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4. 보이더 디르 픽 메르타니(1)

 

 

 

 

 

  

 열두시 반, 잠에서 깼다. 활활 타오르던 마음속이 찬물을 끼얹은 듯이 차가워져 있었다. , 이제야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겠구나.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아직 불씨는 남겨져 있었다.

 즉석 밥으로 대충 때우고 곧바로 교과서 중간고사 범위의 처음을 펴서 해석하기 시작했다. 간식으로 초코렛 통도 옆에 두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해석해 주석을 가득 달아둔 부분이었지만 문법이 어렵고 중요한 파트였기 때문에 한 번 더 듣고 중요한 부분을 되짚어 볼 가치는 있었다. 저번에 해석 못한 단어도 사전을 찾아가며 열심히 한자 옆에 후리가나(한자의 발음을 나타내는 히라가나)를 달아놓았다.

 해석을 다하고 그 본문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천천히, 또박또박, 악센트를 살리려 굉장히 애를 썼다. 여전히 발음은 엉망이었지만 좀 더 연습하면 나아질 것이다. 읽기 시험은 수행평가로 나중에 치니까 좀 더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네 부분을 하고 나니 잠이 슬슬 몰려들었다. 꿈속으로, 꿈속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아직 꿈을 꾸면 안 된다. 손바닥으로 뺨을 때렸다. 얼얼했다. 이제 더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은 사회문화를 풀어보기로 했다. 안경을 다시 닦고, 책상 안쪽에 잠들어 있던 두꺼운 사회문화 문제집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저번에 해놓은 데부터 차례대로 다시 풀기 시작했다. 안경을 닦을 때 왠지 오묘한 빛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뭐 그건 햇빛이 비친 것이거나 안경을 닦아서 그런 것이겠지.

 먼저 첫 번째 문제. , 이건 쉽네. 4번. 두 번째 문제. 3. 세 번째 문제. 5. 네 번째 문제....... 몰라. 내일 물어봐야겠다. 이거 어렵네... 다섯 번째 문제. 이거 2번인가...... 아 함정에 걸려들 뻔 했다. 1.

 여섯 번째부터 아홉 번째까지. 5. 뭐야 이거. 짜고 친 건가. 열 번째 문제. 2. 쉽네. 근데 내용이 재밌다! 열한 번째 문제...... 3번 아님 4번인데.. ... 3번아님 4번인데..... 에이, 찍자! 열두 번째 문제, 음 지문에 있는 내용은 알고, 자 이제 선택지만 보면 답이 쨘! 하고 보이겠지. 먼저 1............ 하하 이건 틀렸다. 그럼 2....... ? 3...... ? 4..... 다 맞는 것 같은데? 이거 다 맞는 거 아닌가?

 정답지를 보자. ? 1번이라고? 그게 왜 1번이야? ?!

 결국 문제집을 펼친 지 40분 만에 짜증나서 문제집을 덮어버렸다.

 

 아, 진짜. 왜 이렇게 되는 건지. 출제자 녀석들이 선택지를 배배 꼬아놓았다, 치사하게. 덕분에 정신도 쏙 빼놓고 의욕도 팍 사그라졌다. 아까 문제 정답 있는 거 맞나? 싶을 정도로. 왜 정답이 1번인거야?

 과부하 걸린 뇌를 조금 풀 겸 의자에서 일어나 햇살을 맞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팔과 다리가 슬슬 풀릴 때쯤 의자에 앉아 눈을 풀었다. 안경을 벗고 맞대어 비빈 손을 대었다. 꼬여있던 끈이 풀어진 듯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 다시 힘내서 해보자!! 각오를 다시 다졌다.

 

 안경을 쓰고 다시 공부를 하려 샤프를 들었을 때였다. 순간 안경에 찬란한 빛이 돌았다. 역시 오후라서 그런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빛은 계속해서 커져 광선을 이루었다. 뭐야! 안경에 그런 게 왜 나오는 거야? 난 안경을 벗어 안경과 때 아닌 눈싸움을 했다. 안경은 평소대로 돌아온 듯했다. 뭐야, 내 눈이 안 좋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안경이 붕 떠올랐다. 그리고 아까와는 또 다른, 무지갯빛 광선을 쏘아대는 것이었다. 뭐야? 얘 왜이래!!! 이상해!!!! 불량인가?? 이건 불량의 범주를 넘어갔잖아!!! 생각은 또다시 헝클어진 채로, 입 떡 벌린 채 얼어버렸다.

 잠시 후, 안경 안에서 사람의 발 같은 것이 나오고, 머리카락이 나왔다. 그래도 난 그냥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며 바라봤다. 지금 보이는 건 환상, 그래 환상일 거야. 환상이라면 이런 게 당연하겠지. 당연하겠지. 제정신이 아닐 때 더 차분해지는 걸까. 난 말없이 고갤 끄덕이며 그 상황을 보고 있었다.

 얼마뒤 그 여자 난쟁이가 내 책상 위에 서있었다. 발을 덮는 드레스, 키보다 훨씬 긴 흰 머리카락. 그리고 창백한 얼굴색, 모든 것이 이상하게 조화로워 보였다.

 

 ........... 역시 환상이잖아. 지구에 이런 사람 없는 걸.........

 

 근데 예쁘다. 머리 길고, 드레스 입었고.. 거기다가 인형 같은 몸매. 우와, 내가 저 사이즈만 되면 좋겠다. 방송 나가면 인기 짱이겠네. 잠깐만, ..설마.. 처녀 귀신? 아니야. 처녀귀신이 저런 옷 입을 리가 있나. 그러니까 저건 환상이지. 잠시 후에 그 사람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메아리치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내가 보여?”

 현실로 다시 되돌아오는 한마디였다.

 .

 .

 

 뭐뭐무머야?저저저저저저저거역시귀신?나귀신본거야?18년동안한번도못본귀신?정말?진짜?레알?나귀신본거지?이거실제상황??그럼저미니사이즈쭉쭉빵빵이귀신인거야?정말로쟤가귀신?어버버버버무서워무서워무서워이제나지옥에잡혀가는건가?이렇게이팔청춘인데?아직엄마에게효도도다못했다고?거긴싫어!!!!싫다고!!!거긴엄청나게고통스럽다며?난그렇게죽기싫단말이야아아아아아정말이게무슨일이야아나살고시퍼살고싶다고

 놀라서 아무 말도 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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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늦어졌네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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