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서점에 책을 고르면 상태 여부를 먼저 확인한다. 가끔 서점에 겉표지가 없는 양장본을 만난다. 겉표지는 양장본을 위한 특별한 옷이다. 옷이 없는 양장본은 벌거벗은 상태다. 책 내부 상태가 깨끗해도 겉표지가 없으면 허전하다. 완전체 느낌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겉표지 없는 양장본이 절판된 것이라면 안 살 수가 없다. 이런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안 사면 나중에 후회한다.


오늘 알라딘 서점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 공저의 《지의 정원》(예문)을 샀다. 예전부터 사고 싶은 책이라서 잔뜩 기대를 많이 했다. 책 품질 등급이 ‘최상’이라서 새 책에 가까운 양장본일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겉표지가 없었다. 겉표지만 있었으면, 진짜 새 책으로 보일 수 있었다. 내부 상태는 훌륭했다. 낙서가 없고, 찢어진 부분도 없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에게 퀴즈를 내겠다.
새 책 같은 양장본인데 겉표지가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의 품질 등급은 무엇일까? 객관식이다. 정답을 맞히면 상품이 없다.
1번 최상
2번 상
3번 중
4번 매입 불가
5번 아, 몰라! 이딴 퀴즈를 내가 왜 풀어야 하는데?
정답은 3번이다. 새 책인데 겉표지가 없는 양장본은 ‘중’ 등급을 받아야 한다.
품질 등급 기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려면 ‘온라인 중고샵’의 ‘알라딘에 팔기 간단 안내’에 들어간다. 그러면 ‘자주 묻는 질문’ 게시판이 나오는데,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이 ‘중고상품 품질 등급 판정 기준은 무엇입니까’라고 되어 있다. 그걸 클릭하면 ‘중고상품 품질 등급 판정 가이드’가 나온다.
* 중고상품 품질 등급 판정 기준 (링크)
http://www.aladin.co.kr/ucl_editor/usedshop/c2b/popup_guide.html
나만 어렵게 찾은 것인가? 품질 등급 판정 가이드를 찾느라 한참 헤맸다.

품질 등급 판정 가이드에 이런 내용이 있다. 겉표지가 없는 양장본 상태가 새 책처럼 깨끗하면, ‘중’ 등급을 받는다고 나와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지의 정원》은 ‘중’ 등급을 받아야 하고, 판매가를 조금 내려야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서점 계산대에 있는 직원에게 ‘최상’으로 매겨진 품질 등급에 대해서 따지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돈을 덜 내려는 치졸한 속셈이 있었다. 하지만 그냥 참고 넘어갔다. 헌책방에 책 살 때 책값을 깎아달라고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알라딘 서점을 자주 가는 편이라서 품질 등급 가지고 직원과 말싸움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책을 사고 난 후에 다시 생각해봤다. 내가 품질 등급 판정 가이드를 잘 몰라서 ‘최상’이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 있다. 십 분간 차분하게 생각해 봐도, 《지의 정원》의 품질 등급이 ‘최상’을 받아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 책 상태는 새 책이나 다름없다. 종이 변색 흔적, 접힌 흔적이 전혀 없다. 책이 심하게 변형되지도 않았다. 책 뒤쪽 면지에 희미한 얼룩이 조금 남아 있다. 여기까지만 봐도 책 상태가 좋아서 중고 품 등급은 ‘최상’이다. 그렇지만, 겉표지가 없어서 ‘중’ 등급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