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등록금 연간 천만원, 청년 실업 백만명 시대다. 서민의 고통은 극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시대는 길을 잃었다. 희망은 있는가? 이 책의 지은이들은 있다고 말한다. 무엇이 희망의 근거인가? 2008년의 광장에 모인 촛불이 바로 그것이다. 촛불의 민심은 꺼진 것 같았다. 그렇지만 2010년 6.2지방선거를 통해서 촛불은 부활했다. 조국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과 가진 토론회에서 인용했다는 <정관정요>의 말을 입증해주는 사건이었다. “왕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엎을 수도 있다.” 우리 시대의 최고 지도자는 정치가가 아니라 기업대표처럼 생각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배가 엎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 못하는 모양이다. 
 

이 책의 부제는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이다. 오연호는 64년 전남 태생이다. 연세대 83학번이다. <말>지 기자를 지냈으며, 지금은 <오마이뉴스>대표를 맡고 있다. 조국은 65년 부산에서 태어나 82년에 서울대에 들어갔다. 지금은 서울대 법대 교수를 맡고 있다. 사실상 둘은 동갑이면서 불의 시대였던 80년대의 시대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둘은 2012년이나 늦어도 2017년에는 진보개혁세력이 반드시 정권을 다시 찾아 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어디서부터 파열구를 내야 할까요?”라는 오연호의 질문이 그 문제의식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오연호와 조국은 이 문제에 대한 탐색을 위해서 7개월 동안 만나서 이야기를 계속해 왔다. 이 책은 그들이 나누었던 이야기를 6장에 걸쳐 보여준다. 제1장은 성찰이다. 왜 진보가 집권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제2장은 사회경제 민주화다. 특권과 불공정의 시대를 어떻게 넘어설지를 이야기한다. 제3장은 교육을 이야기한다. 제4장은 남북문제를 이야기한다.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구호로 집약된다. 제5장은 권력이다. 검찰의 문제를 집중해서 다룬다. 제6장은 사람이다. 유력한 대권후보들을 거명하면서 비평을 한다. 진보집권플랜은 ‘진보가 밥 먹여준다’이다. 그렇게 해서 집권하면 진보적인 정책을 집행해서 진보의 고속도로를 만들어서 우리 사회를 확연히 바꾸자는 것이 이들의 포부이다.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이 집권 계획이다보니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만큼 이야깃거리도 많다. 그래도 두루뭉술하지 않고 핵심을 짚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 중에서도 나는 세 가지 측면을 재미있게 보았다. 첫째는 경제사회적 민주화의 전략에 대한 것이다. 우리사회의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는 비교적 단단한 토대를 가지고 있다. 이에 견주면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우리의 비교대상인 OECD의 평균에 비추어도 우리는 너무도 후진적인 경제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OECD평균 고등교육예산은 GDP의 1.2%다. 한국은 0.6%다. 절반 수준이다. OECD에서도 사회적 구조가 평등한 축에 속하는 프랑스는 대학등록금이 한 해에 10만원이란다. 놀랄 노자로다. 우리하고 백배 정도나 차이가 난다. 부동산 정책도 최후진국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장기임대주택이 전체주택의 3%수준이다. 싱가포르는 80%다. 이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장기임대주택은 빈민들의 주거로만 인식된다. 집에 뒷덜미가 잡힌 중산층과 서민이 한둘인가. 

둘째, 검찰권력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다. 조국은 검찰의 생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검찰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다른 권력기관에 비해 ‘문민통치’를 받지 않고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227쪽). 검찰은 보수적 세계관과 엘리트주의를 체현하고 수사권과 공소권을 독점한 권력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정당도 아닌데 정치결사체 같은 조직같이 굴러간다(235쪽). 검찰개혁의 핵심은 그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해서 검찰이 독점하는 공소권을 나누고, 수사권은 경찰과 나눠갖도록 해야 한다.(242쪽) 조국은 검찰과 비슷한 조직이 하나 더 있다고 한다. 뭘까? 삼성이다. 어찌보면 진보개혁세력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면 이와 같은 경제권력, 국가권력의 독점적 지배현상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핵심에 검찰과 삼성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진보가 집권하면 이 부분에서 대회전이 벌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노무현 집권 기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특히 2004년 탄핵이후 진보개혁세력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했던 1년 동안 과연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하여 심도깊게 조명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민심은 무서운 것이다. 대부분의 민중들은 정치인들을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도 자기들의 운명을 걸어볼 만한 세력이나 인물이 나타나면 무섭게 밀어준다. 이른바 신명이고 바람이다. 민중들이 깨어나면 정치적 소용돌이가 일어나면서 기존의 정치판을 부수어버릴 정도록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만 해도 여러 번 그런 경우가 있었다. 문제는 민중이라는 거대한 생물을 깨우고 그 등에 올라타는 탁월한 지도자나 조직이 나타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당대의 시대정신을 체현한 존재로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관료에 의지하고, 재벌들과 타협함으로써 스스로 민중에게서 멀어지는 존재가 되었다. 민중들은 그런 노무현과 노무현의 정당을 버리고, 이명박을 선택했다. 그 순간 노무현의 정치적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을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던 이명박 정권의 지나친 시도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정신이 가진 순수함을 모멸함으로써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말았다. ‘선비는 죽게 할 수는 있어도 모욕할 수는 없다’는 논어의 말을 노무현의 죽음은 실례로 보여주었다. 노무현은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민중 속에서 자기를 따르던 세력이 부활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진보의 집권과 우리사회의 진보적 재편은 노무현 시대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진보의 혁신을 가리키는 열쇳말로 나오는 것이 바로 ‘김상곤 효과’다. 진보개혁세력은 ‘밥먹여주는 정치’와 상관없는 집단이라는 것이 민중들의 상식이었다. 무상급식은 말 그대로 나라가 돈 안 받고 밥을 먹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그 동안 우리는 꿈도 꾸지 않았다. 나라에서 무엇인가를 공짜로 받아간다는 것은 빈민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우리는 배워왔다. 부의 양극화, 사교육비 폭등, 저출산과 고령화쇼크를 겪어가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우리 삶의 양태를 어떻게 바꿀지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희망을 보여주는 지도자가 없었던 탓이다. 김상곤 효과는 그 급격한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 한 자락을 보여주었다. 촛불 만으로는 부족했다. 광장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근원적인 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34쪽) 것이다. 새시대는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인물을 통해서 나타나는 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