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 버락 오바마 자서전
버락 H. 오바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텔레비전을 안 본지가 한 해가 되어가니 세상사에 어두워진다. 오바라만 사람이름도 신문을 통해서 겨우 알게 되었다. 그가 미국의 강력한 대통령 후보 중 한사람이고, 오프라 윈프리, 스티븐 스필버그,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 같은 유명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라는 것도 신문을 통해서 얻은 정보다. 이번에 오바마의 평전을 읽게 된 것은 오바마의 아버지가 케냐 사람인데, 어머니는 미국의 백인이라는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사실 때문이었다. 일부러 책을 찾아서 읽은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에 갔다가 반납코너에 있던 이 책을 우연히 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옳겠다. 머리말만 훑어보고 나서 곧 이 책을 읽어보아야겠다는 결정을 했다. <살아있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나온 힐러리의 두꺼운 두권짜리 자서전에 비하면 책의 두께는 얇은 편이다. 713쪽이나 되는 책이다. 참고로 나는 힐러리 전기를 못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앞부분 100쪽 정도만 읽고 대출기한이 차서 돌려주고 말았다.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이틀 만에 거의 다 읽었다. 630쪽 정도를 토,일요일에 읽었다. 마치 감동적인 소설 한편을 읽는 그런 느낌으로 책 속에 빠져들었다. 오바마의 글솜씨는 정치가라기보다는 작가에 가까울 정도다. 책을 끝내기 전 80쪽 정도를 남겨두고 책을 옆에다 밀쳐두었다. 잠을 자야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열흘 정도를 못 읽었다.이상하게 그 책에 허기가 들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서 책읽기를 멈춘 셈인데, 그쯤에서 어지간한 문제들은 다 실상을 드러내고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바마의 어린시절, 대학시절, 지역활동가로서 보낸 시절, 케냐에서 아버지의 핏줄들을 만나면서 아버지와 형제, 고모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까지 어지간한 비밀들은 이미 이야기되었던 것이다. 열흘 뒤인 오늘에야 도서관 열람실에서 남은 부분을 마저 읽었다. 책의 뒷표지에도 나오는 구절이 역시나 감동적이었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울고 나자 마음 속에서 그가 오랫동안 맞닥뜨렸던 자기 인생의 수수께끼-나는 누구이고, 또 내가 누구를 돌보고 보살피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닌 문제인지에 대한-를 해결한 순간의 이야기가 나오는 구절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오바마가 결혼식 피로연을 하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오바마는 건배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해피 엔딩을 위하여"

이 책의 지은이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는 1961년 하와이 섬 태생이다. 하와이의 명문 사립학교인 푸나호우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옥시덴탈 칼리지와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했다. 시카고의 흑인밀집지대에서 지역활동가로서 몇년의 삶을 살았으며, 나중에는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해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1996년에 일리노이주의회 상원의원을 지냈고, 2004년에는 미국연방의회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지금은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후보로서 힐러리 클린턴과 경합을 벌이고 있는 인물이다. 40대 후반의 정치인이다. 문제는 그의 아버지가 아프리카 케냐출신의 흑인이었고, 어머니는 미국출신의 백인이었다는 것이다. 혼혈이지만 그의 정체성은 명백한 흑인이었다. 아버지는 케냐에서 미국 하와이로 유학온 아프리카의 지식인이었다고 나온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와이의 대학교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한다. 거기서 버락 오바마가 태어난다. 그 때 아버지는 이미 케냐에서 결혼을 한 상태였다. 이미 자식이 둘이나 있는 상태인데도 백인여자와 결혼을 했던 것이다. 버락이 태어난뒤 몇 해 뒤에 아버지는 하버드대학교로 유학을 가버린다.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다시 케냐로 돌아간다.

버락 오바마는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하와이에서 삶을 꾸려나간다. 어머니는 하와이에서 인도네시아 출신의 남자를 만나서 다시 결혼을 하고 인도네시아로 삶터를 옮긴다. 버락은 어린시절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낸다. 청소년 시절 무렵 어머니는 버락을 하와이로 보낸다. 버락을 미국식으로 교육시켜야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하와이에서 버락은 청소년시절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보낸다. 그 시기에 버락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겪게 되고, 마약도 하게 된다. 그보다 좀더 어린시절에 버락은 자신의 아버지를 하와이에서 만나 얼마간을 같이 지내게 된다. 이것이 그가 아버지와 함께 지낸 유일한 기간이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1부인 '뿌리, 혼란과 두려움의 시작'이다.

혼란스런 청소년기를 보내고 난 뒤에 오바마는 옥시덴탈 칼리지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게 된다. 졸업 후에 그는 시카고에서 지역공동체 활동가로 일하게 된다.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생각은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이 책을 일관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지역활동가로서 보낸 시기의 이야기가 이 책의 2부를 구성한다. 2부의 제목은 '시카고, 구원을 찾아 나서다'이다. 과연 그는 시카고에서 자기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를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구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카고의 사우스사이드(south side)라는 지역에서 그가 지역공동체를 일구어내는 과정이 나와있는데, 한 사람의 활동가가 실패하고 성공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나와있다. 어떻게 대중 속에서 활동할 것인가를 배우는 데 쓸모있는 자료가 될 수 있겠다. 하나하나의 서술이 어찌나 자세한지, 오바마란 사람은 사람에 대한 관찰, 심리에 대한 통찰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20대 초반의 활동가가 지역의 교회,학교,공공기관들을 두루 다니면서 조직작업을 하는 과정이 과장없이 잘 나타나있다. 이때의 활동이 오늘날 정치인 오바마를 만든 토대가 된다. 오바마는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해서 상원의원에도 당선되었다고 한다.

3부는 '케냐, 화해의 땅'이다. 시카고의 활동을 접고 나서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 입학을 결정지어놓고 나서 비는 시간에 그는 아버지의 땅인 케냐로 건너간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거기를 한번 가보시면 인생이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거기서 오바마는 자신의 반쪽 뿌리를 확인한다. 거기는 여전히 아프리카의 전통이 살아있는 곳이면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이 파괴되고 있는 와중에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 할머니, 삼촌, 조카를 비롯한 수많은 친척들을 만나서 그간에 그가 경험하지 못했던 친족간의 우애를 경험한다. 모두들 그를 오바마 집안의 소중한 아들로 반기는 경험을 하면서 그는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할아버지대의 이야기들은 식민지시기의 이야기인데,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느끼는 것을 그대로 케냐인들은 영국에 대해서 느끼고 있다. 우리의 식민지 경험과 비교해서도 참 재미있게 읽힌다. 오바마의 아버지가 살아낸 삶도 참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준다.  

오바마는 젊은 시절에 자기가 평생 있어야 할 곳과 삶의 목적에 대한 해답을 집요하게 추구한다. 시카고에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는다. 그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데 삶을 헌신하겠다는 것을 확신한다. 케냐에서는 평생 자기를 괴롭히던 아버지의 신화로부터 해방된다.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를 확인하면서 그는 비로소 온전히 자기자신이 된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었다는 대목에서 그는 마음 속에서 어떤 동그라미 하나가 닫히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말하자면 마음의 구멍 같은 것이다. 어린시절 그에게 아버지는 온통 신화적인 존재였다. 십대의 어느날 그에게 나타난 아버지는 한달여 만에 다시 그의 삶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그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영원한 신화속의 존재로 있었던 것이었다. 케냐에서 그는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를 확인한다. 아버지의 어린시절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사랑한 여인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아버지가 그 여인들에게서 낳았던 자식들도 만난다. 오바마의 할머니는 아버지와 고모를 낳고 난 뒤 할아버지에게서 도망친다. 아버지는 그 때문에 도망간 자기 어머니를 어머니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이것이 아버지의 삶에 어떤 근본적인 결함을 안겨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버지가 사랑한 여인들에게서 난 자식들-버락 오바마의 형제들-을 모두 만나면서 그는 비로소 자기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아버지가 케냐에서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나중에는 알코올에 중독되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 역시 결함이 많은 보통의 인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을 알게 되는 것이 그에게는 고통이면서 기쁨이지만 무엇보다도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대통령선거를 2008년 11월에 한다고 한다. 오바마란 정치인 때문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난 시민들이 많다고 한다. 부러운 점이다. 이 책을 통해서 본 오바마란 사람은 일단 자기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고,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대선은 싱겁게 끝났지만 미국 대선은 오바마란 인물 때문에 정말 흥미진진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일독을 권한다. 재미있는 10회짜리 미니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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