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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 지음, 서제인 옮김, 정희진 해설 / 엘리 / 2023년 4월
평점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심화되던 시기에 독서모임에서 제안을 해주어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를 올해 첫 번째 책으로 읽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유대인'이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인지 알고 있을 거라는 전제 하에 서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대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단어는 바로 '부자'와 '똑똑함', '홀로코스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유대인'인지 알지 모를 것이다. 특히 비기독교 & 비미국인에게는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기에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여러 용어들을 알아가야 하는 게 이 책의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나는 유대인이 민족이 아닌 정체성이라는 점을 모르고, 왜 유대인이 박해당했는지도 모르고, 그 이유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점에 공감하지 못하며, 미국의 엘리스섬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모르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죽은 유대인을 사랑하'는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다.
저자는 1부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안네의 일기>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 소녀의 일기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유대인 집단학살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고 직접적으로 고발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안타깝게 '죽었기' 때문에 더욱이 칭송받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2부에서는 한국인이라면 알 수밖에 없는 '하얼빈'의 유대인 이야기를 이어간다. 하얼빈에서 살았던 유대인 요세프 카스페의 행적을 좇으며 그들의 삶이 관광용으로 전락한 모습을 생생히 그린다. 전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죽은 유대인의 이야기와 한 지역에서 사라진 역사조차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로 책을 시작하며, 저자는 이 책의 제목에 담긴 의미와 앞으로 풀어나갈 이야기를 엿보여준다.
그러나 점점 진행되면서 유대 문자, 하누카 명절, 유대교 문명, 시온주의, 유대 문학 등 본격적으로 유대교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 책은 어려워진다. 한국 문화에서 자란 우리에게 낯설고 먼 이야기라 굉장히 힘들게 페이지를 넘겼다. 유대인 차별에 대해 눈으로 본 적이 없기에 그들의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책 속의 상황들이 텍스트로만 다가오는 점이 아쉬운 지점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이야기가 나오면서 반전된다. 한국 역시 식민 지배를 겪으며 민족이 짓밟힌 기억이 있다. 분노와 슬픔, 지금도 남아있는 학살의 잔재까지 슬프게도 닮은 점이 참 많았다.
그 속에서 저자가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이야기한 '배리언 프라이'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샤갈 등 여러 유대인 예술가를 지켰지만 특별히 선별하여 구했다는 점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구조자 프라이에게 최고의 시기지만 구조된 자에게 최악의 시기이기에 제대로 된 감사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 한 가정의 남편, 아버지로서의 프라이의 삶까지... 배리언 프라이를 알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길 바란다.
모든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은 홀로코스트에 못 미치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홀로코스트는 아니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288쪽)
홀로코스트와 관련되어 충격적이었던 문구를 인용해본다. 이 말은 즉, 홀로코스트'만큼' 가학행위를 하지 않으면 홀로코스트가 아니게 된다는 뜻이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식민지배만큼 하지 않으면 친일행동이 아니라고 현지화를 해본다.
살아있을 때는 혐오의 대상, 죽으면 안타까운 어머니로 묘사되는 세상의 편견을 당사자의 눈으로 서술한 이 책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에 굉장히 복잡한 감정을 준다. 왜냐하면 저자는 시온주의만 도려내어 유대교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시온주의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인데, 현재 시온주의가 주축이 되어 전쟁을 진행하고 있다. 마치 가해자를 두둔하게 되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들 역시 오랜 시간 피해자로서 잃은 역사와 삶이 있다는 생각까지 복합적으로 든다.
그렇기에 현재의 상황은 그대로 평가해야 할 것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앞서 말한 '부자', '똑똑함', '홀로코스트' 등의 단편적인 키워드로 바라보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로 마무리할 수 있겠다.
모든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은 홀로코스트에 못 미치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홀로코스트는 아니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 P288
누군가가 A라는 사람을 구할지 B라는 사람을 구할지 선택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전세계 사회는 집단 학살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거부하는 위치에 있어야 했던 것 아닌가?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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