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지구의 역사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브라이슨이 바친 헌사가 없었다면 이 책을 끝까지 붙들고 읽긴 힘들었을 것 같다. "놀라운 역작. 리처드 포티는 그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최고의 과학 저술가이다." 이 헌사를 표지의 제목 위에다가 붙여 놓았다. 그만큼 글쟁이로서 브라이슨이 우리 독서계에서 신망을 얻고 있다는 소리겠다. 책은 부록을 빼면 모두 510쪽 분량이다. 글자는  빽빽하고, 종이는 얼마나 무겁고 두꺼운지. 지질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책으로는 처음 접해서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힘들었다. 보통 책은 한 시간에 50-60쪽은 나가는 편인데, 이 책은 한 시간에 평균 40쪽도 나가기 힘들었다. 지질학을 공부하는 학생같은 심정으로 읽었다. 300쪽 정도를 읽고 나면 반타작은 한 셈인데, 솔직히 그 정도에서도 그만 내려놓고 싶어졌다. 정말 모르는 분야가 너무 많았다. 지질학에 대해서 아는 지식이라야 화강암, 현무암, 판구조론, 맨틀, 화산, 지진 정도인데, 글쓴이는 지질학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해서 이야기해주고 있으니 어찌 쉽게 따라가겠는가? 정말 코뚜레 꿰인 심정으로 따라갔다. 그렇지만 번역은 매끄러웠다. 번역자인 이한음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단지 책이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웠다. 다 읽고 나서 돌아보니 정말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질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이제 겨우 눈을 뜬 느낌이다. 이제는 나도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지질학에 대한 놀라운 역작이다. 리처드 포티는 탁월한 과학저술가이다.  

원작은 2004년에 나왔고, 번역본은 2005년에 나왔다. 원제는 <Earth : an intimate history>다. intimate는 영어사전에 찾아보니 '친밀한, 은밀한, 지식에 정통한'의 뜻이 있다. 세 가지 모두가 책 내용에 어울리는 뜻들이다. 글쓴이 리처드 포티는 런던자연사박물관의 수석 고생물학자이다. 이미 <삼엽충-고생대 3억년을 누빈 진화의 산 증인>이란 책을 통해 알려진 과학저술가이기도 하다. 글쓴이는 서문을 통해서 이 책이 시작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판구조론이 지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설명할 가장 좋은 방법이 없을까 몇 년 동안 궁리하였다."
글쓴이는 이를 위해서 지질학적으로 유명한 사건들이 일어난 지구의 각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고, 그 원인과 결과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했다. 따라서 이 책은 지질학적 유산 답사기라고 할 수 있다.  글쓴이가 직접 찾아가 본 장소는 나폴리만, 하와이, 알프스 산맥, 산토리니 섬, 뉴펀들랜드, 뉴욕, 체코의 요아힘스탈, 인도의 데칸고원, 영국의 다트무어, 캘리포니아, 네바다사막, 데스밸리, 스코틀랜드, 콜로라도 강과 그랜드캐니언 계곡과 같은 지구가 만들어낸 지질학적 사건의 현장들이다.  

책의 맨 앞장에 등장하는 장소는 나폴리만이다. 그 곳은 고대 지질학과 근대 지질학이 탄생한 곳이다. 유명한 베수비오 화산이 근처에 있는 곳이다. 베수비오 화산은 25,000 여년동안  폭발을 거듭해왔다. 가장 유명한 폭발은 서기 79년의 폭발이다. 이 폭발로 근처의 헤라쿨라네움과 폼페이는 도시가 화산재에 완전히 파묻혔다.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로마시대의 작가인 플리니우스는 이 폭발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베수비오 화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서 피해를 입지 않고 관찰이 가능했던 덕분이다. 이로써 과학으로서 지질학은 시작되었다. 이후 1631년에 일어난 폭발은 로마시대 폭발보다 더 강력해서 두 배나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화산재는 단 하루만에 1,000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이스탄불까지 도착했다. 사실 근대 지질학의 탄생은 엄밀히 말해서 베수비오 화산과는 큰 관련이 없다. 근대 지질학은 찰스 라이엘의 연구에서 시작된다. 찰스 라이엘(1797-1875)은 나폴리만에 있는 로마시대의 세라피스 신전 유적지를 답사하고 나서 새로운 지질학의 원리를 통찰하게 된다. 세라피스 신전은 세 개의 기둥만 남아있는데, 이 기둥의 받침대에서 4미터 쯤 위에 검게 변색된 띠 같은 게 있다고 한다. 가까이 가서 보면 이것은 해양조개들이 뚫은 구멍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기둥은 처음엔 바다가 아닌 육지에 세워졌는데, 신전터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기둥의 아랫부분이 물에 잠겼던 것이 분명하다. 결국 이 신전은 근처에 있는 화산의 폭발로 중간에 지각이 바다 밑으로 내려앉았다가 나중에 다시 솟아올랐다는 것이다.  결국 땅이 아래위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의 증거물이 된 것이다. 여기서 라이엘은 새로운 지질학의 원칙을 확립하고 1830년 <지질학 원리>라는 책을 서술하게 된다. 세라피스 신전이 있는 그림은 라이엘의 책 앞장에 등장해서 지질학 혁명의 상징이 된다. 찰스 다윈은 5년간의 비글호 항해 도중에 라이엘의 책을 탐독했다.  라이엘의 원리는 다윈이 진화론을 구상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결국 나폴리만은 지질학혁명과 생물학혁명의 한 상징이 되는 장소가 된 셈이다.

하와이 군도는 섬들의 집단이다. 그 섬들은 모두 화산활동으로 생겨났다.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화산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 원주민들은 그 화산활동을 관장하는 것은 여신 펠레라고 믿고 있다. 하와이 주변 바다의 평균 수심은 5,000미터 정도 된다. 바닥인 해저에서부터 따져보면 화와이의 화산은 높이가 거의  9,0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높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산인 셈이다. 하와이는 태평양 지각판에 얹혀있다. 태평양판은 매년 10센티미터씩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계산해보니 만년에 1킬로미터를 움직이고, 천만년이면 1000킬로미터를 움직이는 셈이다. 이른바 윌슨주기에 따르면, 2억년에 한번 정도씩 지구의 지각판들은 초대륙으로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는 주기를 되풀이한다. 하와이섬을 형성한 화산 활동은 지구 내부의 마그마 열원에 의한 것인데, 마그마 열원은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움직이는 것은 지각판이다. 마그마 열원 위를 지나가는 지각판이 몇 년에 한번 제대로 걸리면 거대한 화산폭발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와이 군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하와이 섬들의 나이는 겨우 500만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앞으로 태평양판의 움직임에 따라 그 섬들은 다시 가라앉을 운명이라고 한다. 지질학적 시간은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다. 글쓴이는 키츠의 시를 인용하며 우리를 달랜다. "시간, 늙은 유모가, 참으라고 나를 달래네."

 해양지각은 두께가 10킬로미터 정도 되고, 대륙지각은 두께가 30-40킬로미터 정도다. 항상 대륙지각이 해양지각보다 두껍다. 평균적으로 대륙지각이 해양지각보다 밀도도 낮고 두께도 훨씬 두껍다. 그 이유는 해양지각이 늘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지각이기 때문이란다. 이른바 중앙해령에서 새로운 지각이 계속 형성되고(이른바 해저확장), 해구에서는 지각이 대륙지각밑으로 섭입(subduction-가라앉음)되어 사라지고 있다. 주로 그런 쪽에서 격렬한 화산활동이 일어난다. 그래서인지 해양지각은 대부분 현무암이라고 한다. 현무암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되는 암석이니까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해구들은 대륙지각 밑으로 끌려들어가는 곳이다. 이동하는 해양지각이 옆에 버티고 있는 대륙지각의 가장자리와 부딪히면서 지진이 생기게 된다. 해구는 지각이 다시 맨틀로 들어가는 곳이다. 지각은 해령에서 태어났다가 대륙의 가장자리에 있는 깊은 무덤인 해구에서 죽는 셈이다. 이에 비해 두꺼운 대륙지각은 서로의 밑으로 가라앉을 수가 없다. 대신에 그것들은 충돌한다. 충돌의 현장에서는 땅이 뒤흔들리고 휘어지고 두꺼워진다. 그런 일이 수백만년에 걸쳐서 계속되면서 조산대가 솟아오른다. 히말라야산맥이나 알프스 산맥같은 거대한 산맥들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지각판이라는 개념, 초대륙이라는 개념이 생겨날 때는 학계에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도 그런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개념을 받아들이는 순간 기존의 이론과 전제들은 송두리째 무너지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월이 흘러 온갖 증거들이 쌓이고 측정기술이 발전하자 그것이 주류개념으로 정착된다. 판게아나 곤드와나 같은 초대륙 개념도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지구의 역사에서 그런 초대륙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른바 윌슨 주기는 2억년에 한번 정도씩 그런 이합집산이 반복되었다고 본다. 글쓴이는 대륙이 이동한다는 개념보다는 해저확장이라는 개념이 더 올바른 개념이라고 한다. 대륙이 바다위에 둥둥 떠서 이동한 것이 아니라 해저가 확장되면서 지각이 움직였다는 것이 정확한 개념이 되겠다. 물론 그 원동력은 지구 내부의 맨틀 운동이다. 손톱이 자라는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지각이라고 하니 우리는 그 이동을 알아챌 수 없는 것이 당연한다. 백만년 이상의 지질학적 시간을 통해서만 그 이동은 우리의 눈에 확연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대로 지구는 지구는 내핵과 외핵, 맨틀, 지각으로 구성된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압력은 증가하고 밀도와 온도도 엄청나게 높아진다. 지구의 중심은 평균 해수면을 기준으로 했을 때 6,370킬로미터 가량 된다. 내핵은 고체상태이며 지표에서 5,120킬로미터에서 시작하여 지구의 중심까지다. 외핵은 액체상태로 존재하며 지표에서 2,900킬로미터까지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맨틀이다. 지각은 해양지각이 10킬로미터 안팎이고, 대륙지각이 30-40킬로미터 정도의 두께를 가지고 있다.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은 1864년에 나온 공상과학소설인데, 지구의 중심이 비어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당대의 지식으로는 그 정도를 상상할 수 있었다. 지금도 우리가 지구의 중심까지 구멍을 뚫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본의 시추선이 7킬로미터 정도까지 뚷을 수 있다고 책에 나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구의 내부를 알 수 있을까? 지진파가 돌아오는 속도를 추론해서 지구의 내부 거리와 조성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곳은 맨틀이다. 맨틀은 산맥이 태어나고 지각판이 죽는 곳이다. 맨틀은 지구의 무의식과 같다. 지표면의 모든 존재들은 맨틀의 운동에 복종할 수 있을 뿐이다. 단 그 시간은 지극히 느리게 움직인다. 맨틀은 액체이지만 물보다는 점성이 100,000,000,000,000,000,000,000배 더 강한 액체다(10의 23승). 글쓴이는 지구에 딱 맞는 모형으로 알을 든다. 전체적인 비례를 볼 때 노른자와 흰자, 그리고 얇은 막을 지닌 알이 바로 지구의 축소 모형인 셈이다. 대부분의 민족신화에서 보이는 알을 통한 세계의 창조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과학과 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다음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