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더15. 안녕, 마음아(2)


 “저기, 선우.”
 “왜?”
 “안경에 있는 보이더 좀 불러와 주면 안 돼? 할 말이 있어서.”
 “알았어.”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미애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보이더에게 조금만 나오라며 불러냈다. 보이더의 표정은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처럼 청명했다.

 “나를 부르신 이가 누구신가.”
 “네, 접니다. 저~”
 미애가 보이더에게 말했다.


 “오! 친구여. 무슨 용무로 날?”
 “.... 보이더. 너 좀 이상해 보여. 뭐 잘못 먹었어?”
 “하하. 그냥 장난 쳐본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보이더가 나를 보고는 웃었다. 음, 역시 이 상태의 보이더가 제일 좋아! 나도 따라 싱긋 웃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닌 것 같아.”
 “뭐가?”
 “.. 너희들이 부르는 루어라는 그 나쁜 애 있잖아. 걔가 내 몸속에 들어와 있었던 일말이야.”
 “그렇지.”

 순간 미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얼굴은 너무나 슬퍼보여서 내가 다 슬퍼질 정도였다.

 “저기 보이더, 나 지금 정식으로 너에게 사과할게. 정말로 미안해!”
 미애는 그렇게 말하면서 보이더에게 머리를 숙였다.

 응? 또 사과하려고 하는 거야?

 “미애, 그렇게 사과 안 해도 된다니까?”


 “아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래. 내가 세뇌를 당하고 있었더라고 해도 그건 어쨌든 내 잘못이야.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됐는데, 결국 못 막는 바람에 이렇게 돼 버렸잖아. 그러니까 마음이 약해진 내 탓도 있어.”
 “..........”
 “앞으로 내가 그런 것에 지지 않도록 강해질 거야. 그러니까 둘 다 이제부터 나를.........”

 

 “이제 됐어.”

 보이더가 미애의 말을 끊고는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머리 숙여서 사과하는 너에게 용서 못한다는 말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미애, 난 너를 진즉에 용서했어.”
 “어, 언제?”
 “니가 헤일로에게 부탁하러 갔던 그 때부터.”

 “정말?”

 “응. 네가 그런 마음을 품고 고백하러 갔던 그 순간부터 넌 이미 우리의 친구가 됐다구. 그러니 이제는 용서 따윈 필요 없어!”
 보이더가 나를 보며 윙크를 날렸다.
 “정말?”
 나는 미애가 이제껏 보인 미소 중에 가장 예쁜 미소를 지켜보면서 미애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래! 그러니까 같이 가자. 내가 너를 끝까지 지켜봐 줄게.” 시답잖은 온기라도 미애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미애는 그 말을 듣고선 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미애의 눈에선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정말 이런 걸로 울어? 미애에게 반농담조로 말하니 미애는 볼을 부풀리고 나에게 조금은 성난 듯이 "그렇지만 이런 따뜻한 말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거얼..."이라고 말했다. 오옷! 오늘따라 차미애씨의 색다른 모습이 많이 보이는 구나~ 이런 귀여운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졌다.

 보이더가 이런 미애와 나를 보면서 호탕하게 웃음 지었다.
 “하하하하.. 사실 나도 마음 약한 여자야. 너도 오늘 나 봤잖아?”

 “어? 보이더, 내가 숨어있는 걸 봤어? 그걸 어떻게 알아?”
 “훗, 나만이 아는 방법이 있지. 하여튼 여기 있는 우리들은 다 마음이 정말 흐물흐물한 여자들이야. 루어에게도 쉽게 조종당하고 말이지.”

 하긴 그러네. 나도 루어에게 조종당한 적 있고. 보이더의 말에 마음으로 동감을 표했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를 잘 챙기자 이 말씀이야. 알겠지? 제군들!”
 보이더는 우리들을 보면서 말했다. 나와 미애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보이더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그리고 우리들은 웃으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행복한 인연을 한 겹 더 쌓은 채.

 다시 학교로 돌아온 후에 어디 갔었냐며 나무라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조금 열이 있어서 당분간 학교 쉰다고 일방적으로 말해 놓고서는 기숙사에 바로 돌아왔다.
 기숙사의 내 방에 들어가자마자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슬비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덮친다.
 그 작자가 슬비를 나로는 상상 못하는 어둠 깊숙한 곳에 가뒀을 수도 있다. 그녀가 가진 그 뻔뻔스러운 혀 놀림으로 슬비를 고문시킬 수도 있다. 그 광경을 생각하니 저절로 눈에 눈물이 고이고 치가 떨린다. 하루 루어에게서 슬비를 해방시키고 싶다. 아니 절대로 구해야만 한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루어의 정보는 얼마 없다. 그녀가 감정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과 보이더와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과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미친 놈인 것만 알고 있을 뿐, 무슨 존재인가, 어디에 사는가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빛을 구할 수 있겠는가.

 최대한 빠르게 슬비를 구해야 하는데 그 쪽으로 가는 길은 가로등 하나조차 없다. 슬프다. 내 친구를 구하고 싶은데 나에겐 그럴 수 있는 힘이라곤 요만치도 없다.

 그런 생각으로 슬픔에 젖어있는데 갑자기 안경에서 빛이 나며 보이더가 내 앞에 섰다.
 “선우.”
 “우왓! 놀, 놀래라..!”
 “뭐했길래 내가 그냥 나오는 데도 많이 놀라는 데.”
 “하하, 그냥 뭔가 좀 생각하고 있다가... 미안.”
 “그런 거 가지고 일일이 사과 안 해도 되니까!!”
 나는 보이더를 보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하하, 정말, 내, 내가 왜 놀랄까? 그치? 나. 나.. 난 놀라지 않았, 다고.

 “그건 그렇고, 슬비가 끌려간 장소를 알수 있을 것 같아.”
 쑥스러워서 눈꺼풀로 감추고 있던 눈이 팍 뜨였다.

 “저, 정말? 너, 혹시 무슨 정보라던가 갖고 있는 거야?”
 “그런 건 아냐. 하지만....... 이게 잘 되기만 하면 루어의 본거지를 파악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러면 그 쪽에 있는 슬비도 구할 수 있을 거 아냐.”
 “그래? 그럼 그걸 나에게 가르쳐줘.”
 “가르쳐 주기 전에 하나만 밝히고 시작할게.”
 “뭘 말이야?”
 
 “있잖아. 나는 초능력자야.”

 아...
 “정말? 초능력자!? 막 눈에서 빔 나오고 마법도 쓰는 그런 거?”
 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했다. 하긴 보이더는 예전부터 막 마법사 같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머리도 정말 신기하고, 눈도 막 여러 색깔이고, 딱 마법사 같지 않아?) 정말로 마법사 비슷한 거였다니.

 “뭐, 그런 멋진 능력도 있겠지만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정말? 그럼 지금까지 다 생각했던 것도?
 “물론.”
 “에, 나 좀 생각이 많은 사람인데 그걸 이때까지 다 듣고 있었단 말야?”
 “그렇단 말씀. 너 정말 쓸떼 없는 생각 많이 하더라.”
 “헤헤, 역시 그렇지?”

 보이더는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짓고는 다시 정색을 하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이 능력 조금 성가시다고 할까, 나에게 나쁜 생각까지 다 들어오거든.”
 “나쁜 생각?”
 “응. 예를 들면... 잠깐만 귀를 대볼래?”
 “귀?”
 나는 보이더가 말한 대로 오른쪽 귀를 대보았다

 “아, 깜빡했다. 있잖아. 미안한데 시계 좀 조금만 풀어볼래?”
 “헤일로를? 왜?”
 나는 헤일로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벌써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잠깐이면 되니까. 응?”
 “아, 알았어.”
 나는 일단 보이더가 말하는 대로 시계를 풀었다. 뭔가 불안했다. 헤일로에게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그 착하기만 한 헤일로에게?
 “풀었어.”
 “그럼 귀 좀 대 볼래?”
 “... 응.”

 두근두근. 심장이 빨리 뛰었다. 아냐. 내가 너무나 헤일로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거야. 보이더가 헤일로에 대해서 말할께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그래, 이건 내가 너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거야.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너... 마음 단단히 먹어.”
 “하, 하여튼 빨리 말해줘 봐!”

 

 “헤일로, 루어의 부하인 것 같아.”

 아.

 ..... 그 말만은 제발,

 나오지 말았으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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