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아난시 열린어린이 그림책 6
제럴드 맥더멋 글.그림, 윤인웅 옮김 / 열린어린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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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맥더멋. 이름 외우기가 어려운 작가다. 이제는 이름을 잊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태양으로 날아간 화살 만든 사람이 누구야? "하고 물으면 "글씨? 거 제랄드 머라고 하던데"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이제 맥더멋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 책 <거미 아난시>도 맥더멋의 책이 더 없나하고 찾아본 뒤 주문했던 책이다.  맥더멋의 또다른 걸작이라는 <까마귀>는 우리말로 옮긴 것이 없어서 영문판으로 구해서 볼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어쩌다 맥더멋의 그림에 열광하게 되었나? 모두 우리 둘째 꼬맹이 때문이다.

맥더멋의 <태양으로 날아간 화살>은 칼데콧 상 수상작이라는 명성을 믿고 구입한 책이었다. 그런데 나는 처음 받아본 뒤 한번 읽고 나서 바로 책꽂이에 정리한 뒤 거의 손에 대지 않았다. 왠지 그림이 끌리지 않았다. 기존에 봐왔던 그림과는 너무나 다른 그림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피카소와 렘브란트를 두고 좋아하는 작가를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렘브란트를 고르는 게 나다. 그만큼 그림보는 눈이 초보적인 수준인지라 그림책도 주로 그런 쪽을 고른다. 존 버닝햄의 그림에 익숙해지는데도 시간이 좀 필요했다. 맥더멋의 그림은 피카소 그림처럼 느껴진다. 나에게는 비호감이었다.

어느날인가부터 우리 둘째 꼬맹이가 <태양으로 날아간 화살>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나는 한번 읽어준 뒤 그만두어버렸는데, 아내가 여러번 읽어준 모양이었다. 심심하면 그 책을 꺼내들고 읽어댔다.나중에는 그 내용을 거의 다 외워서 줄줄 읽는다. 글자라고는 자기 이름 석자 쓰는 게 전부인 녀석이 그림과 기억에 의존해서 책을 읽어대는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다. 보고 있으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나에게 읽어달라는 책의 목록에도 <태양으로 날아간 화살>이 자주 들어갔다. 나는 그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다가 어느 순간 그 책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칼데콧 상을 받은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하학적인 문양과 함께 강렬한 색감이 깃들인 그림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나도 그 책을 읽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마치 주몽과 유리의 신화와 닮은 이야기의 내용도 새롭게 느껴졌다.  그 인연으로 이 책 <거미 아난시>도 사게 되었다.

<거미 아난시>의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 구조들 중의 하나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여러재주꾼들이 힘을 모아서 구한다. 마지막으로 보상을 받는다.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야기양식들 중의 하나다. 단지 주인공이 거미라는 것이 특이하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신화라고 해서 낮추어볼 필요는 없다. 유럽이나 중국문명의 신화라고 해서 높게 보고,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의 신화라고 해서 낮추어보는 마음이 내 속에 있었음을 고백한다. 희한하게도 그런 마음이 있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신기한 이야기들이 있고, 그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비슷하다. 인간이 사는 것이 대개 거기서 거기인 탓이다. 단지 기후가 다르고, 사는 장소가 다르다보니 등장하는 인물이나 무대가 좀 달라질 뿐이지.

아난시에게는 여섯 아들이 있다. 이름도 재미있다. 큰일났다, 길내기, 강물다마셔, 먹잇감손질, 돌던져, 방석이 자식들 이름이다. 꼭 아들이라고 하지 말고 '자식'이라고 하는 것도 좋은 해석이 아닐까 싶다. 아난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반드시 아들일 필요는 없으니까. 아난시는 집을 떠나 먼곳으로 떠난다. 그러다가 위험한 일을 당한다. 위험은 두곳에서 온다. 강물의 물고기, 하늘의 새. 이 위험을 해결하는 것은 자식들이다. 자식들의 도움으로 위험을 해결하고 그들은 다시 행복을 찾는다. 온 힘을 다 써서 아버지를 구한 그 가족 앞에 보물이 나타난다. 누가 주었는지는 모른다. 빛구슬이라고 나온다. 아난시는 빛구슬을 자식들에게 주려고 한다. 그런데 그 때문에 다툼이 일어난다. 서로 자기가 더 큰 일을 했다고 다투는 것이다. 이 때 세상 모든 것들의 신 '니아메'가 등장한다. 니아메는 그 구슬을 하늘 높은 곳에 놓아둔다. 밤이 되면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볼 수 있다.  

소개글에 보니 지은이는 조셉 캠벨을 만나면서 신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작업 상당부분이 세계 각지의 신화를 그림책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한다. <태양으로 날아간 화살>은 푸에블로 족의 신화, <거미 아난시>는 아프리카 가나의 신화를 원작으로 한다. 모든 이야기의 원형으로 들어가다보면 우리는 신화를 만난다. 신화적인 이야기들의 원형을 탐구하기 위해서 캠벨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마침 맥더멋이 캠벨 때문에 이런 작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무슨 인연인 것 같다. 신화는 소설이나 동화와 다르게 직접 현실을 가르키지 않지만, 삶의 배면에 깔린 어떤 것들을 환상적인 이야기속에 담아 보여준다. 신화와 전설을 다룬 그림책들은 아이들에게 인류의 정신세계에 깔린 원형들을 보여주는데 쓸모있는 도구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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