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더 24. 집착의 버건디(1)


 

 

 

 



 

 아직 전등이 꺼지지 않은 오후 3시.

 뛸 일이 많을 것 같아 나는 치마에서 치마바지로만 갈아입고 바로 기숙동 방을 나와서 가로등 길을 뛰었다. 쿵, 쿵, 쿵, 쿵. 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소리가 마치 내 심장 소리 같았다.
 학교를 벗어났다. 곧장 오른쪽으로 달렸다. 나에게 그 마법이 걸린 그 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치려고 달리는 게 아니다. 빛에 다가가려고 달린다. 나를 받아들여준 그녀를 위해. 


 “선우.”
 “왜.”
 숨을 겨우 내뱉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워먼덱스의 기능을 소개할 테니까 잘 들어. 여차할 때 쓸 수가 있을 것 같아서 말야.”
 “헉.. 그걸 왜 뛰면서 말하는 거야. 헉...”
 “그건 정말 미안! 근데 나중에 되면 못 말할 것 같아서.”
 “하여튼, 말해봐.”
 “그래.” 



 보이더는 한번 침을 삼킨 다음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별 워프 기능.”
 “응.”
 “내장된 총을 꺼내는 기능.”
 “응.”
 “잠자리 먹거리 제공.”
 “응.”
 .... 그게 엄청 부럽단 말이야. 공짜 밥이라니.
 워먼덱스에는 그거 외에도 놀라운 기능들이 있었다.(다른 물체에 스며드는 기능. 주인 모니터 기능 이 밖에도 별 볼 일 없는 20개 이상의 기능들이 있다고 했다.) 특히 보이더가 말한 마지막 기능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 무엇이든 변할 수 있는 기능.” 


 “정말?”
 “응.”
 “설령 그게 놀이공원이나 빌딩 같은 큰 거라도?”
 “응. 뭐, 설명서에 보면 탑승자의 심신 안정을 위해서 이 기능을 넣었댄다.” 


 그것이 정말 가능한 일?
 워먼덱스는 기적의 이민기구라고 불릴만한 기능들을 다 갖추고 있었다. 이 기능을 왜 워먼덱스에 다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기능들을 잘 사용하면 루어에게 제대로 된 빅엿을 먹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보이더의 설명이 끝나자 우리는 벌써 그 빵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당당히 쳐들어갔다. 


 빵집은 손님도 없이 조용했다. 평소의 빵집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야! 루어 퀸비. 얼른 나와!”
 보이더가 있는 힘껏 루어를 불러보았지만 루어는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루어의 이때까지의 행적을 보면 보이더가 부르면 총알같이 달려 나올 녀석인데?
 아, 그러고 보니 그 아주머니는?
 “보이더, 그 빵집 아주머니가 없어.”
 “아주머니가 없다고?”
 “응. 여기 다 둘러봤는데 코빼기도 안 보여.”
 “그래?”
 보이더는 나에게 대답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아, 야야.”
 “왜.”
 “주방에 가면 뭔가 알 수 있을지 않을까?”
 “그럼 가보자.”
 우리는 신속히 주방으로 쳐들어갔다.
 “야! 대답을 해. 우리가 쳐들어와줬다고!!”
 보이더는 정말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마음에 걸리겠지. 일이 이렇게 돼버렸으니.)
 격자무늬의 벽에 얼음이 가득했고, 그 벽에 기대어 누군가가 죽어있었다. 꽁지머리의 그 사람은 온몸이 얼어있었고 피부와 표정은 창백했다. 생전 화사했던 미소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 사람은 ... 나랑 안면이 있었다.

 “.... 아줌마.”
 “......”
 보이더는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나도 충격을 많이 받았다.
 우리 둘은 말없이 행동을 취했다. 보이더는 허리춤의 자기 총으로 얼어버린 벽을 부수었고, 나는 빵집 아주머니에게 걸려있는 목걸이를 끌러 내 목에 걸었다. 목걸이가 내 목에 걸리자 그녀는 철가루를 휘날리며 사라져갔다.
 순간, 왜인지 헤일로 생각이 났다.



 “.... 가자. 벽 속에 또 다른 방이 있었네. 그곳에 루어가 있을지도 몰라.”
 “응.”
 우리는 주방을 벗어나 주방에서 이어진 방으로 들어갔다.
 검은 색과 빨간색의 스트레이트. 그 구석에 눈을 감은 채로 서있는 루어와 깨진 거울 조각이 있었다. 그 녀석의 주변에는 붉은 오오라가 퍼져 있어 섬뜩한 느낌을 더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루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오오라가 나오고 있으니까, 죽은 건 아니겠지?”
 “알고 있네.”
 보이더는 나를 보고 웃었다. 


 

 “자신에게 마법을 걸어가지고서는, 정말. 볼품없는 여자.”
 “.... 마법을 자기에게 걸었다고?”
 “그래.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거지.”
 나는 루어를 빤히 바라봤다. 정말,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넌 뭣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거야?


 “가자.”
 “어디로?”
 “루어 안으로.”
 “... 응.” 


 보이더와 나는 루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영화의 씬이 바뀌듯, 그 빵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푸른 하늘빛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이 하늘에 내리쪼이는 것은 버건디의 햇살. 


 “여긴...”
 “루어의 개인 공간. 마음 속 풍경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렇구나.”
 참 쓸쓸하게 생겼네. 


 작열하는 태양의 아래에 꼿꼿이 서있는 꽃 따위는 일절 없다. 나와 보이더는 삭막한 사막을 둘러보며 슬비를 찾았다.
 슬비-----!! 들리면 말을 해! 리본 소녀-! 어디 있어? 괜찮아? 대답해---! 우리는 큰 소리로 여러번 슬비를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슬비의 건강한 목소리가 아니라 걱정 가득한 이방인들의 목소리였다. 나나 보이더나 할 것 없이 한숨이 나왔다. 



 “... 이 넓은 공간에서 슬비를 어떻게 찾냐?
 “몰라. 일단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찾아봐야지.”
 “방법은 그것밖에 없겠지? 아마도.”
 어쩔 수 없네. 목소리가 망가지도록 찾아보자.
 슬비이---! 슬비---!!! 황량한 사막에 외치는 소리가 둘. 답신은 아직도 없음.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음. 우리는 최대한으로 목소리 음량을 높여 슬비를 계속 불렀다. 제발 우리 목소리를 알아채줘! 살아 있는 거지? 죽은 거 아니지? 마음 속에 불안과 어둠이 채워져 갔다. 



 “슬비, 기절했나?”
 “.. 듣고 보니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
 “죽진 않았겠지?”
 “야! 그런 불길한 생각은 하지 마. 리본 소녀는 살아있어.”
 “내가 나쁜 거지? 미안.”
 “..... 믿자, 리본소녀를.”
 내 머리가 어떻게 돼버렸나 보다.
 보이더와 나는 계속 슬비를 부르면서 전진을 했지만 여전히 별 성과를 못 봤다. 하지만 계속 길을 갈 때마다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난 이걸 보이더에게 말했는데 보이더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분명 들었는데? 내 귀가 드디어 이상해진 건가?

 

 뭐, 상관없다. 

 하여튼 우리는 슬비를 애타게 부르면서 길을 걸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소리는 내 귀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커지기만 했다. 이번에는 보이더도 들었는지 나에게 물어왔다. 


 “너 아까 들은 게 이 소리?”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응. 이 소리.”
 “.... 쫓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응?
 “보이더 왜?”
 “야! 일단 뛰어. 사이보그야!”
 보이더가 바라본 저 끝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우리들을 쫓아오고 있었다. 붉은 눈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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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편 돌입!! 조금 내용이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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