간에게 이 모든 업적을 하룻밤 사이에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는가?”  이 책은 바로 이 무엇에 대한 탐구에 있다. 저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중에서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파괴하는 능력에 대한 두려움이 책의 저술 동기라고 밝히고 있다. 동기는 물론 그렇지만 책이 다루고 있는 영역은 훨씬 더 광범위하다. 제3의 침팬지에 불과하던 인간이 왜 그토록 특별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었던지를 저자는 온갖 영역의 연구결과를 동원해서 입증하려고 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학자로서 그야말로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다. 대학에서는 생리학을 전공해서 지금은 캘리포니아 의대에서 생리학 교수로 있다. 어릴 때부터 새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뉴기니에서 새를 관찰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연구 영역이 더 확대되었다. 그는 뉴기니 새의 관찰을 통해서 조류생태학, 진화론, 생물지리학을 제2의전공으로 삼게 되었다. 뉴기니는 그린란드에 이어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섬이다. 현재 세계 언어의 5000개 중에서 1000개 정도가 뉴기니에 있다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부족이 모여 사는 특이한 섬이다. 브라질의 아마존강 밀림과 비슷하게 인류학자들이나 생태학자들에게는 연구의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이룬 연구를 기반으로 해서 인류사의 다양한 영역으로 관심을 확장해서 이와 같은 저작을 출판하게 되었다.   

책은 5부 19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제1부 '인간은 대형 포유류의 일종'에서는 인간이 왜 제3의 침팬지인지를 밝히고, 4만년전에 일어난 인류사의 대약진에 대해서 다룬다. 제2부 '이상한 라이프 사이클을 가진 동물'에서는 인간의 성행동의 진화와 자웅도태, 인종의 기원 등에 대해서 다룬다. 제3부 '인간의 특수성'에서는 인간이 가진 문화적 특징인 언어,예술,농업,약물남용 등에 대해서 다룬다. 제4부 '세계의 정복자'에서는 인간문명의 발달속도가 지역에 따라 달라진 이유와 종족학살성향에 대해서 다룬다. 제5부 '갑자기 역전된 진보'에서는 인간에 의한 멸종, 문명의 붕괴 등에 대해서 다룬다. 이 책은 1991년에 영국에서 초판이 나왔다. 이 책에는 이후에 펴낸 그의 저작의 원료가 다 들어있다. 2부 내용은 1997년에 나온 <섹스의 진화>에서 더 심화된 형태로 발전했다. 3,4부는 1997년에 출판된 <총균쇠>에서 더욱 깊이있게 다루게 된다. <총균쇠>는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5부는 2005년에 나온 <문명의 붕괴>에서 더욱 방대한 내용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책 제목이 재미있다. 데스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에서 느낀 대목과 비슷한 충격을 느낀다. 인간은 동물분류에서  세 번째 종류의 침팬지라는 이야기인데, 이 대목은 분자생물학자들이 밝힌 바에 기인하고 있다. 인류를 원숭이, 고릴라, 오랑우탄 같은 동물들도 포함되는 넓은 의미의 유인원이라기보다는 유인원 중에서도 고등한 종류에 유인원인 침팬지에 속하는 종이라고 보는 것이다. 침팬지는 공통적으로 꼬리가 없다. 인간도 그렇다. 이것은 진화의 역사에서 침팬지가 갈라져 나오면서 생긴 현상의 하나다. DNA 분석결과 인간은 일반 침팬지, 피그미 침팬지와 유전형질의 98.4%가 같다. 다른 점은 1.6% 정도다. 이 1.6%에서 많은 차이가 발생한다고 본다. 직립자세, 커다란 두뇌, 말하는 능력, 숱이 적은 체모, 독특한 성생활 등 인간특유의 속성이 이 1.6%에 있다. 분자생물학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인간은 700만년 전에 침팬지에서 분화되어 독자적인 진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네안데르탈인 같은 종류들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조상들이다. 현생인류와 해부학적으로 똑같은 종류는 크로마뇽인이다. 크로마뇽인은 4만년전에 등장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크로마뇽인이 멸종시켰을 가능성이 많다.  

인류역사에서 4만년전부터 일어난 일을 대약진이라고 보았다. 똑같은 구석기시대이지만 네안데르탈인의 석기와 크로마뇽인의 석기는 질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대약진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을 음성언어의출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다르게 해부학적으로 보았을 때 구강구조가 다르다. 거기서 언어의 혁명, 다양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지능적으로도 놀라운 발전이 일어났을 거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인류가 가진 독특한 성행동양식이 가져온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예로 드는 것이 일부일처제에 의한 혼인과 동시에 존재하는 혼외정사의 문제, 여성이 50세 무렵에 폐경을 가져온 문제 등이다. 인종이 다양해진 이유를 자연토대가 아니라 자웅도태(성도태)로 보는 점도 인상적이다. 자웅도태의 문제를 처음 제기한 학자는 다윈이다. 현대과학에 끼친 다윈의 영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그 정도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상 각 장 하나 하나가 책 한 권에 해당하는 분량이 된다. 인간의 문제를 모든 영역에서 걸쳐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 인간에 의한 멸종과 종족학살의 문제는 워낙 많이 접하다보니 그렇게 새롭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영역은 언어와 예술의 기원문제, 뉴기니 탐험사였다. 새로운 언어의 출현 과정을 2단계로 나눈다. 피진이 1단계, 크레올이 2단계다. 외국인 통치자와 노동자 사이에 서로의 모국어를 고수하면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피진이라는 언어가 생겨난다고 한다. 조잡하고 단순한 피진의 단계에서 크레올이라는 언어가 생겨난다. 크레올은 좀더 복잡해진다. 언어의 크레올화 과정은 17-20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언어진화에 관한 자연적인 실험이다. 주로 유럽에 의한 세계의 식민화 과정에서 생겨난 현상이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언어중에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의 언어가 바로 인도네시아어라고 한다.모든 크레올 언어들은 문법적인 유사성을 가진다고 한다. 이것을 저자는 인간의 언어본능과 연결시켜서 이해한다. 촘스키가 밝힌 것처럼 인간의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뇌 속에 내장된 '보편적인 문법'을 가지고 태어난다. 인간의 아기는 만 4세 정도만 넘기면 한 언어의 문법을 거의 완벽하게 익히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뇌 속에 보편문법이 들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전 세계의 크레올 문법이 비슷하게 되는 것을 보고 저자는 인간의 뇌 속에 들어있는 보편문법이 크레올적인 것이라고 결론내린다. 여하튼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게 언어와 예술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영역의 본질에 속한 것이 바로 언어, 예술이기 때문에 이 분야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성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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