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열림원 세계문학 4
헤르만 헤세 지음, 김길웅 옮김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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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을 했다. 그게 나한테는 글을 읽고 쓰는 일이었다. 내 목표는 늘 불투명하게 분명했다.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치. 내게 현실적인 다른 길을 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전공을 살릴 생각이 없었다면 애초에 국문과를 택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나는 인문학 전공생으로 살아남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현실에 발 붙이고 서 있는 이상주의자라서 그렇다.

그래서였을까.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든, 나는 이 길을 가고 싶다.”라는 문장에 끌린 건. 종착지는커녕 잠시 후 거쳐 갈 정거장조차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 길을 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원했던 건지도 모른다. 가령 이런 이야기.

싯다르타는 기존 종교적 관습을 따르는 것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참나[眞我]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나 일반적인 종교적 수행의 길에서 벗어난다. 자기를 따르는 친구 고빈다와 함께. 그리고 두 친구는 다시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서기 위해 헤어진다. 싯다르타의 그 여정을 그린 소설이 바로 『싯다르타』다.

이렇게 써 놓으면 아주 뻔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고전이라는 게 그렇듯 너무나 유명하지만, 막상 직접 읽어 보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독자 앞에 펼쳐진다. 인간이라는 존재들의 핵심을 꿰뚫는 이야기, 그래서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우리에게까지 와닿는 보편성을 품은 이야기를 말이다.

그걸 헤세는 강물에 비유한 게 아닐까 싶다. 강물은 늘 그곳에 존재하지만 계속해서 흘러내려 가며 모습을 바꾼다. “샘물이 되어, 개천이 되어, 강물이 되어, 계속 새로이 뭔가를 추구하며”(p.202). 그토록 다양한 모습 속에 다양한 목소리가 숨어 있다. 강물은 모든 것이 되며, 모든 것은 다시 강물이 된다. 싯다르타와 사공 바수데바는 강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한다. 강물을 통해 모든 것을 듣고 보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강을 떠나지만 누군가는 강으로 돌아간다. 강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은 제각기 다르다. 강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경로로 갈지, 어디로 갈지, 강물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아직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무한히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유일자, 가장 중요한 것이자 유일하게 중요한 것인 그 유일자를 모르는데, 이런 잡다한 것들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P18

명상에 침잠한다는 게 뭐야? 육체를 떠난다는 게 뭐야? 단식을 하고 숨을 참는 게 뭐냔 말이야. 그것은 자아로부터의 도피일 뿐이야. 그것은 나라는 상태가 가져오는 고통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것일 뿐이야. 그것은 고통과 삶의 무의미성에 대한 순간적인 마취에 불과해. 이런 도피, 잠시뿐인 이런 마취는 주막에서 잠든 마부도 아는 거야. - P33

명상에 침잠한다는 게 뭐야? 육체를 떠난다는 게 뭐야? 단식을 하고 숨을 참는 게 뭐냔 말이야. 그것은 자아로부터의 도피일 뿐이야. 그것은 나라는 상태가 가져오는 고통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것일 뿐이야. 그것은 고통과 삶의 무의미성에 대한 순간적인 마취에 불과해. 이런 도피, 잠시뿐인 이런 마취는 주막에서 잠든 마부도 아는 거야. - P61

청년기 내내 그를 따라다녔던, 그의 몫이었던 어떤 것이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듣고 싶은 욕망이었다. - P63

더 이상 나를 죽이고 갈가리 찢어서, 그 조각들 배후에서 어떤 비밀을 찾아내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요가베다의 가르침을 받고 싶지 않아. 아타르바베다의 가르침도, 금욕주의자들의 가르침도, 그 어떤 가르침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 나 자신에게서 배울 거야. 나 자신의 제자가 되고, 나 자신을 알고 싶어.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고 싶어. - P65

아무것도,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를 병들게 한 근원이었다는 것을 그는 이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P144

누군가가 뭔가를 구한다면, 그 사람의 눈에는 자신이 구하는 것만 보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아무것도 찾지 못합니다. 사물을 본연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는데 무엇을 구하는 사람은 그러지를 못합니다. 구하는 사람은 늘 구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목적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목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지요.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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