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더 11. 보이더(2)
카르텔과 스마냐의 싸움. 아니, 일방적인 침략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지. 스마냐의 여왕이 우리별을 침략했다. 우리별의 군이, 전차가 적에게 포격을 가해도 스마냐 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그들은 다 로봇인 듯했고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듯 했다. 마치 몸 상태가 안 좋을 때에 나오는 그런 피색 눈을 해가지고서는 카르텔 군인들을 닥치는 대로 피륙하고 있었다.
우리별은 십오일 만에 별 전체를 여행할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다. 그 말은 다른 카르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르텔에 살고 있는 사람들 서로가 전부다 친한 사이이거나 안면이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번쯤 만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던 카르텔의 사람들이
말라비틀어진 꽃처럼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 아프다. 괴롭다. 눈앞이 검게 물들고 있다. 그 때에 내 마음의 반 이상은 부서졌다. 서로 농담 까먹기를 하던, 함께 손에 손을 잡으며 이 거친 세상 잘 살아보자고 말했던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었다. 죽을 이유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이 무슨 큰 잘못들을 저질렀다고.
이런, 절망적인 피를..
.... 도대체 왜.
연구소의 깨진 창문 속에 숨어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입에서는 실성한 웃음이 계속 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연구소 안에 있는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울고 있었다. 그들을 구할 수 없다. 난 그들을 구할 수 없다. 죽어가는 카르텔의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정말 돌아버린 듯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보이더, 조금만 와 볼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연구소 뒷문에 서서 나에게 말하신다.
나는 그 말에 웃음을 그치고는 조용히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뒤따랐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뒤뜰에 가시고는 그 쪽에 있는 큰 느티나무 쪽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 뒤에는 지금껏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별무늬가 인상적인 창고가 있었다. 그 방은 내 어릴 적부터 있었는데 항상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저기 안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어서 자물쇠로 꽁꽁 잠겨있는 것일까 생각하는 것이 내 어릴 적 중요한 일과였다.
엄청나게 많은 돈? 아니면 매우 중요한 식물들의 샘플? 그것도 아니면 혹시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일지도 몰라!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별이 멸망해 가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왜 이 방을? 할아버지는 품에서 창고의 열쇠 같은 것을 꺼내더니 창고를 여셨다. 창고에는 커다란 캡슐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캡슐을 보자마자 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게, 이곳에 있는 거야. 이 귀한 것이 왜.
연구소에 한쪽 귀퉁이에 있는 전자 잡지에서 이것의 정보를 읽은 적이 있다. 전설로만 전해져 온다는 이민기계. 자기보호, 학습, 생존, 원주민과의 공생 등이 100% 보장된다고 하는 환상의 이민 기계.
그 캡슐의 이름은 Ł-ŊÆΓㅡ워먼덱스.
이 별에서 완벽히 탈출할 수 있는 동아줄이었다.
이걸 타고 가면 넌 살 수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말했다.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눈물이 흘렀다. 내 시야가 완전히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 내가 왜....”
온 힘을 다해 뱉어낸 말이 그 말이었다. 왜 날 살리려 하는 거야. 예전에도, 지금도, 왜 바보 같은 짓만 하는 건데. 어이가 없었다. 왜 당신들이 살려는 생각은 안하는 거야.
“꼭 살아다오. 넌 앞으로 살날이 많잖니?”
“행선지는 지구로 맞춰 놨다. 거기 가서 너 먹고 싶은 거 실컷 먹어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타지 않을 거다. 절대로 타지 않을 거다. 난 당신들의 명령을 거스르겠어. 당신들과 함께 죽으면 죽었지, 절대 혼자서 살 수는 없다!
그때 뒤에서 폭발음이 나고 연구소가 무너져 내렸다. 앞마당의 나무들은 다 쓰러져 있거나 불이 옮겨 타고 있었고, 분홍색의 돔도 깨져 재가 된 하늘만이 우리들을 감싸고 있었다.
스마냐의 여왕은 친히 우리 연구소에 등장하여 우리들을 보고 있었다. 그 여왕님이 짓고 있는 미소는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내 몸을 꿰뚫었다. 내 몸에 있는 장기들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여왕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왜, 네가 여기에...?” 할아버지가 분노에 들끓는 목소리로 여왕에게 말했다.
뭐야? 할아버지하고 할머니하고 아는 사이?
“자, 이제 너희들만 남았다.”
여왕은 말했다. 여왕의 눈에서 자란 검은 날개가 빛을 발하고 그와 동시에 작은 날개들이 우리들에게 날아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로 뛰어갔다.
내 몸 곳곳에 검은 날개가 박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 온 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가 흘러넘쳤다.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져왔다. 아팠다. 너무나 아팠다.
하지만 이런 것쯤은 전쟁 중에 죽은 우리별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보이더!!”
할아버지와 할머닌 울부짖듯이 내 이름을 불렀다. 스마냐의 여왕은 계속해서 검은 깃털을 날렸다. 난 계속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지켰다. 당신들을 지키겠어. 그리고 저 워먼덱스에 당신들이 타는 거야! 어딘가 뒤틀려 있는 나보다는 착해빠진 당신들이 사는 게 더 좋아. 나는 여기서 죽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