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방 - 나를 기다리는 미술
이은화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시를 보고 나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은은한 행복으로 가득 찬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심리적 피로가 잠시나마 저 멀리 물러나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미술은 나에게 정신적 쉼터인 셈이다. 하지만 시국도 시국인데다가 복학까지 해서 어딘가를 가기 힘들어졌다. 전시에 대한 갈증이 커지던 차에 출판사에서 이 책을 보내주셨다.


추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실리 칸딘스키보다 먼저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술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힐마 아프 클린트, 그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애니메이션 스틸컷처럼 느껴지기도 할 만큼 독창적인 화풍을 구사한 앙리 루소와 고흐, 마네 등 유명한 이름들도 거쳐서,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희망을 주는 그림으로 끝이 난다.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미술가, 미술사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는 못하지만 좋은 작품을 남긴 미술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미술가까지. 저자는 특정 시대나 사조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알지 못했던 새로운 취향을 찾을 수도 있고, 무심코 지나쳤던 명화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회색과 검은색의 배열 제1〉은 꽤 오랜 시간 내 카톡 프로필 이미지로 사용했던 작품이라 마주쳤을 때 많이 반갑기도 했지만, 동시에 작품의 의미도 모르고 프로필에 걸어놓았던 게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 그림은 워낙 유명해서 여기저기서 자주 봤었다. 하지만 성폭행에 대한 복수인 줄은 몰랐다. 악과 부조리에 굴하지 않고 가해자를 평생 가해자로 기억되게 만든 화가로서의 아이디어와 용기가 멋있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으로서 그런 선택을 한 젠틸레스키에게 감사하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역사에서 ‘최초’는 중요하다. 최초로 이룬 자들만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아프 클린트가 칸딘스키보다 5년 앞서 추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서양미술사는 새로 쓰여야할 것 같다. 최초의 추상화가는 칸딘스키가 아닌 아프 클린트였으며, 그림을 이젤이 아닌 바닥에 놓고 그린 혁신적 시도 역시 잭슨 폴록보다 최소 40년은 앞섰다고. (「힐마 아프 클린트」) - P17

감상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이 마법 같은 그림은 우리 눈의 한계뿐 아니라 인식의 한계를 재고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는 게 진짜가 아닐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어쩌면 화가는 그림의 뒷면을 통해 진실은 언제나 현상의 이면에 감춰져 있으니 통찰의 눈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진실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많으니까. (「코르넬리스 N. 헤이스브레흐츠」) - P20

이 그림 속 유디트의 얼굴은 누가 봐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이다. 그렇다면 살해당하는 적장은 강간범 타시일 것이다. 유디트는 적장인 홀로페르네스에게 몸을 바치는 척 유혹한 후 그의 목을 베어 민족을 구한 이스라엘의 영웅이다. 젠틸레스키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 이 주제를 처음 그리기 시작했고, 몇 년 후에도 여러 버전으로 반복해 그렸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자신의 상처와 타시의 범죄 사실을 그렇게 해서라도 지속적으로 세상에 알린 것은 아니었을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 P124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고 한다면 전 세계 미술관에서 퇴출당할 명화들이 얼마나 많겠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테다. 그러나 설령 논쟁이 되더라도 과거의 작품을 현재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고 재평가하려던 미술관의 시도는 분명히 유의미하다. 역사 속 사건이나 인물이 현재에 재평가되듯, 미술가나 작품도 사회적 변화에 따라 재조명되거나 재평가받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 P2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피 일가 - 교토 로쿠요샤, 3대를 이어 사랑받는 카페
가바야마 사토루 지음, 임윤정 옮김 / 앨리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피나 차 등의 음료를 마시고, 간단한 음식도 먹으면서, 친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홀로 사색의 시간을 갖거나, 그 외 목적으로도 있을 수 있는 곳.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이유는 이토록 다양하고, 그만큼 수요도 많다.


나는 주로 친구와 전시를 보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에 간다. 다른 경우에는 코로나 때문에 웬만하면 테이크아웃을 하는 편이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음료는 늘 핫초코나 아이스초코 혹은 초코 라테를 선택한다. 같은 이름으로 판매되는 메뉴이지만 가게마다 맛이 전부 다르다. 끝맛이 달거나, 물이 많이 들어가 초콜릿 맛이 약하거나, 일반적으로는 나지 않는 맛이 느껴지는 등 맛이 없는 가게도 꽤 있다. 단순해 보이는 핫초코도 맛을 제대로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커피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오쿠노가 사람들은 커피와 카페를 향한 열정으로 로쿠요샤를 운영해왔다. 그리고 로쿠요샤의 창업자 미노루는 아들 오사무가 로쿠요샤만의 커피 맛을 만들어내기까지 묵묵히 기다려줬다. 처음에는 매상이 낮았음에도 그를 책망하거나 닦달하지 않았다. 어쩌면 미노루 자신도 장인 정신을 지니고 있어서 커피를 향한 오사무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싶다.


로쿠요샤가 7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업을 잇는 일본의 전통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로쿠요샤를 지키고자 하는 오쿠노가 삼대의 마음과 그 분위기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일을 지지해준 것도 꽤나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워낙 다사다난하면서 감동도 있어서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밌을 것 같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고베항에 도착하자마자, 노포 찻집 고베 니시무라 커피점 나카야마테 본점으로 뛰어들어갔다. 오랜만에 커피다운 커피를 마시고 오사무는 겨우 한숨 돌린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맛있는 커피를 찾아 헤매는 것은 찻집 아들로 태어난 성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P98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세상에서, 가능한 한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제공한다. 자기 실력 이상의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고, 가족이 먹고살 수 있는 정도만큼의 벌이면 된다. 찻집의 마스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 P1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 50주년 기념 에디션
린다 노클린 지음, 이주은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계의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예술가가 왜 미술계에는 없었을까.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스스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질문을 저자는 50년 전에 던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파문은 계속 퍼져나가 지금의 나에게까지 도달했다.

 

시대마다 예술가에게 요구하는 것이 조금씩 달랐다. 그것에 부응하거나 반발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제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여성이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혹은 가능한 것처럼 꾸며놓았지만 실제로 정말 중요한 부분은 도덕성을 운운하며 가르치지 않았다. 그 도덕성은 여성에게만 적용되었으며 남성은 그로부터 자유로웠다.

 

가스라이팅은 개인이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게 행할 수도 있는 듯하다. 권력을 가진 집단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모두가 당연히 누려 마땅한 것을 자신들만의 특권으로 바꿨다. 그리고 특권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제한하기 위해 일종의 사회적 규칙을 만들어냈다. 규칙에는 도덕성, 예절 등의 이유가 붙어 있기 때문에 그 규칙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어길 경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 기득권층이 가하는 가스라이팅은 피해자들이 이중 잣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든다. 이 일이 과거 미술계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전하영 작가님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도 떠올랐다. 남성 예술가들은 여성이 자신들의 뮤즈로 남길 원했지만, 여성은 스스로 예술가가 되기를 꿈꿨고 마침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을 구속하던 여성성과 남성성이 예술계 곳곳에 남아 있다. 부당한 특권은 완전한 보편적 권리로 바뀌어야 한다. 그 누구도 사회 구조로 인해 예술적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촘촘한 논리 속에 명문장들이 제자리에 쏙쏙 박혀 있다. 정말 잘 쓰인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읽는 내내 감탄했다. 모두가 일독했으면 좋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의사소통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우리 시대에는, 사실 ‘문제’란 권력자의 비양심적인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해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가령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를 미국인들은 ‘동아시아 문제’라고 부르겠지만, 동아시아인들에게는 ‘미국 문제’라고 해야 더 현실적으로 들릴 것이다. ‘빈곤 문제’라고 불리는 것은 소위 도시 빈민가나 시골 황무지의 거주자라면 ‘부자 문제’라고 해야 더 직접적으로 와닿을지도 모른다. 백인의 문제는 반대 방향으로 틀어져 흑인의 문제가 되고, 이와 같은 역 논리로 인해 우리의 현재 상태는 ‘여성 문제’로 둔갑하고 만다. - P32

여성의 경우는 다른 억압된 집단이나 계급집단과 달리 평등의 문제가 좀더 복잡하다. 왜냐하면 밀이 예리하게 지적했듯 남성은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여성에게 복종을 원할 뿐 아니라 애정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은 남성중심사회가 내면적으로 요구하는 것들로 인해, 그리고 그 사회가 제공하는 과다한 물질적 재화와 안락 때문에 종종 취약해진다. 중산층 여성이라면 단순히 속박당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잃을 게 훨씬 더 많다. - P35

작은 황금 고깃덩어리—천재성—는 여성의 영혼에는 빠져 있듯, 귀족 옷을 입은 사람에게도 결핍되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천재와 재능의 문제라기보다는 귀족과 여성에게 주어진 요구와 기대—이를테면 자신의 사회적 기능을 위해 필수적인 시간을 바쳐야 하거나 또는 반드시 요구되는 활동들—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로 인해 상류층 남성과 일반 여성이 전문가로서 미술 제작에만 전적으로 전념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을뿐더러 정말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 P43

19세기처럼 지금도 여성이 평생 아마추어주의를 고수하며 어떤 것에도 자신의 삶을 바치지 않으면서 예술을 속물근성과 우아함을 강조할 수 있는 취미로만 여기는 태도는 ‘진짜’ 일에 종사하는 성공적이고 전문적인 남자의 경멸을 사는 이유가 되고 있다. 남편은 확실하게 공정한 태도로 자기 아내의 예술활동이 진지하지 않다고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남성의 경우, 여성의 ‘진정한’ 일은 직간접적으로 가족에게 하는 봉사뿐이다. 여성이 다른 일에 관심을 쏟으면 기분전환용이거나 이기적인 것, 병적인 자아도취, 또는 극단적으로 여성성이 거세된 상태라고 여긴다. 속물근성과 경솔한 생각이 상호 간에 힘을 실으며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다. - P61

심지어 이 두 뛰어난 예술가들(중략)의 경우에도, 내면에서 들리는 여성의 신비스러운 목소리로 인해 예술가로서 완전히 자아도취 하지 못하고 여성으로서 죄책감을 느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여성성의 신화라는 목소리는 내적 확신을 흐리고 뒤엎어버리기도 한다. 내적 확신이란 예술 분야에서 가장 고상하거나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 때 요구되는 도덕적이고 미학적인 절대 기준과 자기결정력을 말한다. - P83

‘위대한’이라는 단어는 높은 중요성을 가진 예술을 칭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식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애매함과 신비화의 위험을 무릅써야 할 비전문적 단어이기도 하다. ‘위대한’ 혹은 ‘천재’라는 용어를 미켈란젤로에게도 쓰고 뒤샹에게도 쓴다면 어떻게 그 두 미술가의 특별한 자질이나 장점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 P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오늘의 젊은 문학 4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그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 선과 악이 나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 많은 걸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역사적 비극이 일어나기도 하고, 반대로 진보하기도 하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든 후퇴하게 했든지 간에 과거가 되어 버린 욕망의 발자국들은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살아 있는 조상님들의 밤」에서 죽은 이들이 현실 세계로 돌아와 아직 죽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모두 과거 세계에서 욕망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잔소리는 더이상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말들 뿐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무언가를 욕망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도 조금씩 변해왔듯이, 미래에도 인간은 욕망의 대상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욕망의 본질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멈추면」은 1973년 스카이랩 우주정거장 파업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소행성 개척, 행성 간 이동이라는 미래적 요소를 결합한 작품이다. 그리고 읽는 내내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아니, 어쩌면 과학적으로는 과거이지만 과거라고만 할 수 없는 일, 내가 너무 어려서 뉴스를 보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채 잊었던 일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알 수 없는 먼 미래에 정말로 이 소설과 같이 소행성을 개척하고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왔을 때는 권력자의 야욕으로 인해 노동자가 짓밟히는 게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 있길, 그보다는 그때가 오기 전에 그런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품고 끝까지 이 작품을 읽었다.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와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도 타인을 해하는 욕망의 실현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사회 혹은 도덕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서는 욕망의 실현이 바로 악(惡)이 탄생하는 지점이 아닐까.


작가는 인간의 욕망뿐만 아니라 인공지능과 로봇의 욕망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자칫하면 스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바벨의 도서관」 등의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욕망 또한 인간의 욕망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명령어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그들의 특성에서 비롯된 욕망은 역설적으로 인간 욕망의 위험성을 더욱 부각하는 듯도 하다.


반대로 인간의 어떤 욕망은 악을 일으키는 욕망에 반하여 생겨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인 「우리가 멈추면」의 세경과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의 하나가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을 배제하는 욕망이 아닌 타인에게 공감하고 그와 함께하고자 하는 욕망이 바로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싶다.물론 악을 만들어내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계속 등장하고 역사를 이어나가는 한 먼 미래라고 해서 별반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의 욕망은 부디 다정한 욕망들이길, 당신에게 다정한 우주가 되길.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유진, 우리 목소리가 정말 저 먼 곳까지 닿았을까? 네 마음이 정말 전해졌을까?" (「우리가 멈추면」) - P126

"음…… 당신에게 허락된 단어들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당신은 허락된 단어만 가질 수 있잖아요. 단어는 곧 힘이니까."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 - P152

인간은 끊임없이 적을 생산해 내는 존재로, 스카이파이어가 아무리 많은 적을 제거해도 아군은 언제나 새로운 적을 만들어냈다. 아군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아군 또한 함꼐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 스카이파이어가 내린 결론이었다. (「바벨의 도서관」) - P203

"어떤 기억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인격의 일부가 돼요. 그 사람의 본질을 송두리째 바꿔버려요. 그 경험을 이해해 줄 사람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그런 기억들은 일종의 암호 키와 같아요. 오직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만이 서로의 헝클어진 내면을 해석할 수있죠."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 - P3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범생의 생존법 문학동네 청소년 66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면 입학식 때 선서를 한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는 3년 동안 장학금도 준다. 입학 이후 성적이 얼마나 떨어지든지 상관없이 계속 준다. 이 소설에서 선서 얘기는 나오지만 장학금 얘기는 없다. 이걸 어떻게 알았느냐면, 내가 중학교 배치고사 전교 1등을 해봤기 때문이다. 읽다 보니 준호와 내 이야기를 계속 비교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1등도 해본 적 없는데 전교 1등이라니. 준호와 다르게 나는 선생님들의 관심까지 받았었다. 내게 붙은 1등으로 들어온 애라는 수식어가 많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걸 지키려고 아등바등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킬 수 없는 자리였다. 성적이 떨어진 것도 그저 내 자리를 찾아간 것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할머니만이 전교 1등이 내 자리라고 믿으셨었다. 내가 전교 1등 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는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었다. 다신 올라갈 수 없다는 걸 나도 친구도 심지어 엄마도 알았지만, 할머니만 모르셨었다. 할머니에게 나는 대학교 오기 전까지 전교 1등이었다. 준호와 건우의 엄마처럼 말이다.


근데 왜 내 자리가 성적으로 결정돼야 했던 걸까. 읽다 보니 그런 의문점이 떠올랐다.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좋다고 하는 길을 따라 걷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쫓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성적에 얽매여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준호의 친구 유빈에게 유난히 눈길이 갔다. 한국 사회가 말하는 잘 사는 것과 유빈이 말하는 그것은 다르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미래를 꿈꾸고, 꿈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자그마한 것들을 나누며 사는 삶.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좋은 성적-좋은 대학-좋은 직장 외 다른 경로로는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심지어 좋은 성적도 부모님의 학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니 유빈이 말마따나 룰이 공정해야하는데 그렇지도 못 하다. 그렇다고 성적 경쟁에서 벗어나 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지만, 지금의 10대 청소년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경로를 걷겠다고 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해줄 듯하다. 이 또한 참 아이러니하다.


준호와 건우와 유빈과 보나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림도 마찬가지다. 물론 내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말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정글이고, 나는 정글에 내던져진 새끼 사자라는 걸. 하지만 지금은 안다. 사자도 아니라는 걸. 평생 도망만 다니는 얼룩말이라면 모를까. - P29

우리 엄마도 내가 전교 1등이라고 말하고 다녀. 쪽팔려 뒈지겠어. 초등학교 5학년 때 딱 한 번, 그때 공부 잘하는 애들 영어 캠프 가서 다 빠졌을 땐데. - P73

모르겠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것처럼 더! 더! 더! 잘하라고, 죽을 때까지 ‘노오력’해서 최고가 되라고 한다면, 죽을 때까지 행복해질 일은 없지 않을까? - P82

"하긴, 그러고 보면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경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거 같아. 인간의 욕망이 어쩔 수 없이 경쟁을 만들어 내잖아."
내 말에 유빈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게. 그렇지만 룰이 공정해야지. 축구 경기처럼." - P96

"각자 잘 사는 게 뭔데?"
"음…… 그냥, 지금처럼 사는 거 아닐까? 길고양이 밥 챙겨 주고, 친구랑 맛있는 감자빵 나눠 먹고, 뭐 그러는 거."
- P1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