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보다 Vol. 3 빛 SF 보다 3
단요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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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시각에 상당히 의존하는 종이다. 즉, 빛 속에서 살아간다. 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볼 수 있는 만큼만 보며 살아간다. 얻을 수 있는 정보도 그 범위에 국한된다. 인간은 가시광선의 범위에서 벗어난 종류의 빛인 적외선을 맨눈으로 볼 수 없다.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간접적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단요)는 남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 냉동된 원시인이 발견된 사건을 두고 종교역사학 연구자와 송전망 관리자인 두 친구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연구 결과 원시인은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을 봤던 것으로 밝혀진다. 적외선을 보는 사람은 사람도 잘 분간하지 못하고, 글자도 읽을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소설의 현재 시점에는 원시인과 같은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대와 중세 시대에 그들은 마술사로 불리다가 제거됐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되고 마녀로 몰려 죽었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먼 미래에 발견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믿으려는 사람들은 그곳에도 없다. 스무 세기에서 서른 세기가 지나도록 그들은 여전히 타자로 남았다.

진실은 쉽게 가려진다. 권력자들이 작정하고 진실을 숨기거나 왜곡하는 세상에서는 희생양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굴절과 반사」(서이제)의 세계에도 피해자가 존재한다. 인류는 환경 파괴로 인해 해저 도시에서 살게 되었고, 정치인들은 지상에서 절대 살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해저 도시는 수압으로 인해 "최고의 기술력으로 시공되었다던 해저터널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세계다. 그 참사로 연인을 잃은 주인공에게 의뢰가 도착한다. 굴절을 거듭하다가 간신히 도착한 빛 한 줄기는 빛이 없는 해저 도시에 균열을 낸다.

빛은 세계를 무너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빛을 잘못 사용하면 빛의 힘이 자신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분명히 인간에게 빛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언제, 얼마나, 어떤 빛을 보느냐에 따라 빛은 필수품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불규칙한 생활 습관으로 인해 빛을 보면 안 되는 시간에 빛에 노출되면 뇌의 ‘시계탑’이 고장 나듯이 말이다.(「시계탑」, 이희영)

이토록 빛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너무나 다면적이어서 어떤 빛을 보며 살아가고, 빛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따라 삶의 양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이 지구를 포기하고 우주로 나간다면, 그리고 광속에 가까운 속력을 낼 수 있게 된다면 인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물리 법칙을 적용받으며 살 것이다.(「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관한 소고」, 서윤빈) 라블레 윤은 제한 속도가 광속이나 다름없는 세계에서 광속이라는 제한을 위반하는 인물들을 영화에 담는다. 모두가 그의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그는 끝까지 제약에 반기를 드는 영화를 찍는다. 방향이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방향을 찾고자 한다.

라블레 윤의 방향 찾기는 비단 미래에 우주에서 사는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도 우리는 방향을 너무나 쉽게 잃곤 하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장강명)는 사법 기관의 역할이 민간에 넘어가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법적 문제를 빠르게 해결함으로써 신속하게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의문을 던진다. ‘신속한정의’는 정말로 정의로울 수 있는지,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SF가 현재를 사는 독자(와 현실)에게 질문한다.

빛은 정의를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것이 정의라고 사회적으로 합의되는 과정과 결과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정의는 사회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춘우삭래(春雨數來)」(위래)의 인류는 SN 2024B라는 우주 존재가 보내는 빛을 “인간종을 구원할 빛”이라 여기며 그를 ‘등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SN 2024B를 등대로 여기고 그에게 가는 과정이 정당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화자는 부인하지 않는다. ‘등대’로 향하는 인류의 모습은 마치 하루살이를 닮았다. 욕심 때문에 거짓된 빛에 현혹되고, 파멸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현실을 우주 공간에 투영한다.

도처에 빛이 있다. 정의의 빛과 정의를 표방한 거짓된 빛은 뒤섞여 있다. 어떤 빛을 볼지 정하는 일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역시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어쩌면 인간들은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해명을 바라는지도 몰랐다. 그것 하나만 충족되면 기약 없는 구원조차 기다릴 만한 것으로 변하니 말이다. - P26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너를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너의 죽음을 확인하길 기다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껏 너의 죽음을 상정하고 살아왔음을, 그 어떤 희망도 품지 않고 살아왔음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내가 모든 희망을 버린 때에도 너는 나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을 텐데. - P56

"5일 굶었다 하루 잘 먹으면 충분한 영양이 공급될까요? 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꺼번에 몰아서 잔다고 생체리듬이 절대 좋아지지 않습니다. 인간처럼 시간에 민감한 종도 없죠. 정시에 출근해야 하고, 마감 시간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신체적 시간은 완전히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게 문제죠. 참 어리석은 생명체 아닙니까?" - P98

요란한 추모를 하기에는 시간이 좀 많이 지난 후였다. 장례식은 끝난 지 오래였고, 그 장례식은 우리가 참석하기에는 너무 먼 곳에서 열렸다. 하지만 그게 잊기 충분한 거리였다는 뜻은 아니다. 우주는 시공간 직조물이다. 우리가 한데 모였다는 것과 라블레 윤을 기억하는 시간은 동의어다. - P105

하지만 다시 한번, 카리스마 있는 인물의 말은 늘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 P146

아마도 느끼고 계시겠지만, 우리는 정해진 일을 추진할 때는 그 어떤 의사 결정 과정보다도 합리적이고 경제적이지만 반대로 무언가를 회의하는 데는 그리 적합하지 않습니다. 등대로 간다는 목적이 성사되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의 목적에 대해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니까요. 반대할 목소리는 모두 묻어버렸으니까요.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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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콰마린
백가흠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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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진행한다. 장애물만 없다면 빛은 사방팔방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특정 방향으로 진행하게끔 빛을 굴절시킨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세상이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뻗어나간 빛들이 도달하는 지점에 그들의 아콰마린석이 있었다. 아콰마린석은 스스로 빛날 수 없어서 굴절된 빛들을 집어삼키는, 보석인 척하는 돌(石)이다.

소설은 청계천에서 잘린 채 버려진 손이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그 손톱은 아콰마린처럼 바닷빛의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케이의 팀은 손의 주인을 찾아낸다. 손의 주인은 케이의 앞에 살아 있는 채로 나타난다. 손의 주인은 왜 자기 손을 잘라서 타인에게 준 것인지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저 아콰마린을 그들에게 던질 뿐이다.

버려진 손의 손가락은 여러 방향으로 꺾여 마치 ‘K’ 자처럼 보인다. 케이는 잘린 손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믿고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아콰마린에 균열을 내고 거기 갇힌 빛들을 가시화하는 것인 줄도 모른 채 케이는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굴절되어 잡아먹힌 빛들이 아콰마린에서 벗어나기 위해 짜 놓은 복수극에 케이는 휘말린다.

케이는 케이이기 때문에 휘말려야 했다. 동일한 이유로 케이는 끝까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케이로 남았다. 그는 불의의 역사를 통과하며 국가 권력의 폭력에 눈을 감음으로써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행하는 소극적 가해와 시키지 않아도 권력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적극적 가해를 가르는 기준은 너무나 가녀리다. 수동적 가해자는 능동적 가해자가 되기 쉽다.

그래서 케이는 너무 많다. 케이는 케이들이 되었고, 그들로 인해 피해자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케이들은 아콰마린석을 만들었고, 아콰마린석은 케이들을 닮았다. 결코 스스로는 빛날 수 없는 아콰마린석은 그들 스스로를 은유한다. 빛이 거두어지면 보석이 아니라 돌이었다는 사실이 탄로 날 수밖에 없는 존재들. 아콰마린석은 케이들이 남긴 비극이었다. 누군가의 손이 잘렸듯이 이제는 그들이 세상에서 도려질 시간, 피해자들 대신 그들이 아콰마린에 침잠할 시간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콰마린석은 어떤 빛이든 담을 수 있고, 어떤 빛깔로도 변할 수 있는 흔한 보석이다. 그러므로 아콰마린석은 보석이 아니다. 다이아몬드처럼 귀하지도 않으며 신비하지도 않은, 자체 발광할 수 없는 돌에 불과하다. 그것은 수동적인 빛이다. 결국 그것은 모든 빛이 빠져 죽은 바다다. - P14

당시 어떤 희망을 품었던, 십대였던 내가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이 되어보니, 그건 잘못된 말이었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희망은 혼자에겐 위험한 것이지만 같은 희망을 품은 여럿에게는 위험한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혼자서 희망의 인계점에 다다랐을 때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건 희망이 아니라, 그러니까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희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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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 강인욱의 처음 만나는 고고학이라는 세계
강인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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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아끼는 건 수백 권의 책,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앨범, 인형들. 내가 재밌게 읽은 책이 계속 읽혔으면 좋겠고, 위로받았던 음악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닿았으면 좋겠고, 내 애착 인형은 오래오래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나는 물질들에 둘러싸인 채 물질들에 집착한다. 결국 사라지고 말 것들을 사라질 시간 틈에 조용히 새긴다.

아주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이 시간을 켜켜이 쌓아 올려 왔다. 그 틈 사이사이에서 거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운이 좋게도 사라지지 않고 우연히 먼 미래에 발견되는 건 유물 혹은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유물과 유적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고 벌어진 시간의 틈을 메워 과거의 삶들을 잇는 일이 바로 고고학이다.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은 고고학이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세계”에 독자가 발을 잘 내디딜 수 있게 이끈다. 먼저 고고학이란 무엇인지 설명한 뒤, 유물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방법과 유물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고고학을 둘러싼 음모와 오해를 터놓으며 고고학의 의의를 되새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과 AI로 인하여 변화할 고고학의 미래를 논하며 책을 끝맺는다.

나는 고고학을 잘 몰랐다. 뭔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인 것만 같고, 나와는 크게 연관이 없는 분야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고고학은 보통 사람의 이야기다. 토기나 화장실과 같이 사소하고 일상적인 유물이나 유적을 통해 우리처럼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낸 과거 사람들의 흔적을 그러모으고 맞추는 일이다.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 하나쯤 없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멈출 일은 없지만, 그런 보통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여야 세상을 굴릴 수 있다. 사회 구성원이 사회를 지속시키고 역사를 만든다. 역사는 전부 그렇게 만들어졌다.

고고학은 평범함에서 역사를 찾아낸다. 유물과 유적에는 평범함과 역사가 묻어 있고, 그 생김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변해 왔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은 물질적 삶을 비물질적인 디지털 형식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이 글 또한 엄밀히 따지면 0과 1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책 말미에 디지털과 고고학의 상관관계를 언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고학의 연구 대상은 물질에서 비물질로까지 확대되었지만, 디지털이라는 비물질적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다시 물질적인 수단을 활용해야 함을 역설한다. 우리는 비물질의 틈에서 물질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다가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대대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되어, 경제적 가치를 잃고 오래전 폐쇄되었던 웹사이트의 일부가 단계적으로 개방되었다. 잃어버린 인류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하는 뜻을 가진 이들은 그곳에서 다시 힘을 모을 수 있었다. 각국의 탐사대는 지난 일 년간 총 130페타바이트의 데이터를 발굴하였고, (중략) 각종 매체는 이 탐사가 유기체로서의 인류를 연구하고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서이제, 「자유낙하」, 『낮은 해상도로부터』, 2023, p.272.)

몇 달 전 이런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작품은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지구에서의 사료가 전부 소실되는 상황을 그린다. 화성의 인류는 고대 지구인의 역사를 연구하고 기념관에 자료를 전시한다.

그러니까 물질이 비물질이 되고 다시 비물질이 물질이 되더라도, 인류가 지속되는 한 고고학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여기에 우리로 있게 한 흔적들을 찾기 위해. 사라져 버린 방대한 시간의 틈에서 그들을, 우리를 발견하기 위해.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과거가 지금보다 찬란했는지 또는 미개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사람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끊임없이 해석한다. 따라서 과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해석에 해석을 더하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다. 이런 점에서 고고학은 현대라는 렌즈로 과거를 바라보는 카메라와 같다. - P37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이 어딘가에 묻혀 있고, 그것이 수천 년 뒤에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발견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고고학적 유물은 이러한 0에 가까운 가능성을 뚫고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기적 같은 인연은 사실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보는 유물 모두에 숨어 있는 것이다. - P78

사소해 보이는 유물을 형식으로 모아서 그 시간과 공간의 위치를 파악하고 나면 그 집단, 나아가 민족, 때로는 국가별로 고유한 문화를 볼 수 있다. 이는 수학의 프랙탈fractal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하나의 현상은 융합돼서 전체를 반영하고, 전체의 모습은 하나의 현상으로 표출된다는 뜻이다. 고고학자가 바라보는 사소한 토기의 차이가 사실은 각 국가나 집단 간의 큰 문화 차이를 반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고고학자는 하나의 유물에 숨어 있는 과거의 모습을 보고자 하고, 또 과거의 모습은 사소한 유물에 남아 있다. - P107

한국은 예전부터 차돌이 풍부한데, 차돌은 잘 깨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석기를 제대로 가공할 수 없으니, 그냥 거칠게 만든 찍개를 더 선호했다.
도구의 역사는 단순한 기술의 발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술은 각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도구의 유무만으로 사람 간의 우열을 판단하는 것은 지난 시절의 인종주의적 시각의 연장일 뿐이다. - P126

인간의 죽음을 매장과 제사라는 과정을 통해 받아들이고 살아 있는 자들에게 체화시키는 과정이 무덤이다. 우리가 때만 되면 무덤에서 제사를 지내고 또 파묘를 해서 이장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그들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믿음이다. 고고학자가 죽은 사람이 묻혀 있는 무덤을 통해서 과거 사람의 삶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이유는 무덤이야말로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담긴 과거 사람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 P192

신라 대릉원의 경우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조사했고, 그곳에서 나온 유물은 지금도 한국을 대표하는 국보가 되었다. 그 옆에는 더 많은 고분이 있고, 그 고분을 발굴한다면 그에 못지않은 엄청난 보물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고고학자는 그곳을 발굴할 계획이 전혀 없다. 발굴은 곧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장 파괴될 위험이 없다면 굳이 발굴을 하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고고학자의 첫 번째 미덕이다. - P219

유형화된 책이나 신문이 사라지고 디지털사회가 된 지금, 만약 인터넷이 사라지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아마 이 시대를 기록하는 자료는 대부분 소실되는 셈이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디지털 자료는 책과 같은 유형의 출력물로 백업해서 보존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디지털을 가장 확실히 보존하는 것은 아날로그라는 구시대의 유산인 셈이다. - P325

고고학의 매력은 아무도 찾지 않는 작은 것에 대한 배려에 있다. 유물 속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고고학자의 노력처럼 우리 사회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 역사에 기록된 왕이나 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 하나하나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유물 하나하나를 모아서 역사를 만든다. 바로 고고학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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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변재원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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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원 반대론자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동물원을 주제로 팀플 발표 과제를 한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내게 동물권 이슈는 많은 사회 문제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발표 준비를 하면서 동물원의 기원과 그에 대한 비판을 들여다보다 보니 자연스레 동물권에 관심이 생겨났다. 동물원은 인간의 오락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으며, 동물의 권리는 철저히 짓밟히는 공간이었으니 당연히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물원과 동물권 이야기라는 말에 혹했는지도 모른다. 동물원과 동물권은 지향점이 상반되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이 책은 나의 편견을 깨부쉈다. 사회적 비판에 동물원은 계속해서 인간이 아닌 동물을 위한 시설로 조금씩 변해왔다.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동물들은 지금 당장 동물원이 사라지면 생존할 수 없다. 다친 야생 동물도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기 전에 회복할 공간이 필요하다. 동물원은 동물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공간인 것이다. 물론 형태는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하겠지만.

저자는 수의사로서 아쿠아리움과 청주동물원에서 근무하며 보고 느낀 점을 풀어낸다. 1장에서는 열악한 환경의 아쿠아리움에서 초보 수의사로 근무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당시 아쿠아리움에서 동물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저자 본인은 얼마나 부족했는지, 정말 이걸 다 밝혀도 되나 싶을 만큼 가감 없이 고백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자해로 꼬리를 잃은 알락꼬리여우원숭이가 잘 회복하도록 보살피기는커녕 “쓸모없어진 물건으로 취급”하고 방치한 아쿠아리움의 행태에는 정말 화가 났다. 하지만 동물과 저자의 교감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귀여운 장면이 상상돼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기도 했다. 저자는 동물 학대가 자행되는 환경에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2장은 청주동물원에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동물원이 집인 동물뿐만 아니라 동물원 안팎의 야생 동물의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3부에서는 저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동물원의 모습을 그린다. 저자와 뜻을 함께하는 동료 수의사와 사육사들의 노력으로 동물원은 점차 동물을 위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아프고 늙은 동물 등 약한 존재를 포용하고, 더 나아가 장애인도 동물원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하고자 고민한다.

과거와는 달라진, 그리고 더 나아지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동물원을 바라보는 내 시각도 조금 바뀌었다. 이상을 꿈꾸는 동물원 수의사의 이야기에 나도 함께 이상적인 동물원을 꿈꿔 본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지금의 청주동물원은 다치고 병든, 장애를 갖게 된 동물을 적어도 쓸모없어진 물건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인식과 제도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곧 다른 동물 시설들도 이런 흐름에 동참해 주면 좋겠다. 아픈 존재에 대한 포용까지 배울 수 있는 공간, 이것이 오늘날 동물원의 또 다른 존재 가치라고 나는 믿는다. 태일이도 그런 시설의 넓은 공간에서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키지 않을 때는 사람들을 피해 내실에서 실컷 자면서 잘 지내다 가면 좋겠다. 다시 만나면 해주고 싶은 것이 많다. - P35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멀쩡한 신체 일부를 훼손하지 않고는 전시하기 어려운 동물이라면 굳이 실내 사육을 고집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엄니를 갈거나 잘라내거나 발치한 바다코끼리가 그대로 건강하게 실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회의적이다. 야생의 바다코끼리에게 엄니는 먹이를 찾고 천적 등으로부터 자신과 무리를 보호하는 수단이자 도구다. 특히 해변에 가라앉아 있는 먹이 생물을 캘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 P58

사람 의약품도 그렇지만 동물 의약품도 외국에서는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제품을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생리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의 특성에 맞춰 나온 약품이라도 국내에서는 쉬이 적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외국의 야생에서 사는 동물을 데려다 전시하고는 있는데, 그 동물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은 사용할 수 없어 진료에 한계가 생기기도 한다. 적어도 특수 동물 진료에 필요한 약들은 제한적으로나마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 P72

수달사에 남은 먹이가 충분치 않은 날이면 왜가리는 물새장의 두루미 근처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때는 신기하게도 새장 안의 두루미들이 제가 먹고 남은 미꾸라지를 철망 밖의 왜가리 쪽으로 던져준다. 처음에는 철망 밖으로 떨어진 미꾸라지를 보고서도 그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왜가리가 긴 부리를 이용해 철망 사이로 미꾸라지를 꺼내 먹거나 두루미가 먹으려고 미꾸라지를 집어 흔들다 철망 밖으로 날아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반복되는 광경을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철망 안팎으로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연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 P139

동물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치료하겠다고 수의사가 되어 동물원의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동물병원 건물 때문에 다치고 죽는 새를 마주할 때마다 허탈감이 든다. 그럴 때면 마음을 짓누르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조금이나마 면피하고자 유리창에 충돌 방지 스티커나 붙여볼 뿐이다. 그 스티커마저 실제 효과보다 내 마음의 위안을 위한 게 아닐까 의심하면서. 인간이 이렇게나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 P153

따지고 보면 서식지 파괴, 외래종 밀반입 및 유기 등 문제의 원인은 전부 인간에게 있는데 또다시 인간에 의해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유해 조수 혹은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되어 인간의 손에 관리(라는 이름으로 제거)된다. 생태를 가장 교란하고 있는 종은 인간이건만 죄 없는 동물만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 심지어 포획되는 방식까지도 잔인하기 그지없다. 포상금을 노린 인간들의 총에 맞거나, 틀이나 덫에 갇히거나, 산 채로 묻힌다. 다친 동물을 살리는 일을 업으로 하다 보니 좀 인도적인 처분을 고민할 수는 없는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 P170

이곳에서는 누구도 무슨 동물이 더 비싼지, 새로 수급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안락사와 매매 중 어느 쪽이 더 경제적인지 같은, 듣기조차 싫었던 말들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 어떤 동물이건 청주동물원에 들어오는 순간 가격표가 사라진다. 그 누구도 동물에 값을 매기지 않는다. - P177

청주동물원에서는 장애나 질병이 있는 동물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삼아 더욱 지극히 보살핀다. 몸이 불편해진 개체이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더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원에 장애인 관람객을 위한 편의 시설이 얼마나 설치되어 있던가? 장애 동물사 앞에 선 장애인 관람객을 마주한 순간,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애써 숨기며 현장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인간과 동물 중 무엇이 우선하냐는 의문이 아니었다. 아프고 병든, 혹은 장애가 있는 약한 존재를 더 배려하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품는 그 마음이 동물을 보살피고 돌볼 때는 본능과도 같이 작용하면서 왜 인간을 향해서는 작용하지 못했던 것일까? - P186

추모관 안내판에도 적혀 있듯 동물원은 어쨌든 야생에서 살도록 진화한 동물을 좁은 우리에 가두어 기르는 곳이고, 그 우리에서 길러진 동물은 대부분 야생을 살아낼 수 없다. 동물을 위한 일이라 해도, 동물이 인간의 뜻을 이해할 리 없다. 그래서 우리는 동물에게 항상 빚진 마음을 가진다. 그 빚을 완전히 갚기란 요원한 일이다. 어쩌면 세상 어딘가에 동물원이라는 공간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한 영영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수십 개의 명패 앞에서 이제는 전시만을 위해 동물을 사 오지 않기로 했다고,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이 불편을 감내하도록 두지 않기로 했다고, 무분별한 번식으로 개체를 늘리지 않기로 했다고, 나아지는 동물원의 모습을 하나씩 말해볼 뿐이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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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들
한요나 지음 / &(앤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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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알고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그걸 누가 가지지 못했는지. 사회에서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구조는 학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계급을 체화하며 자란다.

햇볕을 얼마나 쬘 수 있느냐에 따라 계급이 달라지는 세상이 있다. “볕이 잘 드는 정도”에 따라서 1구역부터 7구역으로 나뉜다. 가장 좋은 햇볕을 쬘 수 있는 1구역을 사람들은 선망한다.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까맣고 주근깨가 있다. 얼굴에 자신의 출생지와 계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모두가 볼 수 있는 신체 부위에.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출생 신분에 따른 계급을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자녀를 1구역에 있는 학교로 진학시키고자 하는 욕망은 현실과 닮았다. 계급에 따른 차별 또한 마찬가지다. 주하는 머리카락이 빨갛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차별의 대상이 된다. 주하의 동급생 하루는 아이들이 빨간 머리를 그들의 세계에서 배제하면서도 동경하고 있음을 꿰뚫어 본다. 빨간 머리의 아름다움과 그 뒤에서 오가는 소문 때문이다. 빨간 머리가 햇볕을 쬐는 효과를 지닌 럭스라는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소문. 그런 아이들은 ‘태양의 아이들’이라고 불린다.

태양의 아이들은 햇볕 없이도 살 수 있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다. 좋은 햇볕을 쬐는 일이 권리가 아닌 세상에서 태양의 아이들은 권력의 철저한 관리 감독하에 살아간다. 주하의 곁에 있기를 자처한 친구들은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서로 다른 개인들이 서로의 고유함을 존중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함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갖은 추측과 루머에 휩쓸리지 않고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때 비로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권리를 쟁취하기는 너무나 어렵지만, 박탈당하는 건 너무나 쉽다. 사랑을 외치는 것보다 혐오하는 게 더 편리하다. 그럼에도 싸우고 연대함으로써 빛이 되고자 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찬란한 태양이 되었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믿지 않을 뿐이다. 사람도, 친구도, 환경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을 때 조금 다정할 수 있을 뿐이다. - P34

내가 1구역에 머물고 싶은 이유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도 아니다. ‘안전’이 기본값인 생활을 하고 싶고, 어느 정도는 엄마 걱정도 할 줄 아는 착한 딸이고 싶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고, 그러면 내가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P36

행복을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희와 우린 정말 다른 것 같긴 해. 어떻게 그런 단어가 쉽게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빌리와 레오니는 액세서리 가게에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 P68

이럴 땐 꼭 노범도 연구소도 가족처럼 느껴져서 혼란스럽다. 좋은 의미로 해석하는 게 나쁠 건 없지만, 나에게 좋을 것도 아닌가? 그렇다면 하루의 관심과 지지도 좋게만 해석해서는 안 될까? 나는 자꾸 홀로 벽을 세우게 됐다. 환대를 받아들이는 하루처럼 행동하는 건 어려웠다. - P135

눈에 띄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것은 불가능을 배워야 한다는 것과 같았다. 꽃이 꺾이지 않으려면 예쁘지 않으면 된다고 했던 할머니 말이 떠올랐다. 그런 말을 들은 날엔 할아버지가 귀신같이 알아챘다. 그리고 풀이 짓밟히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꽃을 피우는 것뿐이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나의 빨강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내 머리카락을 빗어 주던 손길. 가짜가 아닌 것은 잊히지 않는다. - P142

외울 것도 기억해야 할 것도 없다. 노력해서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아니다. 몸에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기억과 흔적들. 무대 위에 오른 가수가 자연스럽게 뱉는 멜로디와 같은 것. 넘치도록 받았던 사랑에 관한 것이다. - P147

역시 차이와 차별의 문제일까? 환경이나 문화 차이의 문제도 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구역이 나뉘어 살아가고 있었나요? - P246

"무지개 언어가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몰라."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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