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의 생존법 문학동네 청소년 66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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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면 입학식 때 선서를 한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는 3년 동안 장학금도 준다. 입학 이후 성적이 얼마나 떨어지든지 상관없이 계속 준다. 이 소설에서 선서 얘기는 나오지만 장학금 얘기는 없다. 이걸 어떻게 알았느냐면, 내가 중학교 배치고사 전교 1등을 해봤기 때문이다. 읽다 보니 준호와 내 이야기를 계속 비교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1등도 해본 적 없는데 전교 1등이라니. 준호와 다르게 나는 선생님들의 관심까지 받았었다. 내게 붙은 1등으로 들어온 애라는 수식어가 많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걸 지키려고 아등바등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킬 수 없는 자리였다. 성적이 떨어진 것도 그저 내 자리를 찾아간 것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할머니만이 전교 1등이 내 자리라고 믿으셨었다. 내가 전교 1등 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는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었다. 다신 올라갈 수 없다는 걸 나도 친구도 심지어 엄마도 알았지만, 할머니만 모르셨었다. 할머니에게 나는 대학교 오기 전까지 전교 1등이었다. 준호와 건우의 엄마처럼 말이다.


근데 왜 내 자리가 성적으로 결정돼야 했던 걸까. 읽다 보니 그런 의문점이 떠올랐다.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좋다고 하는 길을 따라 걷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쫓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성적에 얽매여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준호의 친구 유빈에게 유난히 눈길이 갔다. 한국 사회가 말하는 잘 사는 것과 유빈이 말하는 그것은 다르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미래를 꿈꾸고, 꿈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자그마한 것들을 나누며 사는 삶.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좋은 성적-좋은 대학-좋은 직장 외 다른 경로로는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심지어 좋은 성적도 부모님의 학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니 유빈이 말마따나 룰이 공정해야하는데 그렇지도 못 하다. 그렇다고 성적 경쟁에서 벗어나 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지만, 지금의 10대 청소년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경로를 걷겠다고 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해줄 듯하다. 이 또한 참 아이러니하다.


준호와 건우와 유빈과 보나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림도 마찬가지다. 물론 내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말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정글이고, 나는 정글에 내던져진 새끼 사자라는 걸. 하지만 지금은 안다. 사자도 아니라는 걸. 평생 도망만 다니는 얼룩말이라면 모를까. - P29

우리 엄마도 내가 전교 1등이라고 말하고 다녀. 쪽팔려 뒈지겠어. 초등학교 5학년 때 딱 한 번, 그때 공부 잘하는 애들 영어 캠프 가서 다 빠졌을 땐데. - P73

모르겠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것처럼 더! 더! 더! 잘하라고, 죽을 때까지 ‘노오력’해서 최고가 되라고 한다면, 죽을 때까지 행복해질 일은 없지 않을까? - P82

"하긴, 그러고 보면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경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거 같아. 인간의 욕망이 어쩔 수 없이 경쟁을 만들어 내잖아."
내 말에 유빈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게. 그렇지만 룰이 공정해야지. 축구 경기처럼." - P96

"각자 잘 사는 게 뭔데?"
"음…… 그냥, 지금처럼 사는 거 아닐까? 길고양이 밥 챙겨 주고, 친구랑 맛있는 감자빵 나눠 먹고, 뭐 그러는 거."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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