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시대 - 에릭 홉스봄 자서전
에릭 홉스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홉스봄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아직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홉스봄의 역작으로 알려진 근현대사 4부작도 우리집 책꽂이에는 다 있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읽어보았다. 제국의 시대는 읽다가 말았고 극단의 시대도 70% 정도 읽다가 그만두고 있다. 읽을 때는 무척 흥미롭게 들어가다가도 다 읽고나면 좀 헷갈리는 것이 사실 19세기 서양사다. 극단의 시대는 20세기 현대사라서 그런지 좀 쉽게 넘어간 편이다. 홉스봄의 자서전을 보니 극단의 시대는 세계적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한다.

홉스봄이 지은 책들의 저자 소개를 통해서 어렴풋하게 지은이 소개를 보던 것과는 다른 딴판의 세계가 이 책 속에는 펼쳐져 있다. 막연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지은이는 살아냈다. 캠브리지대학교 출신으로 캠브리지 버크벡 칼리지 교수로 평생을 가르쳤다는 대목도 알고보니 표면적으로 보는 것하고 다르다. 나는 그가 킹스칼리지를 졸업하고 비슷한 곳의 칼리지에서 가르쳤던 캠브리지대학교의 교수이겠거니 했는데 저간의 사정이 다르다. 공산당 출신의 학자이다보니 냉전 시기에 캠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버크벡 칼리지에서 가르쳤는데, 그곳은 야간대학이었다. 야간에 직장인 출신들의 역사학도들을 가르쳤던 것인데, 결국 홉스봄은 평생 캠브리지의 주류에는 속하지 못했던 셈이다. 똑똑했지만 처음부터 잘나간 사람이 아니었단 것이다. 남들은 30대에 이루어놓는 업적들을 홉스봄은 40대부터 쌓아나갔다. 그 이유는 오로지 그가 선택한 공산당원이라는 신분때문이었다. 홉스봄은 그의 동지들이 1956년의 흐루시초프 비밀연설로 스탈린의 학정이 드러나자 공산당을 떠날 때도 공산당원으로 남았다. 또한 1968년의 헝가리 사태때도 남았다. 결국 그는 1990년대에 소련이 무너지고 영국공산당이 스스로 해체를 선언하자 공산당원 신분을 그만두었다. 자서전을 서술하는 내내 이 '공산주의'문제는 쉬지 않고 나온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홉스봄은 자신의 저서인 <극단의 시대>에서 20세기 역사는 결국 레닌의 사상이 빗어낸 공산당의 성장, 투쟁, 소멸의 역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왜 홉스봄이 스스로도 실망한 공산당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공산당원이라는 신분을 지켰는지는 책을 자세히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홉스봄의 삶에 이정표가 되는 도시는 알렉산드리아, 빈, 베를린, 런던, 뉴욕이되겠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홉스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에릭 홉스봄을 낳았다. 그 때가 1917년이었다. 공교롭게도 홉스봄은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해에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유태인이었다. 아버지는 잉글랜드 태생이었고,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다. 빈으로 이주한 두 사람은 곧 1929년 대공황의 타격을 받고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죽고, 곧이어 어머니도 죽는다. 아버지는 약간 무능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시대가 불러온 무능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소설도 쓰고 번역도 하던 중산층 출신의 지식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어머니가 안데르센의 동화를 좋아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홉스봄의 재능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 청소년 시절에 부모를 잃어버린 에릭은 베를린의 친척집으로 옮기게 된다. 이 시기를 에릭은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본다. 바로 거기서 그는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고 독일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곧이어 히틀러의 나찌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삼키고 전체주의 국가를 만드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뒤에 에릭은 런던의 이모 집으로 옮겨간다. 거기서 그는 고등학교 시절을 마감하고 캠브리지대학교에 입학한다.

홉스봄이 캠브리지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대학생들 사이에 공산주의 사상이 가장 맹휘를 떨치던 시절이었다. 마치 80년대에 한국의 대학교에서 맑스주의가 사상의 제왕처럼 행세했듯이 30년대의 캠브리지대학교도 그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르게 당대 유럽에서 대부분 대학생들은 진보적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이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에 이어서 등장한 파시즘은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를 삼킬듯한 기세였다.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대결장이었다. 그 무렵에 가장 열심히 파시즘과 싸운 세력은 공산주의였다. 파시즘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반파시즘의 투사인 공산당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홉스봄은 그런 시기에 캠브리지대학교에서 학생공산주의자로 활약을 했다. 홉스봄의 동료학생들 중에 몇몇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로 참가해서 싸우다가 전사한 경우도 있었다. 홉스봄은 혁명가 유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에 2차 대전시기에 영국군으로 징집을 받았지만, 공산주의 활동 전력 때문에 중요한 부대에는 속하지 못하고, 공병으로 군대생활을 했다. 공병으로 지내는 동안 홉스봄은 노동자출신의 병사들 속에서 살았다. 홉스봄은 거기서 '때로는 거칠어질 때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올곧음과 허튼 소리에 대한 경멸감과 계급의식과 동지애와 협동정신을 평생토록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난 뒤에 홉스봄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학문을 가지게 된다. 주로 영국의 캠브리지대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자신의 특기를 살린 역사학 저술을 내놓는다. <원초적 반란>,<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들을 써 내면서 역사학자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또한 영국공산당에 소속된 역사학자들과 함께 '공산당 소속 역사학자 모임'을 구성해서 맑스주의에 기반한 역사학 연구를 계속한다. 영국에서 유명한 역사학 저널인 <과거와 현재>를 창간해서 정치사 중심의 역사학에서 탈피하여 사회사에 기반한 역사학 연구의 새로운 기풍을 만들어낸다. 이 무렵에 프랑스에서는 이미 <아날>이라는 유명한 역사학저널을 중심으로 사회사를 탐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역사학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아날학파의 거장으로 유명한 페르낭 브로델은 홉스봄보다 10년 이상 연상인 학자였는데, 엄청난 연구역량과 탁월한 조직역량으로 프랑스식 사회사학을 맑스주의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일구놓았다. 영국의 공산당 역사학자들 중에는 <영국노동자계급의 형성>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톰슨도 있었는데, 홉스봄은 톰슨을 '그야말로 난 사람이며, 천재라는 개념에 부합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역사가'로 묘사하고 있다. 여하튼 영국과 프랑스의 사회사 연구는 그전에 독일이 주도하던 정치사 중심의 역사학을 혁신하는 전환을 이루었다. 지금은 사회사가 이미 주류에 들어섰고, 오히려 그런 사회사 중심의 전체사에 대항하는 미시사학(작은 쟁점에 주목해서 세밀하게 연구하여 시대상을 복원하는 식의)이 요즘 유행이라고 한다. 홉스봄은 미시사학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전체적인 시각을 포기하는 방식은 역사학이 역사의 진보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50년대에 제일 중요한 사건으로 홉스봄이 들고 있는 것은 흐루시초프가 소련공산당 대회에서 행한 '스탈린 격하'를 들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탈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당시에는 스탈린이라고 하면, 전세계 민중에게 푸근한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고 한다. 홉스봄을 비롯한 공산주의자와 민중들은 당시에 '스탈린을 정말로 엄청나게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홉스봄은 '레닌의 10월 혁명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만들었다면, 1956년 2월의 소련공산당 20차 대회는 그것을 무너뜨렸다'고 말하고 있다. 스탈린 격하 운동의 결과로 홉스봄은 '공산주의 투사에서 지지자 내지는 동조자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영국공산당은 완강하게 소련공산당의 노선을 추종했기 때문에 홉스봄은 '몸은 영국공산당 당원이었지만, 마음은 내가 생각하는 공산주의 이념에 들어맞는 이탈리아 공산당 당원이었다'고 말한다. 그람시의 지적 유산을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대 유럽에서 소련공산당을 제외하고는 최대의 당원을 보유한 공산당이었다. 노동자계급의 정당이라기보다는 인민의 정당으로 자신을 규정할 만큼 유연한 공산주의 노선을 가지고 있었다. 책 속에는 이탈리아 이야기뿐만 아니라 스페인, 소련, 남아메리카, 쿠바 등의 다양한 진보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읽을거리로도 좋다.

홉스봄은 나중에 미국에서도 가르치게 되었는데, 뉴욕에 있는 신사회연구원(New School of Social Research)이라는 대학교에서 교수로 오랫동안 있게 된다. 이 학교는 미국의 진보세력이 만든 일종의 대안대학교라고 볼 수 있는 곳이란다. 홉스봄은 뉴욕에서 가르치면서 미국이라는 세계제국에 대해서 몸으로 많이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자신의 힘의 한계를 모르고 무한정 힘을 휘두르며, 자기 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이는 데서' 어떤 고충을 느낀다고 한다. 역사가로서 느끼기에 '미국의 세기가 끝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독자 중에는 그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히 빗나간 예상이 아닐 것이다'라고 미국이라는 제국이 정점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고 관망한다. 물론 홉스봄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유럽인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우리가 느끼기에도 미국은 이미 역사상 많은 제국이 그러했듯이 전성기를 지난 느낌이다. 아마 20-30년 안에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지도 않을까.

홉스봄은 1917년 태생이니까 우리나이로 치면 90살을 넘긴 나이다.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왕성하게 저술하고 강연도 한다. 청소년 시절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잃었던 소년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로 성공한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은 일종의 성공담이기도 하다. 소련이 망할 때까지 공산당을 떠나지 않은 신념의 소유자라는 면에서 보면, 과연 20세기 중후반을 통틀어서 공산주의가 지식인들에게 가졌던 매력의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데서도 쓸모 있다. 나는 외국의 역사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홉스봄과 브로델을 꼽는다. 듣기로는 브로델도 자서전을 썼다고 하는데, 누가 번역해서 시장에 내 놓으면 당장 사보겠다. 프랑스 역사가의 삶은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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