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더 22. 침투(3)





 

 아, 나는 살았다. 


 “역시, 미행하길 잘했네. 괜찮아?”
 “.... 살아있긴 해.”
 “그래. 너는 영화관에 숨어있어.”
 “정말? 그래도 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보이더에게 되물었다. 


 “그 외의 선택지가 너한테 있기나 하냐? 빨리 가.”
 “아.. 알았어.”
 나는 재빨리 그 넓은 공포의 피 광장을 뒤로 했다. 무릎이 욱신욱신. 고통이 뒤따라서 날 쫓아왔다. 헤일로도 나를 붙잡으려 달려오려고 했지만 보이더가 헤일로의 어깨를 잡았다. 지금까지 내가 본 적 없는, 따뜻한 감정이라고는 없는 표정을 하고서.


 



 

 “어이. 따라가지마.”
 “적을 섬멸합니다.”
 “지금 네 적은 나야. 선우는 네 적이 아냐. 그 애를 따라가지마.”
 “.. 소장 정보 N0. 2 보이더 디르 픽 메카트니를 갱신합니다. 지금까지 갱신한 횟수 오천.”

 보이더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네 주인은 내 스토커라도 되는 거냐?”
 “플랜을 변경합니다. ‘소장 정보 N0. 2의 생포'플랜을 시작합니다.”
 영화관 로비에 준비된 푹신한 소파에 걸터앉아서 아주 느낌이 껄끄러운 영화를 감상했다.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보이더는 내가 생전 처음 보는 총을 들고 헤일로를 쏘려고 했다.(워먼덱스에 내장되어있지 않은, 보이더 소유의 총 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날린 헤일로의 주먹이 먼저였다. 헤일로의 주먹은 보이더의 어깨에 직격, 그 충격으로 들고 있던 총까지 떨어뜨렸다. 헤일로가 그 틈을 노려 보이더의 목을 노리려 했지만 보이더는 재빠르게 그걸 피했다.
 나라면 상상할 수 없는 순발력.
 그 다음에는 한동안 보이더가 일방적으로 헤일로를 공격했다. 머리, 어깨, 팔. 등등. 처음에는 주먹으로만 싸우다가 헤일로가 쉬고 있는 틈을 타서 떨어진 총을 주웠다. 멀리서 본 보이더의 손에는 굵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고통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아니 나에게도 확실히 전해졌다. 아팠다.
 절대로 무릎의 통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이후로 보이더는 총으로 헤일로를 공격했지만 헤일로는 보이더의 그 어떤 공격도 견뎌냈다. 보이더의 총격에 헤일로가 입고 있던 핑크 스웨터는 찢어지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몸체가 드러났다.
 멀리서 딱 보아도 단단할 것 같은 몸체. 그 어떤 공격에도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나에게 들었다. 보이더는 놀라며 그에게 뭔가를 말했다....... 전문은 모르겠지만 사이보그라는 입모양은 확실히 보았다.
 영화관이 갑자기 서늘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때부터 헤일로가 보이더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퍽! 퍼억! 퍽! 불을 뿜는 주먹의 외침이 여기까지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보이더의 몸 여기저기 상처가 새겨졌다. 까맣게 타버린 상처가 붉은 색과 섞여 흘러내렸다. 

 ...........

 안 돼, 더 이상은 안 돼. 내가 못 견디겠어! 



 난 스크린을 뛰어 넘었다. 영화관 직원의 비명은 상관없다. 무릎의 비명도 소용없다. 지금 내가 아파하고 있다. 그런데 상황을 따질 땐가!!
 보이더는 헤일로가 낸 상처에 아파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상대는 지금 자신을 보며 무표정을 가장한 비웃음을 날리고 있다. 나는 달렸다. 정말 이대로라면 보이더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찌릿! 찌릿! 찌릿!)
 헤일로가 보이더를 기절시키려고 명치에 주먹을 내지르려 할 때였다. 헤일로의 눈빛이 빛났다. 보이더는 무표정이었다. 그 사이를 내가 끼어들었다. 휙! 온몸을 이용해 헤일로를 밀쳤다. 



 

 보이더의 무표정이 무너졌다.
 “선우?”
 “괜찮아?”
 “아, 응.”

 “다행이네.”
 난 온 힘을 다해 웃어보였다. 얼굴에 상처가 나서 피가 흘러나왔다. 


 보이더의 곁에 가려는 데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 고장 난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뒤를 돌아보니 헤일로가 누운 채로 내 손을 꽉 쥐고 있었다. 

 “플랜을 변경합니다. ‘기밀문서의 탈환’플랜을 재개합니다.”
 “잠만 스톱! 스토-옵!”
 헤일로는 내 손목을 잡아 틀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고통하고는 비교를 불허하는 고통이 내 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상처입은 무릎에 힘이 풀려서 나는 주저 앉았다.

 아아아악!! 아파! 아파! 아파! 아파! 나는 있는대로 고통을 지르다가도 이를 악 물며 참아보려 했다. 보이더가 처량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보이더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나는 얼굴을 돌렸다. 그 애에게 난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아픔은 보이더가 겪은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정말 아무것도 아냐!


 손목을 다쳐 아파하고 있는 나에게 헤일로가 다가와, 다시 한 번 주먹으로 내 배를 쳐 기절시키려고 했다. 지금 내 무릎 상태로는 헤일로를 피할 수도 없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헤일로를 쳐다봤다. 안 다친 손으로 어떻게든 내 안에 있는 것을 지키려고 했다. 안 된다. 이것들은 빼앗기면 절대로 안 된다. 이것들이 없으면 슬비를 구할 수 없다.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슈욱하고 헤일로의 주먹이 내 배를 향해 날아오고 나는 찔끔 눈물을 흘리며 헤일로를 바라봤다.
 



'퍽!'


 누군가가 헤일로의 머리를 때리는 소리가 났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헤일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그 누군가가 헤일로 머리 어딘가에 있는 슬립모드 스위치를 켰겠지.

 “어머? 선우 양?”
 ..... 그 끔찍한 목소리의 주인을 나도 보이더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왜 여기 나타났는지 모른다. 뭐야! 우리를 해치러 온 것인가? 


 “루어.. 여긴 왜 온 거지?”
 나를 구하러 헤일로에게 총을 쏘려던 보이더가 치를 떨며 말을 했다.
 “어머. 왜긴. 다알링하고 선우양이 꽤 위험한 상황인 것 같아서, 구해주러 왔지.”
 “그, 그래?(저 말은 사실이겠지. 하지만 루어는 그렇게 우리를 놓아주고 더 큰 절망을 보여주고 싶어 하잖아! 저런 바퀴벌레 같은 놈!)”
 “그럼. 사실이라고? 내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지?”
 “아니. 네 말이 거짓말인지 사실인지는 별로 상관 안해”
 “에? 그래? 실망이네.”
 “.... 뭐가 실망이라는 거야..”

 왼쪽 손목으로 피가 나는 오른쪽 손목을 쥐며 루어를 째려봤다. 루어는 이런 내가 귀여운지 자꾸 머리카락을 만지려고 다가왔다. 하지 마! 제발! 좀!!
 “한 번만 만져보자. 응?”
 “안 돼. 네가 나를 만질 자격은 없잖아?”
 “..... 에이. 그래도.”
 “택도 없어요. 너는.”
 루어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보이더는 그런 루어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헉, 엄청나게 무서운 표정하고 있네.
 “하여튼, 둘이 합심해서 날 찾아와봐 알았지? 안 찾아오면 알지?”
 “물론. 이번에야 말로 네놈의 숨통을 끊어주지.”
 “그래!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 다알링의 칼에 숨이 끊어질 수만 있다면 난 좋아.”
 “미친 여자.”
 ‘싱----긋.’
 “칭찬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루어는 슬립모드의 헤일로를 들쳐 메고 검은 깃털 회오리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정말 미쳤네, 저 여자는. 보이더는 루어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고, 나를 보면서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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