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더26. 집착의 버건디(3)




 

 헤일로는 그 주먹으로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보이더의 총이 헤일로의 손을 저지했다. 한발, 두발, 세발, 네발에 헤일로는 사막 바닥을 뒹굴었고 구를 때마다 철가루가 날렸다.
 “선우! 괜찮아?”
 걱정스럽게 묻는 보이더의 눈에는 다시 분홍빛의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난 그걸 보고 안심했다.
 다행이다.


 ‘짝, 짝, 짝, 짝!’
 “훌륭한 팀워크!”
 루어는 몸을 일으키면서 박수를 쳤다. 뭘 잘했다고 박수를 치는 거지?
 나는 루어에게 다가갔다. 지금은 루어를 기절시키고 한시바삐 슬비를 구해야 된다. 이렇게 우물쭈물 할 때가 아니다. 나는 루어에게 총을 들이대고 쏘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헤일로가 나를 딱 막아섰다. 그의 진분홍색 눈동자가 빛난 것 같았다.
 잠시 동안의 정적. 그리고 뺨에 느껴지는 아픔.
 나는 그대로 또 넘어졌다. 하지만 또 다시 일어났다.
 일어나서 바로 총을 잡고 루어에게 다가갔지만, 헤일로가 또 내 앞길을 막아섰다. 루어는 당황하는 나를 비웃으며 네이비색 눈동자를 나에게 맞췄다.
 ..... 징그러! 하지 마!! 
 “꼬마 아가씨♡ 이 듬직한 총각을 쓰러뜨려 봐요.”
 “........”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선우!”
 보이더가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풋.’
 경멸스런 그 웃음소리.


 “정말 너는 바보구나~ 하하하. 헤드폰으로 가짜 감정을 외우고 있을 뿐인 빈껍데기 사이보그에게 반해에가지고 말야아-! 아무것도 풋, 보답 받을 수 없는 주제에 풋, 그래도 사랑한다고 매달리는 꼴이라니! 푸하하하하하!”
 “..........”
 “선우....”
 보이더는 걱정되는 듯이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난 괜찮다. 저 녀석의 궤변이 어쨌든 이제 신경도 안 쓴다.

 ㅡ 보이더. 들려? 난 괜찮으니까 빨리 슬비 구해. 


 나는 보이더에게 내 생각을 집어넣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슬비를 구하는 것이다. 
 “그 녀석의 눈에 건 매력의 핫핑크에 완전히 놀아나가지고는! 완전 꼴사납네에? 그 녀석에게 네 얘기 많이 들었어~ 완전 웃겨죽는 줄 알았다니까아!!”
 “..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넌 천하! 아니, 우주에서 제일가는 바보야! 네 자칭 파트너하고 아주 쌍벽을 이루는구만!”
 나는 루어의 말에 적절히 반응해가면서 보이더를 관찰했다. 보이더는 내 생각을 읽은 듯 천천히 모래사막을 질러 슬비를 확보했다.
 좋았어!
 “그래. 난 사이보그에게 넘어간 천하의 바보 놈이야.”
 “호오, 이렇게 내 의견을 찬성해주다니 정말 의외인데?”
 “뭐.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안 그래?”
 “......”


 루어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슬비를 데려가는 보이더의 기척을 느낀 듯(이런, 들켰나!) 루어는 한 손으로 검은 깃털을 만들어가지고는 보이더에게 던졌다. 보이더는 그걸 보지 않고 들고 있던 총을 쐈다. 검은 깃털은 보이더와 루어 사이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폭발했다.
 “호오. 그럼 이건 어때, 달링?”
 루어는 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여기까지 우리를 몰아넣었던 사이보그들이 슬비를 지키고 있는 보이더를 둘러쌌다.
 쟤들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보이더!!”
 “놀랐어? 내가 만든 올마이티 사이보그는 투명해지는 것이 가능하거든. 물론 그 외의 기능도 있긴 하지만.”
 나는 루어의 말을 흘려듣고 보이더와 슬비가 있는 곳으로 곧장 가려고 했지만 헤일로가 내 앞길을 막아섰다. 


 “어머, 넌 얘하고 싸워야지. 어딜 도망가니?” 



 나보고 헤일로랑 싸워라고? 그 말인 즉은 나보고 죽으라는 말인가?
 루어의 말 한마디에 눈앞이 어두워 졌다.
 휙! 헤일로가 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나는 그걸 피하려고 하다가 사막에 넘어졌다. 치이이익, 등에 팬으로 달궈지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뜨거워!
 헤일로가 바로 나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 손을 단검으로 변형시키더니 나의 목에 대려고 했다. 나는 그런 헤일로의 얼굴에 필사적으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가슴이 아려왔지만 어쩔 수 없다.




 ..... 이제 와서 말하는 건 쓸모없는 짓이겠지만,
 지금 너에게 어떻게 해서든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차피 너에게 죽을 거라면 이 말 만은 전하고 죽고 싶다.




 “헤일로. 내가 너를 사랑한 건 정말 그 마법 때문일 지도 몰라.”
 헤일로는 내 말을 듣지도 않은 채 내 목을 움켜잡았다. 숨 쉬기가 힘들어 졌다.
 “컥!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가, 짜, 일수도 있어...!!!”
 헤일로가 단검을 내 목을 향하여 겨누었다.
 ..... 사실, 무섭다. 정말 무섭다. 나는 여기서 죽기 싫다. 나는 여기서 죽기 싫다. 지금이라도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하지만! 널 사랑했던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아! 앞으로도 그걸 안고 갈 거야, 영원히. 그러니까.....”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설령 이 외침이 너에게 닿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말만은 하고 싶었다. 


 “정말 사랑했었다고오!!! 바보야!” 


 소리쳤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퍼엉!’


 무언가가 단검에 꽂히는 소리가 났다.



 이상하게도 목에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내 볼에서 뭔가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헤일로..?”
 당황해서 헤일로의 단검을 봤다. 헤일로의 단검은 나의 피를 묻히고 내 얼굴 바로 옆에 꽂혀있었다.
 헤일로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까지 느껴지던 살기(殺氣)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걸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진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물론 사실은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이 그저 실수때문이라 반론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실수 따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사이보그니까.
 그러니 이것은 확실히 기적이다.

 “헤일로, 돌아온 거지? 맞지?”
 떨리는 목소리로 헤일로에게 물었다. 너 돌아온 거 맞지? 너 내가 알던 헤일로 맞지? 하지만 우리의 헤일로는 대답 따위 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다.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그 사이보그의 몸에서는 진한 금속 냄새가 났다. 뭔가가 불에 탄 냄새도 느껴졌다.
 설마.
 나는 순간적으로 헤일로의 배를 봤다. 헤일로의 배는 동그랗게 구멍이 나있었고, 그 구멍에서부터 매운 연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뭐야. 빨리 안 죽이고 뭐하는 거야~? 네가 선우를 순식간에 죽였으면 이런 꼴은 안 났잖아? 앙?” 


 저 멀리서 루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막은 뜨거웠고,
 그 뜨거운 사막 안 겨우 연명하고 있는 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금이 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헤일로는 자기 배에 생긴 상처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기의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왼손으로 그의 빨간 헤드폰을 목에서 빼서는 나에게 씌워주었다.
 MP3에 연결하지도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빨간 헤드폰에서 헤일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선우.
 “....”
 ㅡ 이때까지 정말 고마웠어.
 “....”
 ㅡ 꼭 여기에서 나가서 내 몫까지 살아줘.
 “.. 응!”
 ㅡ 미안. 




 헤드폰에 남아있던 헤일로의 목소리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메시지가 끝남과 동시에 사랑스러웠던 그 기계 소년은 옆으로 천천히 쓰러지며 폭발했다.
 폭발하기 전 기계 소년이 살짝 비춰주었던 미소가, 내 보잘 것 없는 시야를 덮어주고는 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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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래폭풍이 일어났다. 뜨거운 것과 모래와 헤일로의 신체 파편이 온데 섞여 나의 몸에 침투해 들어왔다. 몸과 마음이 타버려 사라질 것 같았다. 아팠다. 고통스러웠다. 한시바삐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슈욱-!’
 ... 아픔에만 마음을 쏟은 탓인지, 갑작스럽게 귀에 들어온 바람소리에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여흥은 충분히 즐기셨는지요? 순정 소녀.”
 앞을 보니 루어가 깃털로 된 칼을 들고 나의 심장을 찌르려고 하고 있었다.
 “너는 내가 직접 죽여줄게. 암, 그래야지. 그래야 달링이 날 바라봐 줄 수 있지. 그래야 황홀하기 그지없는 S급 절망의 오오라를 그 아름다운 몸에서 뿜겠지. 나랑 같은 괴물이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나와 달링밖에 없는 희망의 혹성에서, 나랑 같이 사는 거야. 두 괴물의 파라다이스에서 말이지. 너만! 너만 죽으면 말이야, 천하의 인간쓰레기 같은 나라도 그 사람에게 사랑 받을 수 있어!”
 루어의 눈동자는 사람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완전히 괴물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딴 소리를 지껄이면서 루어는 나에게 단검을 찌르려고 했다. 그녀의 혀가 날름거렸다.

 

 죽고 싶지 않다. 지금 내 생명을 하늘에 기꺼이 헌납하고 싶지가 않다. 아직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내 친구들과 꿈과 일상이 날...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가능성이 나에게 손짓하고 있다. 난 가야된다. 주저하면서도 가야한다.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 

 .... 정말, 죽고 싶지 않다.


 ‘휘익!’
 이런 나의 중얼거림과는 상관없이, 루어의 칼이 크게 허공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탕!’


 아.
 그 한 줄기 빛 같은 총성. 루어는 그 하얀색 광선에 손을 맞았다. 루어는 손을 좀먹어가는 자그마한 핏방울에 조소를 흘렸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다알-링?“
 나는 루어의 뒤를 봤다.
 루어의 뒤에 믿음직스럽지 못한 그림자가 한 개.
 표정이 썩은 피투성이 잠옷차림 히어로 보이더 디르 픽 메르타니가 총을 들고 겨우 서 있었다.
 “칫, 잘못 맞췄네.”


-


부연 설명




유전자 MP3 : 어떤 사람의 유전자를 이 기계에 넣고 귀에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꽂으면 귀를 통해 유전자가 뇌로 전달되어 그 유전자의 주인과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의 유전자도 가능.


올마이티 사이보그 : 사람의 모든 장기를 철로 만든 환상의 사이보그. 웬만한 기술 없이는 만들 수 없다. 모든 장기를 철로 만들었지만 특수한 처리를 하면 마치 살같은 보드라움을 얻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스파이 활동에 투입 되는 로봇이다.
양 손은 단검으로 언제든 변할 수 있고, 투명화 기능도 있다.


€ 매력의 핫핑크
- 인물 특정 마법. 눈을 맞춘 상대방을 본 사람마다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걸린 사람은 마법에 걸린 자를 볼 때마다 언제나, 시도때도 없이 볼이 빨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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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감정이라도 소중히 간직해, 이제는 그것이 가짜가 아닌 진실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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