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더27. 집착의 버건디(4)



 


 “....... 휴우.”
 눈물이 다시 덧나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정말, 겨우 참았다. 



 

 “한번만 선우에게 손 대봐. 그 멋스러운 대갈통에 헤드 샷을 넣어주지.”

 보이더는 핏방울이 잔뜩 맺힌 목소리로 말했다. 수십 명의 사이보그들을 혼자서 다 처치하느라 몸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었지만 아직도 이글거리는 눈의 살기로는 금방이라도 루어를 죽이고 남았다. 


 

 “어머?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드시네~ 괜찮아? 달링?”
 그렇게 말하는 루어를 보이더는 다시 한 번 째려보고는 나를 바라봤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웃었다. 최대한 밝은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근육들을 구부려보았지만, 잘 안되었다. 


 그 때 또 들려오는 바람 소리. 루어의 검은 깃털 검이 나를 향해 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워, 워, 워먼덱스, 방패!!!’이라고 소리쳤다. 내가 끼고 있는 무테안경이 무지갯빛으로 빛나더니 잠시 후 내 손에는 커다랗고 동그란 방패가 들려있었다.
 에, 그 주문이 맞았구나.
 “오호. 너 워먼덱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구나? 개발자로서 이거 기쁜 일인데?”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다.

 워먼덱스가 변형된 방패로 루어의 팔을 힘껏 내리쳤다. 그리고 루어의 다리를 발로 찼다. 루어의 중심이 흐트러진 틈을 타 재빨리 일어섰다.
 그리고 넘어지면서 놓쳐버린 총을 들었다. 


 

 ㅡ 보이더. 쟤 불사신이지?
 “그렇댄다.”
 ㅡ 그리고 여긴 나가면 상처가 회복되는 마법의 공간이고.
 “그렇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ㅡ 그럼 지금 저 놈을 죽이면 육체는 빈껍데기만 남는 건가? 상처만 회복시켜주잖아. 루어의 영혼은 없어지는 거지?
 “뭐, 그렇지.”
 ㅡ 보이더, 여기서 나가자.
 “.... 알았어.”
 우리는 이 세상의 루어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둘이서 총을 그녀에게 발사했다.
 '탕, 탕, 탕!'
 총에서 검은 연막과 하얀 광선이 나왔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루어의 심장을 뚫지는 못했다. 



 “하아. 둘이서 무슨 대화를 즐겁게 하시나? 질투심 생기게.”
 루어는 손에서 새까만 깃털을 마구 날렸다. 우리는 그 깃털들을 다 맞춰 없앴다. 루어와 우리 사이에 뜨거운 불꽃의 막이 둘러졌다.
 “너희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지 한번 보자. 어디 끝까지 해보자구!”
 루어는 전보다 더 많은 깃털들을 우리에게 날려 보냈다. 햇빛의 열에 달구어진 공기가 무참히 찢겨나가는 소리가 났다. 어떤 깃털들은 바로 내 앞쪽에서 폭발해서는 나에게 뜨거운 모래를 튀겼다. 몸 상태가 나은 나보다는 보이더가 더 걱정이 되어 그 쪽을 보았더니, 그 피투성이 몸을 가누면서도 거의 모든 깃털을 쏘아 터트리고 있었다. 대단했다.
 아! 이러는 사이에 또 날아오는 깃털이 많아졌다. 



 “선우, 괜찮아?”
 “너나 신경 써!! 지금 나보다 네가 더 위험한 상태잖아.”
 “헤헤...”
 보이더는 실실 웃어 보이더니 갑자기 뭔갈 발견한 듯 나에게 소리쳤다.
 “선우! 깃털 또 더 많아졌어!”
 “알고 있어!”
 나는 깃털들을 쏘고 또 쏘았다. 하지만 깃털들은 계속 내 근처에 떨어져서는 내 다리와 발을 뜨겁게 만들었다. 하아, 끝이 없네. 이렇게 해가지고는 여기서 나가기는커녕 말라 죽을 판이야.... 


 그렇게 점차 집중력을 잃어갈 때쯤이었다. 갑자기 보이더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선우!! 바로, 눈 앞!!!!” 나는 그 소리에 놀라 바로 그 깃털을 발견하고는 몸을 숙여 피했다. 그리고 다시 총을 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는 씨익- 지었다. 

 


 

 예전보다 힘이 없지만 아직도 내 마음에 달려 붙어 있는 그 귀여운 목소리.

 이제야 안심할 수 있다.
 나를 구해준 그 목소리, 정말로 그리웠다고!

 

 “리본 소녀!!”
 “슬비,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지금 당장 도와주고... 싶지만 난 이것밖에 못 하겠네..”
 뭔 소리야. 지금 내 목숨을 네가 구했잖아! 그것이 보잘 것 없는 게 아냐!(몸도 성한데.) 슬비에게 마음속으로 대꾸했다.
 슬비가 무사한 것을 보고는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고 빨리 기숙사로 가고 싶어졌다. 문득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빛났다. 

 정면 돌파를 감행해야겠다. 지금 상태로는 루어를 상처 입힐 수 없다. 내가 상처를 입더라도, 그 방법밖에 없다. 




 

 나는 워먼덱스를 장검으로 변형시키고 곧장 달려가기 시작했다. 검은 깃털들이 내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상관없었다. 총으로 쏘면 되니까. 안경을 벗은 탓인지 깃털의 형체가 흐릿하지만 괜찮다. 형태만 분별하면 되니까.
 미처 쏘지 못한 검은 깃털이 내 몸 여기 곳곳에 맞아 터진다. 화약 냄새. 온몸이 상처에 삐걱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난 달렸다. 루어가 바로 앞에 있는 것 같다. 



 “선우!!”
 보이더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루어의 비명도 들린다. 달링! 이거 놔라니까. 죽어도 다알링에게 죽었지 쟤 손엔 죽고 싶지 않아! 시끄러. 선우 빨리! 내가 잡고 있을 테니까. 보이더도 상처투성이다. 아마 다가오는 과정에서 깃털에 맞았겠지.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슈욱-!’
 그리고 루어의 배를 베었다. 



 루어의 상처와 입에서 피가 쏟아진다.
 절대 다른 것으로 대처 불가능한 사람들의 내일을 모조리 뺏어간, 그리고 내 친구들에게 뼈저린 절망을 안겨주려 했던 그 피가.
 루어는 자기의 상처를 보고는 웃었다. 마치 안에 머금고 있는 새까만 어둠이 밖으로 고개를 내민 끔찍한 웃음이었다. 



 

 “흐흐흐흐으으으으... 하하하.. 하하.. 히히히.. 끄끄끄끅끅끅끅!! 후하하하하하!!! 헤헤헤헤헤.... 쿠하하하하하하하하!!!!!”
 “......” 



 

 얘는 미쳤다. 아니 애초부터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미쳤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흐.. 이런 끔찍한 절망을 내게 안겨줘? 마지막 내 숨결을 끊는 것은 다알링 뿐인데.”
 “아. 그거 미안하게 됐수다.”
 루어는 나에게 웃으면서 혀를 날름거렸다. 징그럽게.
 “.. 그럼, 나도 이 아름다운 절망을 너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안 그래?”
 루어는 그러면서 슬비에게로 날아갔다. 루어의 손에는 검은 깃털로 만든 칼이 쥐어져있었다. 



 “힉....!”
 순식간에, 슬비의 목에 그 칼을 대면서 루어는 말했다. 슬비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
 .....  


 “너도 나와 같은 절망을 느껴봐 봐! 눈깔 더럽게 사나운.. 찌질ㅇ...”



 

 “그만.” “그만.”
 
 나와 보이더는 동시에 루어를 향해서 레이저와 칼을 박아 넣었다.
 루어에게 말을 건네 봤자 안 통할 것을 알기에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다시 흘러내리는 피. 


 “보이더! 선우!”
 “... 하하하. 하하하. 흐흐...”
 루어는 우리를 보며 기분 나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지친 듯이 보이더에게 눈을 마주쳤다. 이제껏 그녀에게서 보아왔던 그 기분 나쁜 색깔들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됐다.

 왠지 슬프면서도 기뻐 보여. 


 “보이더.”
 보이더는 색깔들을 완전히 잃어버린 루어의 눈동자를 줄곧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 못 보는 거지?”
 “영원히.”
 그 대답을 듣고 루어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다시는 보지 말자고... 보이더 디르 픽 메르타니.”
 루어는 그런 보이더를 보더니 특유의 미소를 짓고서 숨이 끊어졌다.
 모래 바닥에 루어는 드디어 모든 집착을 버리고서는 쓰러졌다.
  


 


 


 나와 보이더와 슬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보이더. 슬비.”
 “응.”
 “엉.”
 “다 끝났지?”
 “드디어.”
 “그래. 겨우 끝냈네.” 



 

 보이더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모래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모래바닥은, 신기하게도 뜨겁지 않았다,

 나는 다시 안경을 꼈다. 이제야 잘 보인다.
 “둘 다 정말, 정말! 고생했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제일 고생했어. 우리들은 별로 고생한 게 없는 걸.”
 “그래. 리본소녀. 나 때문에 네가....”
 슬비는 그 말들을 듣고 웃었다. 사막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다. 


 

 “밖에 나가면 뭐 할래?”
 사막의 모래가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일단 뭐 좀 먹자.”
 “그래! 리본 소녀도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까. 저번에 선우가 끓여준 우동 사 먹자.”
 사막의 하늘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 너 그 말 몇 번하는 지 아냐?”
 “그래도 먹고 싶은 건 먹고 싶은 거야.”
 “헤헤헤! 좋아. 그거 먹으러 가자! 그리고 나중에 예쁜 옷도 사는 거야!”
 우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사막의 모든 것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 검붉은 해도 눈을 감았다. 



 길고 긴 집착의 버건디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우리는 아무런 색도 머금지 않은 투명한 우리들의 일상에 던져졌다. 




 


-

 


 


최종 보스 레이드 대성공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에게 돌을, 부디 돌을 던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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