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
신지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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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언어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언어 민감도'를 높이게 한다? 사람들이 피부에 민감한 것처럼 언어에 민감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사람들의 '언어 민감도' 즉, <언어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저자는 스스로의 언어 감수성을 높이는 일을 먼저 하기로 한다. 그렇게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는 시작되었고, 다양한 시도들을 거쳐 지금 이 책이 나왔다.

한국어의 높임법과 연령 권력,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상한 한국어, 한국 사회에서의 호칭 문제, 언어에 대한 고정관념, 정치권과 언론과 언어 문제, 그리고 언어에 대한 우리의 태도까지. <언어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저자는 열개의 장으로 구분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언어 감수성>에 대해 특별히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책에 딸려온 '문제' 열개 중 다섯개만 맞췄을때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 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이번 기회,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틀린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 책의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먼저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다'가 왜 차별의 의미가 들어있는 문장이 되는가? 화장을 하지 않은 민낯은 숨겨야 할 결함이 가득한 것이고, 그 결함을 숨기는 화장이라는 행위는 실체를 가리는 일이니 옳지 않다는 생각이 위와 같은 표현을 낳은 것이다. 또한, 화장은 성인 여성들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민낯'의 대상이 되는 자의 성별도, 민낯의 결함을 가리고 숨기기 위해 '화장'을 하는 행위자의 성별도 자연스럽게 여성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민낯'은 차별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카페나 옷가게에 가서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이 옷은 신상품이십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혹시 이 말이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이라는 걸 모르냐고 말이다..... 손님들 중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불쾌해하면서 혼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좀 이상한 말을 한다고 조롱 비슷하게 비아냥거리는 사람은 있어도 불쾌하다고 화내고 혼내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틀린 말인 줄은 알지만 틀린 말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p.79, 80

그렇다면 '진료실로 들어오실게요'는 왜 틀렸지?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ㄹ게요'는 주어의 약속, 의지 등을 표현하는 말이라 주어가 '나'일 때만 사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문법에 맞지 않는 이 표현이 세력을 확대해 가는 이유는? 비난을 감수할 만큼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원하는 기능, 즉 행동을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표현이라 이보다 더 유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선자? 당선인? 별것 아닌것 처럼 보이는 이 표현, 당선자가 아닌 당선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커다란 이유는 권력 앞에 머리를 숙인 언론의 태도에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당선자'가 아닌 '당선인'으로 표기해달라고 언론에 요청했는데,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놈 자'는 불경스러우니 '사람 인'을 불여달라는 것이었다. 얼마 뒤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에 규정된 '당선자'를 사용해달라고 언론에 요청했으나 언론은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언어가 주는 권력 : 누구의 언어인가?>
익숙하지 않은 어려운 외래어를 사용하는 전문가들, 기자들... 침방울은 왜 비말이어야 하고, 동일집단격리는 왜 코호트 격리로 불리며, 진단도구는 왜 굳이 진단키트로 불려야 하나. 언어를 통해 벽을 만들고 그 벽을 넘어오지 못하는 살마의 안전과 생명은 돌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쉬운 언어로 소통하여 언어의 벽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222쪽)이다.

이런 책 읽고 나면 당연한 말이지만, 내 언어 습관을 돌아보는 시간을 자연스레 갖게 된다. 어차피 언어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면 잘 따라가면서 맞추는 수 밖에 없겠지. 과연, 어쨌든, 이 책 읽고 나의 <언어 감수성>이 얼마나 향상되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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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체인 아르테 오리지널 12
에이드리언 매킨티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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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체인>의 초고를 쓴 건 2012년 멕시코시티에서 피해자 교환 납치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고 난 뒤였다. 피해자 교환 납치란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자신보다 약한 납치 피해자를 대신해 인질이 되겠다고 자청하는 것이다. 나는 그 개념을 1970년대 말, 내가 어렸을 때 일어났던 한 사건에 접목시켜보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레이철의 딸 카일리가 납치된다. 납치범은 레이철에게 말한다.
🔖'내 아들을 구해내려고 내가 당신 딸을 납치했어요. 내 아들도 누군지 모르는 남녀한테 납치를 당한 상태고요. 당신도 표적을 골라서 그 사람이 사랑하는 한 사람을 납치해야 해요. 그래야 체인이 계속 이어지거든요.'

레이철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 딸이 납치를 당했고 내 딸을 되찾기 위해선 내가 귀여운 남자아이를 거리에서 납치한 다음 그 아이하고 그 아이 가족을 진심으로 협박해야 해. 그 아이를 죽이겠다고 말할 때 진심인 것처럼 들려야 해. 안 그러면 앞으로 다시는 카일리를 못 볼 테니까.'

최초 <체인>을 설계한 사람은 주기적으로 협박 전화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다단계처럼 줄줄이 엮여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한다. 사람들이 엮이는 과정에서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의 SNS가 활용된다.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돈을 입금할 여유가 되는지, 표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등을 사전에 확인한다. SNS의 무서움을 또 한번 확인했다.

레이철을 비롯한 대부분의 피해자는 결국 납치범이 된다.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되는데, 아이를 살려내기 위해 납치범(가해자)이 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다. <체인>의 유지를 위해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을 이용하는, 소설에서만 존재하는 범죄 수법이기를 희망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납치범이 되었겠지... 생각한다.

마음 졸이며 읽은 앞부분에 비해 후반부는 시원시원하게 전개된다. 머릿속으로 그 상황들이 떠오를 정도로 장면들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몰입감과 긴장감이 영화 제작으로까지 이끈 것 같다. 난 이미 한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스릴러는 여름에 읽어야 제맛이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또한, 읽는 동안 심한 갈증에 시달린 것은 아니지만 맥주 한 잔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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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공주 해적전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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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감탄사부터) 와우~ 무슨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소설이 있나. 주인공 장희는 어떤 일에 처해도 눈앞에 살아날 길이 생긴다. 끝날듯 끝날듯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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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무리에 끼어 심부름을 하던 아이 장희는 한 무리에 쫓겨온 남자 한수생을 도와 배를 타고 서쪽으로 떠나는데 해적 대포고래의 공격으로 배가 침몰한다. 백제가 망한지 200년 후 백제 부흥을 위해 공동생활을 하는 섬에서 그들은 정신을 차리게 되고, 그들은 장희의 기묘한 아이디어로 여러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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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이러한데 문제는 이 소설이 그냥 한낱 소설로 읽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모두 모아둔것 같다. 혹시, 그들의 행동을 반면교사 삼고, 그들의 모습을 타산지석 삼아 더 나을 세상을 만들고 더 잘 살아보자는게 이 작품의 주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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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생을 죽이려던 마을 사람들도, 장희가 그 세치 혀로 농락한 여러 인간들도 모두 그냥 넘기기에는 아까운 인물들이다. 이 책에서 그들에게 할당된 대사에 밑줄이 그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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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신나게 읽었네. 재밌다. 소설Q 시리즈가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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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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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가 출간된 초기를 기억한다. 결혼 초기, 여행을 좋아했던 우리 부부는 주말이면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바빴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책에 소개된 곳을 포함해서 여행계획을 세웠었다. 그렇게 재작년 국내 답사 마지막인 '서울편'까지 모두 수집하고나서야 밀린 숙제를 다 한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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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편'도 출간되었으나 그 당시 큰 관심은 갖지 않았었다. 무엇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때가 쌍둥이가 태어나고 육아에 바빴던 시기였을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유홍준'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기에 이번 책에서 다시 그때의 감흥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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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은 중국 여행이다. 이미 1권, 2권이 나왔지만, 이번 3권에서야 관심을 갖게 되었다. 듣기만 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어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지금은 어떻게 남아있는지 알 수 없는 <실크로드>에 대한 답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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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책에서도 충분히 느낀 것이지만, 나는 그저 책을 읽으면서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일까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누란'에 대한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졌고, 실크로드 최대 요충지라 불리는 '트루판'을 찾아가는 여정에 나도 함께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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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중간 중간 그곳의 사진이 들어있는데, 그 놀라운 장면들에 나는 감탄을 쏟아내기 바빴다. '쿰타크사막 모래산 정상' 사진을 시작으로, 항공모함과도 같은 '교하고성'을 거쳐 '베제클리크석굴' 풍광에서 나는 전율했다. 또한, 눈 앞에서 직접 그 광경을 본다면 그 감동은 얼마나 더 클까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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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에서 시작해 투르판을 거쳐 쿠차, 타클라마칸사막, 호탄에 이어 캬슈가르에서 이번 답사는 끝이 난다. 우연찮게 '실크로드' 여행의 마지막 편부터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앞의 책 1,2권도 구입해서 다시 한 번 여행 떠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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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 김솔 짧은 소설
김솔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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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던지는 가벼움 속에서 뒷통수를 (아주 살짝) 가격하는 묵직함이 들어 있다. 나는 그 매력을 여섯번째 이야기 <친구>에 이르러서야 발견했다.

라오스에서 프랑스 음식점을 차린 친구의 부탁을 받은 미슐랭가이드 평가원인 모헤드. 친구의 요리에 감탄하던 중 그 요리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다. 모헤드와 동시에 내 몸에서도 전율이 느껴졌다.

▪️그 순간, 모헤드 씨는 정수리에서부터 발뒤꿈치까지 순식간에 흘러가는 전율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짧은 소설 40편이 두개의 카테고리에 나누어져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세상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이 흥미롭다.

흥미로운 이야기 또 하나. <재앙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방법> 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소설에서 과학적이고 뭔가 대단한 결론을 기대했나보다.

▪️"피할 수 없는 불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야말로 불행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문장으로 끝났다.

<직장인들의 대화> 편의 팀장은 정말이지... 얼굴에 사직사를 던지면서 한대 때려주고 싶었는데, 화를 참고 겨우 읽어갔는데 마지막이 왜이래. 쉽게 흥분한 내 자신에게 미안해진다.

이 책 매력 넘친다.

물론 내가 미처 의미를 파악하기 전에 내용이 끝이나 두장을 한번에 넘긴건 아닌가 다시 뒤적인 작품도 있고,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한건지 알수가 없어 다시한번 처음으로 돌아간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작가를, 작품을 안다고 할수있는건 아니니까. 소설이라 용서될거다.

의료장비를 이용해 식물인간과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 <증거재판주의>. 그러한 대화가 가능해진 이후 식물인간의 사망률이 급격히 높아졌다고 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비밀이 공개될까 두려워한 이들이 저지른 또 하나의 나쁜짓이겠지.

동시에 수정된 냉동배아를 활용해서 8년 하고도 16일 뒤에 태어난 동생을 '쌍둥이 동생'이라 부르는 작품 <복제>. 이 책을 덮고 난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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