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 50주년 기념 에디션
린다 노클린 지음, 이주은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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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의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예술가가 왜 미술계에는 없었을까.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스스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질문을 저자는 50년 전에 던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파문은 계속 퍼져나가 지금의 나에게까지 도달했다.

 

시대마다 예술가에게 요구하는 것이 조금씩 달랐다. 그것에 부응하거나 반발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제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여성이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혹은 가능한 것처럼 꾸며놓았지만 실제로 정말 중요한 부분은 도덕성을 운운하며 가르치지 않았다. 그 도덕성은 여성에게만 적용되었으며 남성은 그로부터 자유로웠다.

 

가스라이팅은 개인이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게 행할 수도 있는 듯하다. 권력을 가진 집단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모두가 당연히 누려 마땅한 것을 자신들만의 특권으로 바꿨다. 그리고 특권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제한하기 위해 일종의 사회적 규칙을 만들어냈다. 규칙에는 도덕성, 예절 등의 이유가 붙어 있기 때문에 그 규칙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어길 경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 기득권층이 가하는 가스라이팅은 피해자들이 이중 잣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든다. 이 일이 과거 미술계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전하영 작가님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도 떠올랐다. 남성 예술가들은 여성이 자신들의 뮤즈로 남길 원했지만, 여성은 스스로 예술가가 되기를 꿈꿨고 마침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을 구속하던 여성성과 남성성이 예술계 곳곳에 남아 있다. 부당한 특권은 완전한 보편적 권리로 바뀌어야 한다. 그 누구도 사회 구조로 인해 예술적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촘촘한 논리 속에 명문장들이 제자리에 쏙쏙 박혀 있다. 정말 잘 쓰인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읽는 내내 감탄했다. 모두가 일독했으면 좋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의사소통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우리 시대에는, 사실 ‘문제’란 권력자의 비양심적인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해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가령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를 미국인들은 ‘동아시아 문제’라고 부르겠지만, 동아시아인들에게는 ‘미국 문제’라고 해야 더 현실적으로 들릴 것이다. ‘빈곤 문제’라고 불리는 것은 소위 도시 빈민가나 시골 황무지의 거주자라면 ‘부자 문제’라고 해야 더 직접적으로 와닿을지도 모른다. 백인의 문제는 반대 방향으로 틀어져 흑인의 문제가 되고, 이와 같은 역 논리로 인해 우리의 현재 상태는 ‘여성 문제’로 둔갑하고 만다. - P32

여성의 경우는 다른 억압된 집단이나 계급집단과 달리 평등의 문제가 좀더 복잡하다. 왜냐하면 밀이 예리하게 지적했듯 남성은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여성에게 복종을 원할 뿐 아니라 애정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은 남성중심사회가 내면적으로 요구하는 것들로 인해, 그리고 그 사회가 제공하는 과다한 물질적 재화와 안락 때문에 종종 취약해진다. 중산층 여성이라면 단순히 속박당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잃을 게 훨씬 더 많다. - P35

작은 황금 고깃덩어리—천재성—는 여성의 영혼에는 빠져 있듯, 귀족 옷을 입은 사람에게도 결핍되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천재와 재능의 문제라기보다는 귀족과 여성에게 주어진 요구와 기대—이를테면 자신의 사회적 기능을 위해 필수적인 시간을 바쳐야 하거나 또는 반드시 요구되는 활동들—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로 인해 상류층 남성과 일반 여성이 전문가로서 미술 제작에만 전적으로 전념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을뿐더러 정말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 P43

19세기처럼 지금도 여성이 평생 아마추어주의를 고수하며 어떤 것에도 자신의 삶을 바치지 않으면서 예술을 속물근성과 우아함을 강조할 수 있는 취미로만 여기는 태도는 ‘진짜’ 일에 종사하는 성공적이고 전문적인 남자의 경멸을 사는 이유가 되고 있다. 남편은 확실하게 공정한 태도로 자기 아내의 예술활동이 진지하지 않다고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남성의 경우, 여성의 ‘진정한’ 일은 직간접적으로 가족에게 하는 봉사뿐이다. 여성이 다른 일에 관심을 쏟으면 기분전환용이거나 이기적인 것, 병적인 자아도취, 또는 극단적으로 여성성이 거세된 상태라고 여긴다. 속물근성과 경솔한 생각이 상호 간에 힘을 실으며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다. - P61

심지어 이 두 뛰어난 예술가들(중략)의 경우에도, 내면에서 들리는 여성의 신비스러운 목소리로 인해 예술가로서 완전히 자아도취 하지 못하고 여성으로서 죄책감을 느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여성성의 신화라는 목소리는 내적 확신을 흐리고 뒤엎어버리기도 한다. 내적 확신이란 예술 분야에서 가장 고상하거나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 때 요구되는 도덕적이고 미학적인 절대 기준과 자기결정력을 말한다. - P83

‘위대한’이라는 단어는 높은 중요성을 가진 예술을 칭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식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애매함과 신비화의 위험을 무릅써야 할 비전문적 단어이기도 하다. ‘위대한’ 혹은 ‘천재’라는 용어를 미켈란젤로에게도 쓰고 뒤샹에게도 쓴다면 어떻게 그 두 미술가의 특별한 자질이나 장점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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