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33. 슬픈 세피아의 세계(2)

 

 

 

 

 

 마법은 어느 새인가 풀어져 있었다.

 보이더를 흔들어 보았지만 보이더는 눈을 뜨지 않았다.

 세계가 변하고 있었다. 여기 있던 모든 것이 제 색을 찾아갔다. 한 구석에 있던 나무인형들도 한 무기의 빛 더미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난 괜찮았다. 난 그 때처럼 경미한 부상만을 입은 채, 이렇게 살아있었다.

 하지만, 날 지켜준 녀석은 이렇게 피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저 울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바보, 바보. 이렇게 상처 입어가면서도 날 먼저 생각했다. 너는, 정말 바보다.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의 바보다. 하지만 나의 머리로는 이 바보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분했다. 그래서 계속 울었다.

 한참을 울다 눈물이 말라버렸다. 난 일어섰다. 보이더는 아직 살아있었다. 기절해서 사경을 헤매는 듯 보였지만 손의 온기는 아직까지도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여기서 나갈 방법을 겨우, 하지만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손쉽게 생각해냈다. 그걸 이제야 생각해 내다니 나도 참 어리석다. 보이더, 이제 너를 구할 수 있다. 이제 평소의 우리로 돌아갈 수 있다.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허공을 향해서 주먹을 날렸다. 쨍그랑하며 세계는 부서져갔다. 부서진 그 자리에는 칠판이 조금씩 보였다. 난 작고 좁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를 부수고 다녔다. 아니 정확히는 제자리로 돌아가게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다시는 이렇게 슬픈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이렇게 꼼짝없이 당하지 않도록.

 그 세계가 사라지자, 원래의 작은 칠판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이성도, 감성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작은 칠판에서 환한 빛이 나와서 나와 보이더를 감싸 안았다.

 

 드디어, 겨우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음악실에 슬비가 있었다. 두 손이 창백하게 얼어붙어 있던 슬비는 돌아온 나를 보자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리고는 나에게 쓰러지듯이 안겼다.

 “!! ..... 뭐야. 죽은 줄 알았잖아!!”

 “하하하하. 미안, 미안. 많이 놀랬어?”

 “엄청 많이! 너를 찾아 와보니까 너는 얼어있질 않나, 또 이상한 날개가 눈에 달린 여자가 나를 인질로 붙잡질 않나, 그 뒤를 이어서 이번에는 허연 색 머리를 한 사람이 달려 들어오질 않나!!(보이더다.) 정말로 심장 멎는 줄 알았다니까?”

 “정말, 너 진짜 놀랬겠다.”

 슬비의 눈물 어린 눈을 쳐다보았다. 미안, 내가 허튼 소리를 한 덕분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너까지 이렇게 휘말리게 됐구나. 하지만 이제 괜찮아.

 한참을 울던 슬비는 뭐가 생각났다면서 나에게 말했다.

 “, 그.. 널 구하러 갔던 그 허연 사람은?”

 

 

 슬비는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서 있었던 그 바로 앞에 인형같이 보이더가 쓰러져 있었다. 보이더에게 묻어있던 피는 사라졌지만, 그녀는 지금도 사경을 헤매는 듯 했다.

 “....... 보이더.”

 “.... 이 사람 살 수 있는 거지?”

 슬비는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 당연하지.”

 나는 슬비에게 말했다. 그래. 보이더는 아직 죽으면 안 된다. 아직 보이더랑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아직 보이더가 지구에 와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많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보이더에게 다가갔다.

 - , 일어날 시간이야. 언제까지 그러게 퍼 자고만 있을래? 오늘은 너랑 나랑 옷 사기로 한 날이잖아.(순 거짓말이다.) 빨리 일어나. 오늘은 아울렛에서 30% 할인 해주는 날이라고. 엄청나지 않아? 그리고 너 그렇게 면 요리 좋아한다면서, 내가 점심으로 우동 사줄게. 아니, 만들어 줄께. 그리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엄청 맛있을 거야. 내가 너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했어. 네 혀를 기쁘게 해줄 맛 일거야.

 그러니 일어나. 빨리 일어나. 너 여기로 현계하면 정말 나랑 아울렛 가자. 네가 사는 남은 일생동안은 행복하게 해줘야지. 그게 내가 너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거야. 하지만 이렇게 죽어버리면 나는 이걸 너에게 어떻게 갚을 수 있어. 그러니 일어나. 일어나. 그 먼지 같은 일생동안 행복하게 살아야지. 행복해져야지.

 눈물이 울컥 솟아났다.

 “그러니까..... 일어나!”

 

 그때에, 보이더의 눈이 떠지는 것을 보았다.

 “으음....”

 “?”

 “... 이더?”

 

 

 “하음~ 잘 잤다. 역시 좀 푹 자니까 낫네.”

 “보이더? 정말 보이더?”

 “? 하하하. 그려. 내가 왜 죽냐? 그 정도 교통사고쯤은 아무 것도 아냐. 그 쪽 세계는 꿈일 뿐이야. 내가 죽을 리가 없지.”

 나와 슬비는 그 상태로 보이더에게 안겼다. 보이더는 당황스러웠는지 우리를 보고 기겁했다.

 

 “이 녀석들 왜 이래? 쑥스럽단 말이야. 하지 마!”

 “뭐야, 안 죽고 있었으면 빨리 일어날 것이지, 왜 이제 일어나! 아아!! 정말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아직 너랑 더 지낼 수 있어.”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 눈물은 말라도 계속 되살아나는 거구나.

 “리본 소녀! 너도 달라붙지 좀 마. 선우는 모르겠지만 너는 왜 달라붙는 건데?”

 “정말 다행이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정말 다행이야! 네가 선우 속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걱정 엄청 많이 했어! 그래도 이렇게 선우랑 네가 무사히 나와서 정말 다행이야!”

 나와 슬비는 보이더에게 안겨서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오늘 하루 정도만, 야자도 빼먹고 이렇게 안겨서 자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보이더는 그런 우리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있잖아.. 이거 언제 풀어줄 건데?”

 “평생 안 풀어줄 거다!”

 “평생 안 풀어줄 거야!!”

 “??”

 보이더는 절규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너희들은 대체 정체가 뭔데! 왜 나를 풀어주지 않는 건데!! 빨리 풀어줘! 근데 선우는 이해가 가긴 가. 리본 소녀는 왜 나를 풀어주질 않는 건데?! 난 그게 제일 미스터리거든? 보이더는 웃으면서 절규했다. 아아, 지금 깨달았다. 그 사람이 건 마법이 풀린 후 내가 얻은 것은 두 개의 밝은 빛이었다.

 음악실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세피아 색 얼음은 이미 다 녹아 없어져 있었고, 나도 나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날 음악실에 퍼졌던 우리들의 웃음소리는 각자의 몸에 깊숙이 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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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깨닫기만 한다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마음을 고쳐잡고 행동을 하는 건 쉬운데,

문제는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 쉽지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뭐, 선우의 경우에는 루어가 마법을 걸어놔서(슬픈 세피아의 세계) 마음이 무너진 것도 원인이 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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