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동기들 모임에 다녀왔다. 한달에 한번 모이는 모임이다. 음식점에 모여서 고기 구워먹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모임의 거의 전부다. 여섯명이 모였더라. 몇달 만에 보는 얼굴들인지라 반가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반가워지는 얼굴들이다. 장맛과 친구는 오래될 수록 더한 맛이 있다고 했던가.

이야기의 순서는 대강 이렇다.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는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보면 정치, 사회면 이야기들이 나온다. 여기서 좀 논쟁이 붙는다. 입장들이 다 다르다. 예전에 그렇게 보지 않았던 친구가 입장이 한참 좌선회한 경우도 있고, 우향우 해버린 친구들도 있다. 그러다가 끝은 언제나 거의 옛날 이야기다. 오늘은 소 이야기가 나왔다. 어릴 때 소키우던 이야기, 농사짓던 이야기, 개구장이 짓 등등. 대부분 시골출신들인지라 옛날 이야기를 하면 공감이 된다. 여기는 논쟁이 없다. 다하지 않는 소재들이 등장한다.

오늘 이야기에서 내가 내린 결론.

 (1) 우리는 농사를 짓다 만 세대다. 소도 좀 몰다 말았고, 지게도 좀 지다가 말았다.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 들어갈 즈음해서 농기계가 급속히 보급되었다. 당연히 지게지고, 소몰고 하던 농사일은 종을 쳤다. 그 세대에 우리가 들어있었다.

(2) 옛날은 언제나 목가적으로 윤색된다. 나는 어린시절에 결핍이 있었지만 말은 할 수 없었다.  우리집은 가난해서 소가 없었지만 있었던 것처럼 행세하고 넘어간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 권위를 길게 느끼지 못했지만, 느낀 것처럼 행세하고 넘어간다. 대부분 고만고만한 처지들인지라 아픔 없을리가 없을 텐데 그 이야기들은 없다. 이렇게 남자들은 대부분 고민은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3)남자들은 세월이 갈수록 작아진다. 삼십대 후반, 우리는 비로소 내가 소시민이라는 것을 명확히 정의내린다. 힘없는 한 마리 일개미임을 깨닫는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어울려서 위로할 친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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