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더14. 안녕, 마음아(1)

 

 

 미애와 나는 목적지도 없이 걸었다.
 막 티비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텔레파시 능력 같은 것은 나에게 없으니까 당연히 보이더가 정확히 어디에 숨었는지는 나도 정확하게 몰랐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 대명시를 떠나가지 않았다고 짐작정도는 가능하다.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첫 수업이 끝난 그 사십오 분 사이에 설마 저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게다가 걔는 돈도 없다!!)
 아마 학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닐 것이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입술을 약하게 깨물고는 보이더에게 부치지 못할 쪽지를 쓴다. 기다려, 어디 가지마. 내가 지금 너에게 가니까 너는 꼼짝 말고 있어.


 미애와 나는 서로 말이 없었다. 하늘에서 놀러온 바람 한줄기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는 우리 둘에게 말거는 소리만 들려왔다. 우리들은 앞에 펼쳐진 풍경을 향하여 계속 걷기만 했다.
 갑자기 미애가 손을 잡아왔다. 나는 조금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애를 바라봤다. 미애는 나를 보고서는 웃었다. 여태까지 봤던 미애의 웃음 중에서 가장 환했다.
 미애의 손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그 손은 마치 나에게 ‘사실은 무섭지?’라고 묻는 듯했다. 보이더도 없고, 슬비도 없고, 그게 전부 너 때문 인 것 같아서 슬프지? 괜찮아! 네 말마따나 다시 돌이키면 되잖아, 전부 네 손으로.
 나도 덩달아 웃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미애의 온기만을 붙잡고 걸었더니 어느새 ‘그’ 안경을 샀던 안경점에 도착했다. 왠지 느껴지는 위화감, 보이더가 이 근처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고 있다. 이런 거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거. 하지만 혹시 이게 그저 나만의 착각이라고 해도... 믿고 싶었다. 여기 있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었다. 사실 여기 있지 않으면 다른 데에 보이더가 어디 갈만한 데도 없다.
 미애에게 여기 부근을 찾아주라고 말을 하고 난 그 건너편에 있는 공원에 건너가 보이더를 찾아보았다. 초록의 향연. 난 어느 공원에나 있는 운동기구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하얀 새똥이 묻어있는 더러운 벤치들을 훑어도 보이더는 없었다. 나는 약간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아.... 얘는 정말 남 속상하게 하는 데는 정말 일가견이 있다니까.
 설마 고전적인 방법으로 나무 주변에 주저앉아 있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공원을 뜰까라고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밟아보는 게 괜찮겠다고 생각해서 공원에 있는 모든 나무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공원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나무들을 꼼꼼히 보고 정말 벼랑 끝에 매달리는 마음으로, 마지막에 공원에서 나가는 방향에 있는 아주 작은 나무를 쳐다봤다.
 다 자라지 않은 그 나무에 내가 찾던 보이더가 비 맞은 어린 새 인양 웅크려 있었다. 엄청나게 약해보이는 보이더의 모습에 헛하고 깜짝 놀란 소리가 내 몸속에서 들렸다.
 찾았다.

 “보이더.”
 보이더라는 단어가 내 몸속에서 두 번이나 뱅그르르 돌아서 입 밖으로 나온다. 한 단어를 내 뱉었을 뿐인데도 가슴이 무거워졌다.

 보이더가 흠칫하는 것이 느껴진다. 서서히 하나뿐인 예쁜 눈을 들어서 나를 본다. 밤하늘에 떠있는 분홍색 은하수가 조금 흐릿해진 것을 눈치 챈다. 보이더는 멍하니 나를 보고는 겨우 한마디 내뱉는다. “어떻게?”
 “몰라.”
 “몰라?”
 “그냥, 거리 걸어 나가다가 여기에 문득 있을 것 같아서 여기를 찾아본 것뿐이야. 운이 안 좋았으면 너 결국은 못 찾았을 거야.”
 나는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보이더는 나의 말에 쓴 웃음을 짓는다. “넌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아.” 난 그 말에 조금 쑥스러워져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보이더, 슬비가 납치됐어.”
 “아. 그래....”
 보이더는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왠지 보이더의 표정이 더 어두워 진 것 같았다.
 “돌아가자.”
 “어디로?”
 “몰라서 묻냐? 안경 속에 돌아가야지.”
 “돌아가기 싫어.”
 “안 돼. 넌 돌아가야 돼.”
 “왜 내가 돌아가야 되는 데? 난 돌아가기 싫어.”
 보이더가 나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눈엔 조그마한 눈물이 위태롭게 달려 있었다.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 여기 또 있었네.

 “맘에도 없는 소리를 잘도 하네.”

 보이더가 내 말을 듣고는 ‘에?’라고 어벙해져서는 나를 본다.

 “네가 나하고 같이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내가 모를 까봐?”
 보이더가 놀란다.

 “너, 내 생각 읽을 수 있냐?”
 “아니.”
 “그럼 니가 어떻게 내 생각을 그렇게 콕 집어서 말할 수 있는 건데?”
 “.너, 보기보다 바보구나?”
 나는 조금 껄렁대면서 말한다. 보이더는 이런 나를 슬쩍 보고는 땅을 향해 한숨짓는다.

 “내가 니 주인노릇을 한 게 반년이 다 돼가요. 그 동안 너하고 쭉 같이 있었는데 니가 생각하는 것쯤은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고.”
 “..... 그래?”
보이더가 피식 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가 또 어떤 생각하고 있는 지 알려줄까?”
 “맞춰봐.”
 보이더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 두렵지?”
 “응.”
 “내 입으로 이 말하긴 부끄럽지만 너, 나에게 고마운 거지? 나에게 폐 끼치기 싫은 거지?”
 “응.”
 “근데, 루어가 계속 날 공격하니까 죄책감만 드는 거지?”
 “....... 응..”


 보이더가 머릴 숙이고 조금씩 흐느끼고 있다. 나는 마음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그 과정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내 주인이 된 그걸로 이렇게 내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니지.”
 “그럼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데?”
 
 나는 숨을 한 번 쉬고는 보이더의 눈에 내 눈을 맞춘 다음 말했다.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

 “나도 너와 같은 상황 겪었잖아. ‘세피아 사건’ 기억 안 나? 나도 그 때 너와 같은 기분을 느꼈었어. 그러니까 알지.”
 그 때의 그 세피아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아, 그 때..”
 “까먹진 않았겠지? 설마.”
 “.. 당연하지.”

 보이더는 눈물을 눈에 머금은 채로 미소 지었다. 그 미소만 봐도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빨리 가자. 네가 나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아.”

 “응. 알았어!”
 보이더는 눈물을 닦고선 일어섰다. 보이더는 이제 망설이지 않겠다는 듯,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보이더를 보고는 팔을 내밀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선우.”
 “그려, 그려.”
 보이더는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 무지개 색 빛이 일며 보이더가 안경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웃음을 짓고는 학교로 되돌아가려고 공원을 나가려고 했다. 공원을 다 빠져나올 때 공원 입구에서 미애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애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다 아는 듯이 히죽이죽 웃고는 나에게 브이를 내밀어보았다.
 해냈구나, 친구!
 미애의 그 손짓에 나도 덩달아 브이를 만들어 내보였다. 그래, 친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