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콰마린
백가흠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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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진행한다. 장애물만 없다면 빛은 사방팔방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특정 방향으로 진행하게끔 빛을 굴절시킨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세상이 볼 수 있도록.

그렇게 뻗어나간 빛들이 도달하는 지점에 그들의 아콰마린석이 있었다. 아콰마린석은 스스로 빛날 수 없어서 굴절된 빛들을 집어삼키는, 보석인 척하는 돌(石)이다.

소설은 청계천에서 잘린 채 버려진 손이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그 손톱은 아콰마린처럼 바닷빛의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케이의 팀은 손의 주인을 찾아낸다. 손의 주인은 케이의 앞에 살아 있는 채로 나타난다. 손의 주인은 왜 자기 손을 잘라서 타인에게 준 것인지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저 아콰마린을 그들에게 던질 뿐이다.

버려진 손의 손가락은 여러 방향으로 꺾여 마치 ‘K’ 자처럼 보인다. 케이는 잘린 손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믿고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아콰마린에 균열을 내고 거기 갇힌 빛들을 가시화하는 것인 줄도 모른 채 케이는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굴절되어 잡아먹힌 빛들이 아콰마린에서 벗어나기 위해 짜 놓은 복수극에 케이는 휘말린다.

케이는 케이이기 때문에 휘말려야 했다. 동일한 이유로 케이는 끝까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케이로 남았다. 그는 불의의 역사를 통과하며 국가 권력의 폭력에 눈을 감음으로써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행하는 소극적 가해와 시키지 않아도 권력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적극적 가해를 가르는 기준은 너무나 가녀리다. 수동적 가해자는 능동적 가해자가 되기 쉽다.

그래서 케이는 너무 많다. 케이는 케이들이 되었고, 그들로 인해 피해자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케이들은 아콰마린석을 만들었고, 아콰마린석은 케이들을 닮았다. 결코 스스로는 빛날 수 없는 아콰마린석은 그들 스스로를 은유한다. 빛이 거두어지면 보석이 아니라 돌이었다는 사실이 탄로 날 수밖에 없는 존재들. 아콰마린석은 케이들이 남긴 비극이었다. 누군가의 손이 잘렸듯이 이제는 그들이 세상에서 도려질 시간, 피해자들 대신 그들이 아콰마린에 침잠할 시간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콰마린석은 어떤 빛이든 담을 수 있고, 어떤 빛깔로도 변할 수 있는 흔한 보석이다. 그러므로 아콰마린석은 보석이 아니다. 다이아몬드처럼 귀하지도 않으며 신비하지도 않은, 자체 발광할 수 없는 돌에 불과하다. 그것은 수동적인 빛이다. 결국 그것은 모든 빛이 빠져 죽은 바다다. - P14

당시 어떤 희망을 품었던, 십대였던 내가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이 되어보니, 그건 잘못된 말이었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희망은 혼자에겐 위험한 것이지만 같은 희망을 품은 여럿에게는 위험한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혼자서 희망의 인계점에 다다랐을 때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건 희망이 아니라, 그러니까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희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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