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글쓰기 나남산문선 11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기획 / 나남출판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쉽게 읽었다. 퇴근 길에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잡아들었다. 앞부분의 김용택 부분을 읽다가 이 책을 사기로 결정했다. 집에 와서 두시간쯤 읽으니 끝나더라. 의미있는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느낌이다. 단편영화의 모음 같다고 해야되겠다. 이 책에는 여러 사람의 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앞부분의 소개글에 의하면 이 책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펼친 강연에서 연사로 참가한 유명작가들의 글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참가한  필자는 모두 아홉 사람이다. 김용택, 김원우, 도종환, 서정오, 성석제, 신달자, 안도현, 안정효, 우애령.

책을 사고 나서 바로 읽은 글은 서정오의 글이었다. 서정오의 내면에 대해서 듣고 싶었는데, 그런 내용이 없어서 좀 실망스러웠다. 남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버릇인데 말이다. 서정오는 작가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을 길게 하고 있다. 작가의 글쓰는 노동은 농부나 어부, 장사꾼, 집짓는 사람의 노동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작가들이 어려운 글을 너무 많이 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귀기울여 들을 만한 부분이긴 한데,내가 익히 알고 있던 주장이라서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은 없었다. 그래서 내 나름의 기대와는 다른 글이었기에 실망스러웠다는 것이다.

이어서 안도현의 글을 읽는 줄 앍고 읽었는데 알고보니 성석제였다. 읽으면서도 안도현답지 않은 글이라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끝나고 보니 성석제여서 좀 황당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역시 성석제다운 글이다. 이어서 안도현의 글을 읽었는데, 안도현이 문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계기가 된 사건이야기가 재미있었다. 80년대초 계엄령 시절 대학초년생이던 안도현이 군인들에게 얻어맞은 경험은 안도현이 문학을 현실과 연관짓는데 중요한 사건이었다. 경험한 이의 입장에서는 무참했을 기억인데도 구경꾼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재미있다. 문학에서는 상처가 자산이 된다는 말을 필자 중의 한 사람이 했는데 옳은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란 마냥 행복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한 켠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존재를 살리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말이다. 신달자나 우애령 같은 여성작가의 이야기에는 작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굴곡의 세월이 들어있다. 신달자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다른 살림을 차렸던 경우였고, 우애령은 태어나자 마자 남의 집에 맡겨질 뻔한 이야기였다. 모두들 자존을 심각하게 훼손당한 경험이었고, 그것들이 나중에 글로 풀어져나왔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글쓰기는 치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글은 김용택과 안정효의 글이었다. 책읽기와 글쓰기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실마리를 던져주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김용택이 초임교사시절에 산골에 있으면서 월부책장사를 만나 방학 동안 <도스토옙스키 전집>이나 <헤르만헤세 전집>, <니체전집> 같은 책을 읽었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하루종일 책만 읽다가 새벽에 일어나보면 코에서 코피가 흐르더라는 김용택의 체험담은 책에 깊숙이 빠져보았던 사람은 알 수 있는 경험이다. 김용택의 경우 그렇게 독서에 빠져들었던 시기는 20대 시절이었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청소년이 책에 푹 빠져들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나의 경우에도 고3시절에 불었던 니체바람, 도스토옙스키,톨스토이 바람을 단호히 꺼버린 것은 담임선생님이었다. 대학붙으면 실컷 책 보라고. 대학가서는 사회과학만 들입다 팠다. 요즘에야 니체나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진지하게 읽어 볼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안정효는 책이라고는 거의 안 보다가 서강대 영문과에 들어가서야 책을 읽게 되었단다. 자기의 무지를 자각했기 때문이다. 방학 때 작정하고 문학전집을 파고들다가 보니 나중에는 외국의 현대문학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나중에는 머리가 터질 듯해서 배설하듯이 써낸 것이 소설이었다고. 맨 처음 쓴 것도 신춘문예용 단편소설이 아니라 장편소설이었단다. 이어서 바로 영어로 소설도 썼단다. 안정효는 그렇게 글을 뽑아내던 그 시절을 정말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한다. 이른바 창작의 기쁨 아니겠는가. 나는 <책먹는 여우>를 떠올렸다. 안정효가 딱 그 이야기에 들어맞았다.

소설가 김원우는 말하기를 책읽기와 글쓰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한다. 어느 나라의 동전이든지 공통적으로 한쪽 면에는 그 나라의 유명인물을 새긴 그림이 나오고 한면은 아라비아숫자가 나온다. 이것을 특수성과 일반성의 통일로 본다. 글쓰기와 책읽기는 세상만사에 숨어있는 근본적인 원리에 대한 통찰을 강화해서 인생을 의미있게 만든다. 도종환에 의하면, 그런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사물이나 자기 자신의 감정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고 한다. '생각한 뒤에 행동하는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른바 깊이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감정에 이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결국에는 나를 울게 하던 감정이 다른 사람을 울리는 힘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이른바 울림의 원리다. 남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 책읽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몰입이나 경청 같은 것이라면 글쓰기는 자기의 머리 속에 들어있던 이야기나 감정을 배설하는 행위다. 쓰레기처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배설하고, 결국에는 삶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창조행위가 그렇듯이 글쓰기도 그 속에는 생명의 희열 같은 것이 있다. 인간성이 고양된다. 그로써 우리는 영원에 한발짝 더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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