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 빛과 물질의 탐구가 마침내 도달한 세계
그레고리 J. 그버 지음, 김희봉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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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 루틴은 다음과 같다. 먼저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하기에 앞서 책을 피아노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러고 나서 책을 펼친다. 책을 읽지 않는 시간에는 책 사진도 보정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카드 이미지로도 만든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노트북으로 서평을 쓴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하는 데 필요한 감각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시각이면 충분하다. 물론 책장을 넘기고 키보드를 두드릴 때 아무런 촉감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상당히 느낌이 이상하겠지만, 이를 이 행위의 필수 요건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 종보다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한다. 누군가가 정보를 생산하는 일, 내가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 받아들인 정보를 재생산하는 일 모두 시각에 의존하여 행해진다. 청각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시각보다는 지속성과 안정성이 떨어진다. 인간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 후각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보임/보이지 않음에 관한 문제는 늘 중요하게 다뤄졌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은 보여주지 않을지 계산해야 하니 말이다.

문학에서도 보이지 않음은 오랫동안 화두가 되어 왔다. 투명 인간 혹은 인간과 물건을 보이지 않게 하는 도구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 플라톤이 살던 시대에서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야기를 통해 보이지 않음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던 인류는 과학으로 보이지 않음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보이지 않는』은 광학과 SF소설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보임/보이지 않음의 긴 역사를 이야기한다.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자외선과 적외선의 발견부터 현재 진행 중인 투명 망토 연구와, 더 나아가 보이지 않음을 연구하다가 발견한 것들을 다른 분야에 적용한 예시까지 아우른다. SF 작가들이 과학자들보다 먼저 상상해 낸 것, 혹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영향을 받은 작품도 광학의 역사와 엮어낸다.

보이지 않도록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던 시대부터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해 낸 지금까지. 인류는 계속해서 보이지 않음을 향해 나아왔다. 이야기와 과학도 함께 발전했다. 보이지 않음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이야기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투명 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대답에 따라 역사도 달라질 테니 이제 욕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뉴턴의 광학 연구는 빛의 물리학을 이해하는 데 집중하여 본질적으로 "빛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 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었다. 뉴턴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흰색 빛이 가시광선의 모든 색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는 유리 프리즘을 사용하여 흰색 빛을 무지개색으로 분리하여 이를 입증했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유명한 음반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Dark Side Of the Moon》의 표지를 본 사람이라면 프리즘에 의해 갈라지는 빛의 그림을 보았을 것이다. - P46

웰스는 "마술이 작동한 뒤에 판타지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다른 모든 것을 인간적이고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소한 것들을 세밀하게 다듬어야 하고, 처음의 가정을 엄밀하게 따라야 한다. 주요 가정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꾸며서 덧붙이거나 하면 바로 설정이 엉켜서 흐리멍덩해진다." - P148

시설물을 보호하는 것은 보이지 않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겸손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다. 50퍼센트만 투명해지는 투명 장치는 숨기는 방법으로는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해양 망토가 파도의 50퍼센트를 튕겨 낸다면 파괴될 구조물이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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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주식회사
잭 런던 지음, 한원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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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에 집어삼켜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신념 때문에 인간을 죽이기도 한다.


사람의 선택과 행동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은 신념이 아닐까 싶다. 신념이야말로 성격과 그 외 기타 요인을 무력화하는 강력한 도구인 것 같다. 신념으로 인해 개인이나 집단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지기도 하지만 신념에만 매몰되어 역사적 비극을 일으키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신념은 양면적이고 복합적이다.


암살국의 보스 이반 드라고밀로프와 조직원들은 사회 정의에 반하는 인물만 살해한다는 신념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암살국의 외부인인 윈터 홀은 그들을 도덕광이라고 평가한다. 모이면 철학 이야기를 하고 누구보다도 윤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덕 원칙에 따라 사회악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암살이라는 범법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홀은 암살국 보스에게 암살국 보스를 암살해 달라고 의뢰한다. 드라고밀로프는 홀과의 철학적 논쟁을 펼친 뒤 자신을 암살하는 게 옳다고 여겨 암살 의뢰를 수락한다. 홀은 드라고밀로프가 죽지 않길 바랐으나 드라고밀로프는 들어온 의뢰는 철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깰 수 없다며 조직원들에게 자기를 암살하라고 지시한다. 쫓고 쫓기는 추격 속에서도 그들은 철학을 내려놓지 않는다. 윤리라는 그들의 목적과 신념이 그들을 폭력의 사이클로 몰아넣었음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드라고밀로프는 윤리라는 신념 때문에 암살국을 이끌어 왔지만 결국 그 화살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그는 신념에 속박되어 있어서 자기 자신마저도 죽일 수 있는 인물이다. 선을 추구하다가 악을 저지르고 다시 악을 선의 논리로 정당화하지만, 선과 악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죽음으로 내몰린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사이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그들의 신념에 따른 행동은 선악의 이분법을 작위적인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끝내 한계에 다다르고 해묵은 질문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래서 윤리란 무엇이고, 윤리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윤리를 실현한다는 게 가능은 할까.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활동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가장 엄격한 정직의 잣대가 필요해. 그게 없으면 파멸에 이르고 말 거야. - P21

우리는 계약을 파기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파기한 적 없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한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 말이 세상을 지탱하는 뼈대처럼 단단하지 않다면, 삶에는 아무 희망이 없을 것이며, 본질이니 거짓이니 만물이 혼돈으로 곤두박질칠 겁니다. 우리는 이런 거짓을 부정합니다. 우리는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는 걸 관철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증명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동지들? - P189

누구에게나 살기 위해 싸우려는 본능이 있어. 하지만 갖은 이유로 정당화하는, 죽음에 대한 갈망도 숨어 있어. 우리는 그저 당신의 묘한 아버지의 삶에서 무엇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 P229

구원은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도덕에서 비롯돼야만 한다. 점점 커지는 세상의 도덕성 그 자체에서 비롯돼야 한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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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 세계문학 5
아델베르트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 / 열림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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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슐레밀은 악마에게 그림자를 파는 대가로 계속해서 금화가 나오는 주머니를 얻는다. 슐레밀은 엄청난 부를 가지게 되지만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비난받는다. 얼핏 보면 재물을 향한 욕심을 비판하는 평면적인 교훈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그렇게 해석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자 상실이 단지 부에 대한 탐욕의 결과라는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결말은 둘 중 하나였을 거라고 예상한다. 슐레밀이 영영 그림자를 잃은 채 사람들에게 비난받으면서 살거나, 아니면 악마를 이겨서 그림자를 되찾거나. 그러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렇다면 그림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림자가 없는 세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또는 사물 등 모든 것)은 물리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즉 그림자의 부재는 과학에서 벗어난 것, 세계가 작동하는 일반 법칙에서 이탈한 것이다. 슐레밀은 그림자를 잃음으로써 세상의 보편적인 것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그가 세상의 일반 법칙에 구속되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림자를 팔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일명 보편성,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에게 사람들은 이질감을 느낀다. 다른 존재는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 사회 구성원들은 슐레밀이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타자화한다. 그는 그림자를 잃고 정상성의 범주 바깥으로 옮겨짐으로써 인간 사회에서 추방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슐레밀도 자신이 이전의 죄로 인해 인간 사회로부터 차단되었”(p.118)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거래한 상대가 악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니 굳이 따지자면 그의 죄명은 무지의 죄 내지는 돌다리를 두들겨 보지 않은 죄 정도가 되지 않을까. 과연 그가 남들보다 더 큰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을까.


슐레밀에게 그림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저자 역시 작품에서 돈 자체를 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러니 그림자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돈보다도 더 중요한 포인트이지 않을까 싶다. 슐레밀은 누구보다도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내 마음에는 벌써 어떤 예감이 싹트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업적과 덕성보다 돈이 훨씬 중요할지라도 실은 그림자야말로 그런 돈보다도 훨씬 더 귀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 P32

자, 정말 제가 누군지 모르시나요? 저는 보잘것없는 악마입니다. 탁월한 기예를 주어도 친구들로부터 배은망덕만을 되받는 학자이자 물리학자처럼 보이는 그런 악마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약간의 실험을 즐기는 것 이외에는 이 지구상에서 다른 어떤 것도 즐기지 않는 악마입니다. - P75

우리는 단지 동일하게 수동적으로 작동되는 동시에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수레바퀴로서 그 안에 물려 있을 뿐이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 일어나는 것이고, 존재해야만 했던 것이 일어났던 것이며, 그러한 섭리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아. 마침내 내 운명에서, 그리고 내 운명을 공격하는 이들의 운명 속에서 나는 그러한 섭리의 수용을 배웠던 거야.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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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더링 하이츠 (리커버) 을유세계문학전집 여성과 문학 리커버 에디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유명숙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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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더링’은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 폭풍우가 몰아치면 대기의 소요에 그대로 노출됨을 이르는 말”(p.11)이라고 한다. 그러니 ‘워더링 하이츠’는 높은 언덕에 있어서 폭풍우가 오면 영향을 강하게 받는 집이라는 뜻이 된다. 국내에서 이 작품은 ‘폭풍의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역자는 해설에서 ‘워더링 하이츠’를 ‘폭풍의 언덕’이라고 하는 것은 번역이라기보다는 번안이라고 해야 하며, ‘워더링 하이츠’ 자체가 소설에서 고유 명사로 기능하므로 작품 제목을 한국어로 바꾸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워더링 하이츠』는 워더링 하이츠라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언덕 위에 있는 워더링 하이츠와 언덕 아래에 있는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라는 집 두 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언쇼 가와 린턴 가 두 집안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이자, 이 두 집안을 향한 한 남자의 복수극이다. 복수극을 벌인 그의 이름은 히스클리프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한집에서 자라면서 서로 유대감을 느끼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신분 차이로 인해 캐서린은 에드거 린턴과 결혼한다. 그리고 히스클리프의 잔인한 복수가 시작된다.

화자는 히스클리프를 악마처럼 묘사한다. 그가 원래 악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일까, 성장 배경이 그를 악인으로 만든 걸까, 아니면 둘 다일까, 읽는 내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리학에서, 사이코패스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좋은 어른들 곁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고 자라면 범죄자가 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또 아이를 학대하는 보호자는 어렸을 때 학대당한 아이였을 공산이 크다고도 한다.

히스클리프는 사랑과 학대와 차별을 모두 경험했다. 히스클리프는 지칠 줄 모르는 순전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기 이익을 최대화할 줄 아는 계산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학대와 차별이 그에게 남긴 상처가 사랑마저 비뚤어지게 하고 그를 완전한 악인으로 몰아세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히스클리프의 사랑이자 요절한 캐서린 언쇼는 소녀 유령이 되어 워더링 하이츠에 나타난다.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세입자 록우드는 집주인 히스클리프에게 인사하기 위해 워더링 하이츠에 방문했다가 폭설로 인해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꿈에서 소녀 유령을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언덕 위에 있는 집에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폭풍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히스클리프는 스스로 폭풍을 만들어내어 모두를 폭풍 속으로 집어넣어 흔들었다. 어쩌면 폭풍은 원래 그곳에 계속 존재해 왔는지도 모른다. 원래 보이지 않던 것을 히스클리프가 밖으로 끄집어내어 모두에게 펼쳐 보여 줬을 뿐일지도.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그의 슬픔은 슬퍼하기를 거부하는 그런 종류의 슬픔이었습니다. 그는 울지 않았고 기도 드리지도 않는 대신 저주하고 저항했어요. 하느님이고 인간이고 몽땅 증오하면서 자신을 마구잡이로 방탕에 내던졌답니다. - P104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넬리,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걔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아. - P129

내가 이 세상에서 맛본 크나큰 고통들은 모두 히스클리프가 당한 고통이었어. 처음부터 그 고통 하나하나를 지켜봤고 겪어 냈지. 살아오는 동안 내 생각의 가장 큰 몫이 바로 히스클리프였어. 모든 것이 소멸해도 그가 남는다면 나는 계속 존재해.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은 있되 그가 사라진다면 우주는 아주 낯선 곳이 되고 말 거야. 내가 그 일부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거야. - P131

인간은 결국에 가서는 자기 본위가 되는 건가 봅니다. 유순하고 관대한 사람들의 이기심이 자기 맘대로 쥐고 흔들려는 사람들의 이기심보다 조금 더 정당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상대방이 내 이해를 주된 관심사로 삼지 않는다고 서로 느끼게 됐을 때 행복한 결혼의 막은 내린 겁니다. - P147

‘내’ 히스클리프는 저렇지 않아. 나는 내 히스클리프를 사랑할 거고, 저승까지라도 데리고 갈 거야. 그는 내 영혼 안에 있으니까. - P256

당신이 우리를 아무리 비참하게 만든다 해도 당신의 그 잔인함이 더 큰 비참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면 복수가 돼요. 당신은 비참해요. -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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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열림원 세계문학 4
헤르만 헤세 지음, 김길웅 옮김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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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을 했다. 그게 나한테는 글을 읽고 쓰는 일이었다. 내 목표는 늘 불투명하게 분명했다.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치. 내게 현실적인 다른 길을 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전공을 살릴 생각이 없었다면 애초에 국문과를 택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나는 인문학 전공생으로 살아남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현실에 발 붙이고 서 있는 이상주의자라서 그렇다.

그래서였을까.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든, 나는 이 길을 가고 싶다.”라는 문장에 끌린 건. 종착지는커녕 잠시 후 거쳐 갈 정거장조차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 길을 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원했던 건지도 모른다. 가령 이런 이야기.

싯다르타는 기존 종교적 관습을 따르는 것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참나[眞我]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나 일반적인 종교적 수행의 길에서 벗어난다. 자기를 따르는 친구 고빈다와 함께. 그리고 두 친구는 다시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서기 위해 헤어진다. 싯다르타의 그 여정을 그린 소설이 바로 『싯다르타』다.

이렇게 써 놓으면 아주 뻔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고전이라는 게 그렇듯 너무나 유명하지만, 막상 직접 읽어 보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독자 앞에 펼쳐진다. 인간이라는 존재들의 핵심을 꿰뚫는 이야기, 그래서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우리에게까지 와닿는 보편성을 품은 이야기를 말이다.

그걸 헤세는 강물에 비유한 게 아닐까 싶다. 강물은 늘 그곳에 존재하지만 계속해서 흘러내려 가며 모습을 바꾼다. “샘물이 되어, 개천이 되어, 강물이 되어, 계속 새로이 뭔가를 추구하며”(p.202). 그토록 다양한 모습 속에 다양한 목소리가 숨어 있다. 강물은 모든 것이 되며, 모든 것은 다시 강물이 된다. 싯다르타와 사공 바수데바는 강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한다. 강물을 통해 모든 것을 듣고 보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강을 떠나지만 누군가는 강으로 돌아간다. 강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은 제각기 다르다. 강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경로로 갈지, 어디로 갈지, 강물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아직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무한히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유일자, 가장 중요한 것이자 유일하게 중요한 것인 그 유일자를 모르는데, 이런 잡다한 것들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P18

명상에 침잠한다는 게 뭐야? 육체를 떠난다는 게 뭐야? 단식을 하고 숨을 참는 게 뭐냔 말이야. 그것은 자아로부터의 도피일 뿐이야. 그것은 나라는 상태가 가져오는 고통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것일 뿐이야. 그것은 고통과 삶의 무의미성에 대한 순간적인 마취에 불과해. 이런 도피, 잠시뿐인 이런 마취는 주막에서 잠든 마부도 아는 거야. - P33

명상에 침잠한다는 게 뭐야? 육체를 떠난다는 게 뭐야? 단식을 하고 숨을 참는 게 뭐냔 말이야. 그것은 자아로부터의 도피일 뿐이야. 그것은 나라는 상태가 가져오는 고통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것일 뿐이야. 그것은 고통과 삶의 무의미성에 대한 순간적인 마취에 불과해. 이런 도피, 잠시뿐인 이런 마취는 주막에서 잠든 마부도 아는 거야. - P61

청년기 내내 그를 따라다녔던, 그의 몫이었던 어떤 것이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듣고 싶은 욕망이었다. - P63

더 이상 나를 죽이고 갈가리 찢어서, 그 조각들 배후에서 어떤 비밀을 찾아내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요가베다의 가르침을 받고 싶지 않아. 아타르바베다의 가르침도, 금욕주의자들의 가르침도, 그 어떤 가르침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 나 자신에게서 배울 거야. 나 자신의 제자가 되고, 나 자신을 알고 싶어.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고 싶어. - P65

아무것도,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를 병들게 한 근원이었다는 것을 그는 이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P144

누군가가 뭔가를 구한다면, 그 사람의 눈에는 자신이 구하는 것만 보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아무것도 찾지 못합니다. 사물을 본연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는데 무엇을 구하는 사람은 그러지를 못합니다. 구하는 사람은 늘 구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목적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목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지요.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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