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에게 준 두 가지 선물이 있었다.

그것은 자연을 극복하라고 준 불이였고, 또 하나는 정확히 볼 수 없는 눈이였다.
사물을 투영하여 보는 방식의 눈은 정확히 볼 수 없었지만, 여러가지 그림들이 겹쳐 보이는 형상을 하였다. 이 겹쳐보이는 것 때문에 의식이란 것이 다른 동물들과는 남다른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자연에 적응하기에 미흡한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집단생활을 시작했고, 때맞춰 닥친 추위를 피래 동굴생활을 시작했다.  그 동굴 안을 밝혀주는 불은 생존과는 구별되는 최초의 의식을 만들었다. "불꽃의 춤" 꼭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태양아래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자신의 그림자를 처음으로 본 것이다. 항상 따라 다녔지만 알지 못했던 자신의 그림자는 새로운 이정표를 형성시켰다. 이것이 자신과의 대화의 첫 시작이 되었다. 이 대화를 통해 만나게 되는 많은 것들... 여유를 가져본 적 없었던 삶에서 만나게 되는 이 작은 뒤틀림은 파괴의 역사를 이끄는 시작이 되었다.


 오래전 겸허가 아닌 생존으로 이룬 털을 벗어버리는 선택을 하게된 그들은 다양한 변화를 일궈냈다. 농경을 시작하게 되며 근거지를 만들고 식구들도 무척 늘었다.

그렇게 평화로움을 만끽하던 때  '죽음'을 창조하게 되었다.
죽음의 창조 자신이 영속할 수 없는 존재라는 자기 의식이 만들어지며 여러가지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였다.  죽음의 창조의식 이는 두려움이라는 의식에 잡힌 자신을 만나며 그들을 신을 동경하게 되었다.

이 때 정도에 다시 한 번 신은 찾아와 다양한 의식들을 남겨 주고 간다.
이러한 의식의 부분이 더욱 커져 가며 문명이 만들어진다. 문명의 기준은 권력의 기준이 맞다고 생각된다. 권력의 형성을 통해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였다.
이 문명의 탄생의 기간의 창조의 시대를 종료시키고, 파괴의 시대로 이끄는 출발이 되었다. 영속성을 위한 노력 그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파괴가 곧 질서가 되는 시대의 시작이 되었다.
이 때 신들은 희망만을 남겨 두고 다시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떠났다.

사실 희망만을 남겨 두고 떠났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할 것 같다.
왜냐면 당시 희망은 신들로부터 버림받은 거짓으로 무장한 못된 존재였다는 것을 누구도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때 희망은 신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던 것이다.

홀로 존재 할 수 없었던 희망의 기생적 삶이 인류와 함께 파괴의 역사를 전면에서 조작한다. 그의 생존기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그 기만적인 희망의 환술들을 보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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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역사 세트 - 전4권 - 데블, 사탄, 루시퍼, 메피스토펠레스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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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역사 전개의 미묘한 차이를 알 것 같다.
명쾌하지는 않지만, 사유확장을 위해 인간은 종교를 만들고, 그에 따른 부정의 의미로 악을 창조하였다. 우리는 악이란 의식마저 갖지 못했다. 만들어진 의식은 항상 치장되어야만 하는 변이를 만든다. 동양에서는 흐름이라는 자연을 전제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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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스런 사고를 하나 추가 한다.

사람은 항상 만약이라는 가정을 나름 해 보고 기대치를 가져 본다.

이는 주변 변동 가능한 변수의 폭을 조절하면서 이끌어 지고, 또는 주체의 변신을 변화를 위한 전제로 삼아보기도 한다. 이것이 사람이 가지는 의식이라는 것의 특징이며, 사람이게 하는 자부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이끄는 바탕에서 자신의 주체적 주관적 노력을 상실한다면 이는 곧 허망함을 스스로 만드는 못난 모습을 연출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상상속 연출자 밖에는 되지 못한다.

이런 부분을 스스로 학습하기 보다는 내면에서 갈무리 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상상으로 급하게 마무리 지어버리곤한다.

현실에 기반하지 못하고, 예측성에서 바탕을 두지 못하는 것들의 일반적 사고는 항상 그렇게 허망함과 자멸을 전제로 봄날의 꿈처럼  쉬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악몽과도 같은 식은땀과 함께................

 

 

사고 흐름 속에는 못 말리는 습관하나가 자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자신에게는 무척 관대하다는 것 하나와 또 하나는 주변은 주어진 상상력의 최대치 인양 절대 능력으로 상황을 주변을 배치한다는 약점이다. 이러한 상상이 스스로를 침습하는 무서운 관념의 사슬로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허망한 허상을 그리면서 .... 슬픔을 예고한다.  

 

그렇게 허망한 시뮬레이션은 서둘러 막을 내리고, 빠르게 일상에 복귀한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돌아온 자기 자신의 중심값은 왜 이렇게 가볍게 흔들리는 것일까....

아님, 왜 난 허망하게 돌아 올 자신만을 연출하고 그리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기에 그런 생각까지는 확장해 보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스스로 염왕에게 고할 죄를 늘리는 것이라고 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꿈은 깨어나고, 일상은 계속된다.

 

어느날인가  꿈을 꾼다.

어릴 적 동화 속 천년왕국의공주 이야기 오랜 잠에 취한 그 천년공주의 독백을 우연스럽게 훔쳐 듣는 꿈

"이제 몇 일 만 지나면 오랜 잠을 깨울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 나에게 입맞춤하고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겠지... 그걸 위해 난 이렇게 열심히 자고 있잖아..."

그렇게 또 몇일이 흘러 약속된 날 왕자는 나타났다.

선잠을 일찍 일어나고 싶었는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왕자는 키스를 해주지 않는다.

왕자는 오랜 잠에 심하게 눈꼽낀 천년공주가 너무도 협오스럽단 생각에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허망한 천년공주의 외마디 외침 ".................................... 지미럴"

 

모르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지만 너무 열심히 동화만을 꿈꿨다.

동화 밖으로 나오는 것 그것이 오늘이지 않을까....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상황에서 자신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쉬었을텐데 ...

그게 싫었다.   그렇게 무능한 자신을 보지 못하면서 세상만을 타박한다.

자신을 바꿀 것을 생각하니 무엇을 바꿔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천박한 자기 의식만으로

그렇게 빈곤하지 않은 생활에서 위안을 삼으며 스스로 천박한 돼지의 모습을 자화상 삼았다.

 

 

그런데도 너무도 신기한 것은 세상의 모든 거울은 백성공주의 아부쟁이 거울을 닮았다는 점이다.

거울은 내게 그런 내색마저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거울을 만들겠다고 오늘도 열심이다.

난 그 사람이 빨리 거울을 만들어 내게 제일 먼저 주었으면 하는 꿈을 꾼다.

어설플 나의 의지의 꿈이 아니기에 미루어질것을 준비하며 오늘 나는 세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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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비밀을 밝힌 위대한 실험 - 우주의 작동원리를 탐구한 10가지 실험들
조지 존슨 지음, 김정은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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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과학 교과서의 주석서를 보는 것 같다. 이야기로 풀어본 실험실의 고뇌의 모습 자연과 과학 그리고 사회라는 범주에서 합일 그리고 실험실이라 특화된 공간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사고하는 것 사고를 실험해 보는 것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 이러한 과정에서 느끼는 나와의 차이는 무엇일까에 대한 내안의 질문들...

 

빗면을 구르는 구슬의 속도를 알기 위해 노래 부른 갈릴레오 갈릴레이

생명의 원초적 동력이 되는 피의 순환을 밝히기 위한(피의 공급과 수집을 밝힌) 하비의 심장해부

빛의 굴절을 통해 색의 정체를 밝히는 뉴턴 또 자신을 실험 대상물로 삼은 모습

화학의 아버지라 칭할 라브아지에의 연금술에서 화학으로 발전모습.

생명체의 운동의 기초를 밝히고자 했던 갈바니의 개구리 뒷다리 연구.

패러데이의 자기장 실험

줄의 에너지 실험

빛의 속도를 측정하고자 하는 노력

뢴트겐의 방전관 실험

 

과학이 가지는 선입견은 명제와 수식으로 정의되어진다는 결과만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를 위한 치열한 의식세계의 동력은 과연 어디에 기인했을지 그들의 자세를 배워보는 것 같다.

 

학교를 나온지 오래여서일까... 무지를 들키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 그들의 실험이 갖는 의의와 내용을 잘 이해할 만큼은 아닌듯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들의 실험의 필요성을 느낀과정은 어디에 기인했는지가 더욱 궁금한 부분이다. 머리속 증명을 실제에서 정리하는 실험실이라는 공간에서 노력과 실패들 추론과 이론의 성립 그러한 확신을 보여내기 위한 실험의 장.

의식은 사회적 처지에 기인함을 전제할 때 그 실험이 가지는 의의를 명쾌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실험실 안에서의 그들의 독백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의 몰입의 가치는 뉴턴이 바늘로 자신의 눈을 찔러 보는 실험을 통해 빛의 성질을 밝히는 것과, 라브아지에의 단두대에서 눈깜박임의 횟수를 확인하고자 했다는 근거불명의 이야기를 통해서 열정의 깊이를 느낀다. 한 번 알고내고자 하는데 집중하는 동력은 어떠한 댓가를 통해서라도 얻고자 하는 열정이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 번 읽고 싶은 책은 꼭 구매해야 하는 나의 습관에 기인해 그들의 근성을 알 것 같다.

 

과학... 수식과 명제로 만나는 과학이 아닌 그들의 일상과 열정의 이야기 앞에서 만난다는 것이 편안하니... 좋다. 살내음 나는 그들의 일상이... 

그들의 노력에 근거해 사회는 발전하였다. 요즘의 과학서를 새롭게 떠들어 보고 싶은 의욕이 나선다.

다만, 과학자들의 열정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분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책도 준비되어진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과학의 발전이 항상 사회에 순기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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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칭찬하는 법 꾸짖는 법 - 긍정적 사고를 키우는
하마오 미노루 지음, 이민영 옮김 / 비즈니스세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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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속되며 풀릴듯하며 계속되어 온 명제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것" 이것이 아니였을까.지적영역은 숱하게 범주를 확장했지만 가까이에서 세대를 이어가며 지속된다. 그렇게 풀 듯 알 듯 하며 답보의 망막함이 나서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명제 앞에 서 본다.
 
이제 알 수 있는 것은 알 듯한 문제의 풀지리 않은 이유정도이지 싶다.
알듯 함이란 안일함의 한계와 아이 기준이기보다는 내 기준으로 보게하고 행동하게 하려 했지는 않았는가 싶은 내 안의 질문을 던진다.

딸래미와 실갱이 하는 와이프의 모습, 또 딸래미에게 야단 던지는 나의 모습. 이에 힘겹게 다툼을 나누는 와이프와 나의 모습들이 다시금 그려지는 것은 이정표 없는 당위적 의무방어에만 충실하며, 그것을 사랑이라 나 홀로 위안하고자 했던 빈약한 삶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책을 읽고 있는 종일토록 나의 모습은 어쩌면 스쿠루우지의 과거의 유령과 동행을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내 어릴적 모습을 타산지석 삼게 하는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과거의 유령의 속삭임 아이을 위한 다는 명분 속에 동심을 보듬어 주기 보다는 현실을 인식시키기 위한 나만의 조급을 가르치고자 하는 아이와 이질된 단절된 마음을 문제제기한다. 

이 책을 통해 보다 크게 느끼는 것은 아이를 위한다는 목적 앞에 부모의 몫을 정리하여서는 안된다는 점일 것이다. 엄한 지휘봉을 들기 보다는 함께하는 한 권의 책을 색종이와 가위를 들고 내면의 대화를 위한 행동의 대화법을 만들어가야겠다.

나의 한 가지 착각과 반성은 현실의 높은 벽을 알리고자 얘를 쓰면서, 그 접근에 있어서는 내용으로 대처하며 예절없음에 대한 타박에는 인색했던 못남을 본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잘 잘못을 알고 있으며 그 표현법이 어색해 버릇없고, 예절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던 착각...그러한 착각 때문에 행동하는 것에 대한 인내력을 상실하는 아이로 키우고 있었던 것...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면 충분하다고 착각하게 했던 나의 자세로 인해, 형식의 모습에 예절을 일깨우지 못함을 느끼고, 이러한 모습으로 더욱 근성있는 인내력을 가르치는 방도 마저 상실하게 했다는 반성이다.

책의 주제와는 무관하게 나를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를 만난다.
아이라는 명제에는 필연코 부모의 명제가 함께 함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도 항상 이분법적으로 접근했던 것에 대한 생각이든다. 이제 더딘 행보일지 모르지만 나름의 원칙과 기준은 세울 수 있을 것 같은 뱃심은 만들어진다. 아직도 여린 초보적 접근일지 모르겠지만.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오랜 노력이 담기고 담겨 만들어진다는 것을 내 안에서 증명하기 위해 생활을 반성하며 함께하는 영역을 늘려야겠다.
 어떤 무언가를 가르쳐야된다면, 마음을 여는 자세로 그 심언의 대화를 나누고, 이런 심언으로 넉넉한 품을 가르치며 배우고 싶다.
 마음을 읽고 품을 키우며 이를 위한 기초소양이 되는 예절의 형식을 더욱 엄격히 세워 일상에서 인내력과 근성을 훈련하고 함께해야겠다.

가족이란 말에 담긴 사랑을 새삼스레 일깨워 주고 방향과 사고의 시작을 알려준 이 책에 다시금 고마움을 느낀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음을 잘 알면서 가장 많은 비중의 물의 역할을 자처하는 아이의 부모란 물을 얼마나 활기있고, 생명력 넘치게 준비했는지를 기준삼는다.
아이를 보며 기쁘고 슬픈 것은 나의 아이이기 때문일 것이다.나를 닮아 기특하고 신기하며 그러한 마음이 기쁨이고 사랑이지만, 나의 한계까지 닮아지는 모습은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내 처지에 대한 측은함과 안스러움이지 않을까...
기쁨이며 슬픔이고 희망이며 안타까움이란 교차되는 마음에서 나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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