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은 진작부터 소문을 듣고 읽고 싶었던 책이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삼천포에서 목욕탕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집에 가면 삼성판 세계문학전집과 세계사상전집이 있었다. 거기에서 내가 빌려보았던 책이 <사기열전>과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말리노프스키의 문화인류학?>이라는 책이 있었다. <사기열전>은 다 읽었는데 나머지는 책의 해설부만 읽고 내용은 대충 핥는 수준으로 그치고 말았다. 어쨌든 그 덕분에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고3때는 대학을 가려고 할 때 문화인류학이나 고고학, 동양사학을 전공하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었다.

      우리 연배에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준 사람은 아마 주강현이 아닐까 싶다. 주강현의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는 정말로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를 밝혀준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이건 만고 내 생각임)  최근에 주강현이 보이고 있는 바다에 대한 저술 작업들-관해기,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도 독창적인 작업이라는 생각을 한다.  주강현의 작업의 모형은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빚진 바도 많지 않겠나 하고 추측도 해본다. 주강현은 마빈 해리스가 한 작업을 우리 땅에서 하겠다는 그런 각오를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책 제목이 우선 재미있다. <암소, 돼지, 전쟁 그리고 마녀>다. 그리고 <문화의 수수께끼>다. 정말 수수께끼는 수수께끼일 것이다. 어떤 민족은 소를 먹지도 않고 숭배하는데 반해서, 어떤 민족은 소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돼지에 대한 태도도 거의 극단으로 대비된다. 이렇게 다른 이유들이 무엇일까? 이것을 마빈 해리스는 '과학적 객관성'의 이름으로 탐구한다. 해리스 말 마따나 우리 시대는 과학의 시대이지만 문화에 관해서는 과학이 아직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문화야말로 우리네 삶을 포장하는 옷과 같다. 마빈 해리스는 자기 입장을 '문화유물론'이라는 이름으로 확정한 바 있다. 문화를 보는 유물론적인 태도라는 말이겠지. 엄밀하게 말해서 유물론-materialism. 물질주의?-이란  유심론, 혹은 정신주의에 대비되는 학문자세를 말한다. 모든 문제를 상부구조가 아니라 하부구조나 물질적 토대의 고찰에서부터 탐색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문화의 근본을 고찰한 책은 별로 읽은 바가 없어서 그런지 쉽게 이해가 되는 책은 아니었다. 읽는 중간중간 막히는 부분도 있었다. 번역의 문제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주강현이 현학적인 부분이 있듯이, 마빈 해리스도 영어로 현학을 부린 부분이 있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도 2장인 '거룩한 어머니의 암소'부분은 지난번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에서 인용부분을 읽었던 곳이라서 그런지 좀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원시전쟁, 포트래취,유령화물 같은 부분은 쉬운 듯 하면서도 좀 어렵게 느껴졌다. 한번 더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일 재미있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구세주와 전투적 메시아주의, 마녀광란에 대한 장들이 아닐까 싶다. 나도 그 곳이 참 재미있었다. 내가 어렴풋하게 느꼈던 부분을 명확하게 표현한 것을 보니 마음에 시원한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예수사상과 바울의 사상을 대비한 부분, 마녀광란의 실제적인 원인에 대한 부분, 루터의 종교개혁이 철저하게 진행되지 못한 점에 대한 부분등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성서을 읽으면서 느끼는 그 모순, 불일치를 선명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서가 불합리로 가득한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모든 위대한 책은 완결된 텍스트가 아니다. <논어>나 <맹자>,<노자>,<불경> 등에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주장들이 공존한다. 한 순간에 만들어진 책이 어디 있는가? 더구나 위대한 책들은 보통 수십, 수백년의 세월을 거쳐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서 형성된 완성품이다. 그것을 글자 하나 하나 곧이곧대로 믿는 자들이 바보일 뿐이다.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자들은 그 곳에서 자기 삶을 해석해주는 비밀을 발견할 것이다.

       문화야말로 이데올로기가 판치는 분야다. 일종의 신화와 전설이 판치는 분야다. 이해하지 못하기에 신비화시키는 부분이 많다. 이것이 다 대중의 의식을 눈멀게 하고, 부당한 지배를 영속화하는 데 기여한다. 마빈 해리스는  문화에 과학의 빛을 비춤으로써 대중을 신비화된 문화의식에서 놓여나게 하는 데 자기 학문의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중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겠지. 마빈 해리스의 나머지 책들도 곧 찾아 읽어보고 싶다. 우선 이 책을 한번 더 읽어보는 게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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