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무엇인가
유종호 지음 / 민음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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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체적 독자가 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


주체적 독자란 정보를 무작정 수용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문학을 읽는 사람을 뜻한다. 흔히 초중고 교과 과정에서 시나 문학을 배우면서 주체적 독자로서의 모습을 잃게 된다. ‘눈’은 ‘소복소복’ 내리고 ‘봄’은 ‘생명의 탄생’으로 굳어졌다. 혹은 조지훈의 <승무>가 그의 최고의 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등학생 때 나는 이상의 시와 산문을 좋아해서 전집을 구매해 읽었다. <날개>를 읽으며 근대 문학인의 방황과 남들과 다른 특별함에 반했다. 보통 <오감도 시제1호>나 <날개>만이 교과서에 실려 있어, 다른 작품들은 내 나름대로 해석을 덧붙이며 읽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몇 없는 해설을 찾곤 했다. 올바른 독서와 해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더 쉽게 문학을 이해하려 했다.


주체적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 박꽃이 흰색인 걸 알아채야 ‘숯불이 박꽃처럼 새워간다’에서 하얗게 타고 있는 숯불을 바라볼 수 있다. 스스로 문학을 읽어서 체화된 간접 경험들은 등에 사과가 박힌 청년이 누구인지 알게끔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시 안에 숨어있는 표현들을 잘 잡아채야 한다. 행과 행 사이에 발견되길 원하는 말들이 있다. 누가 찔러주기 전에 먼저 파악해야 한다. 사실 내 또래들은 거의 잘 하지 못하는 일이다. 문학에서 정답을 찾는 일을 십수년 간 했더니 이젠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문학을 접하고 있다.


결국 주체적 독자가 되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하다.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책에서는 쉬운 시와 어려운 시가 아닌 좋은 시와 안좋은 시가 존재한다고 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숨기거나 알려주지 않는 시는 안좋은 시이고 수수께끼같은 시라고 한다. 하지만 적절히 <맹아적 힘>을 갖춘 시들에서 다양한 암시를 찾아내고 여러 해석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주체적 독자가 되기 위해선, 좋은 시를 읽고 그 안에서 나의 뜻대로 시어들을 해석하고 드러난 정보들을 조합해 나의 감상으로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2. 비유가 말의 장식이 아니라 언어의 구성요소라면 어떻게 시에 써야 할까?


책에서 비유는 ‘말의 장식이 아니라 언어의 구성요소’이고 ‘사람들은 말로써 생각하고 비유로써 생각한다’고 말한다. ‘집값이 오른다’도 오를 수 없는 집값이 헬리콥터마냥 오른다고 표현되어 있으니 비유라고 한다. 우리가 쓰고 있는 많은 말들은 비유이기 때문에 그저 수사적 장식으로 치부하면 안된다.


그렇다면 이런 비유는 어떻게 시에 쓸 수 있을까? 시란 나의 말로 99%를 채우는 문학이고, 관습과 상투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배웠다. 평화의 상징으로 비둘기를 내세우고 열정을 불꽃으로 표현하는 것은 상투적인 비유다.


이런 말들은 빼고 비유(특히 은유)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사물과 수단 사이에 유사성과 차이점을 관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구름을 개의 한 종인 비숑에 비유하려 한다. 하얗고 몽실한 외관이 닮아있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도 닮았다. 하지만 엄연히 다른 사물이고 이것을 읽는 사람 모두가 알고 있다.


시에서는 정서나 상황을 표현할 때 적절한 말을 사용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다. 비유로 채워진 시에서는 앞서 말한 하늘을 ‘솜사탕’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양떼’라고 부를 수 있다. 시인은 이 필수불가결한 비유를 가지고 시 안에 꼭 들어맞는 단어를 써야 한다.


‘가장 시적인 것은 시적이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밥먹듯이 하는 비유를 그대로 시에 적용하지 않고 색다르고 아이의 눈처럼 때묻지 않는 시선으로 사용해야 한다. 내 주변의 것을 낯설게 보고 다르게 보는 연습을 통해 내 손발을 부리듯이 비유적인 표현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3. 관습은 우리를 구속하고 한정한다. 시는 이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


시라는 형식 자체도 하나의 관습으로 우리를 한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는 서정장르로 감정이나 정서를 드러내야 하고, 행과 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산문시도 산문과 차이를 두어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관습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책은 ‘참다운 시인은 관습의 구속에서 도리어 자유를 경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관습의 굴레를 수락하면서 거기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시적 재능이기도 하다. 예술적 재능이 대체로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다.


시를 쓸 때 가장 먼저 우리를 구속하는 관습은 행과 연일 것이다. 주어진 무한한 행과 연에 어떤 말을 넣을지 결정하는 것은 시인이다. 하지만 고민에 빠진다. 예쁘지 않은 시를 만들기 위해선 이마저도 다 없애버리고 정형시 대신 완벽한 자유시를 써야하는 건 아닐까? 21세기의 이상이 되어볼까?


구속을 완전히 벗어나버리면 그것이 시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는 독자를 고려해야 한다. 독자가 시를 시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어 두는 것이 관습이라고 생각한다. 이 관습을 통해서 독자에게 작품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나를 구속하고 한정하는 관습 안에서 최대한 뒤척여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 안에서만 뒹굴거리듯이, 시라는 갈래 안에서 비유를 사용하고 나만의 말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 참고사항 : 국어국문학과 '시창작론' 전공수업의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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