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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클럽 홍대 술의 그림자 - 당신이 잠든 시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기록
박기형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허우, 리얼해.
한밤의 홍대(혹은 그냥) 클럽에 대해 생생하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기를. 아울러 경찰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체험 책. 저자는 최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했다며 이 책을 "르포"라 주장했지만, 곳곳에 피곤과 짜증과 겨우 참는 분노가 여기저기 느껴져서 "르포"라고 하기에는 조금... 책의 80%가 한밤중에 일어나는 클럽 세상만사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사실 그런 일들을 따라 읽다 보면 나라도 객관적이래야 객관적일 수가 없을 것 같긴 하더라. (여담으로 비기자 출신으로 가장 "르포"에 가까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썼던 <언더그라운드>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그 책들은 정말 저자가 최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을 배제하고 또 배제하려고 노력한 티가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흑역사라고 생각했던 나의 20대 술 인생이,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냥 귀여운 눈물 많은 청춘이라는 - 본의 아니게(?) 읽다가 치유받는 일도 생겼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커피도 그렇고 술도 그렇고, "어른"이면 당연히 마셔야 되고 마셔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무기력적으로 따르다가 카페인 중독과 술독에 빠져 20대를 보낸 사람인데 (담배의 경우 내가 20대 때는 '여자가 어디서 감히 담배를'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서 담배를 피는 여자들은 당시에 모두 숨어서 폈다. 나는 한번 시도해보다가 몸에 너무 안 맞아서 - 한 모금에 바로 구토를 했다 - 술과 커피와는 다르게 흡연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 그 담배 냄새가 너무 싫어서. 구토도 구토지만 손에도 옷에도 나는 담배 냄새가 너무 싫어서 피지 않았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인사불성이 되어서 길바닥에서 쓰러져 자거나 똥오줌을 지리거나 친구들과 싸우거나 모르는 사람들과 치고받거나, 경찰차를 타고 지구대에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내 20대가 멋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흑역사라고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허허허.
문득 든 생각인데,
경찰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거짓 없는 리얼 직업 체험담 차원에서 읽는 것도 좋겠다 싶다.
소설가나 드라마나 영화 작가들이 경찰들의 수고스러운 한밤중 직업담을 알고 싶을 때 읽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어떤 이론이나 분석이나 우리나라 및 국내외 치안 상태와 대안 방안 등을 기대한다면, 그런 건 없다. 책의 후반부 5% 정도 OECD 통계와 함께 우리나라와 해외 경찰들의 치안 대처 방법을 비교하지만 그게 전부다. 대부분이 저자가 경찰로서 체험한 한밤중에 더럽고 무시무시한 클럽 방문객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특이하게도
목차 리스트가 여름, 가을, 겨울, 봄, 다시 여름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외국인들의 한밤중 추태 스토리가 이어진다.
그냥 술 먹고 블랙아웃된 사람들, 토하는 사람들, 똥 싸는 사람들, 오줌 싸는 사람들, 욕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게다가 나는 이런 사람들을 경찰이 직접 차에 태워서 경찰서 안에서 '보호 조치'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매트리스에서 재우고 돌려보내던데,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건물 안에 매트리스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 매트리스에서 또 토하고 똥오줌 싸고, 또 그걸 치우는 경찰들에 대해 읽다 보면... 우리나라 경찰분들, 정말 고생이 많다. 책 후반부에 저자가 외국 경찰들은 이렇게까지 안 한다고 하는데, 맞다. 아마 외국 경찰들이라면 그냥 길바닥에 버려두고 가거나 벌금을 세게 멕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특히 백인이 아니라면) 총으로 쏠지도 몰라.
그냥 멕시코인이라고 하지 "'00코'인들"이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게다가 여러 외국인들의 지저분한 이야기가 많지만 특히나 중국인 여자가 정말 별로였는지, 이 여자가 소리 지르는 걸 모두 "꽥꽥!"거렸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토할 때 음식물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외국 사람들은 토할 때 대부분 술만 나온다는 분석(?) 글도 있다. 그건 아마 외국 사람들은 (특히 유럽, 미국 쪽 백인 사람들은) 현지에서 클럽 술값이 어마무시하게 비싸기 때문에 늘 집에서 미리 한두 잔씩 마시고 클럽에 가서 춤만 추는데, 아마 그런 논리로 음식물 섭취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클럽비는 저렴한 편인거지. 저자의 또 다른 분석처럼 우리나라처럼 국민건강보험이 없는 외국의 경우 119에 실려가는 건 돈이 많이 나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아무리 아파도 일단 병원 가기를 꺼려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폭행에 대한 이야기가 -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라서 유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변호사들은 폭행 사건 때 무조건 맞고 있으라고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경찰의 입장은 "그냥 현장을 뜨라" - 그러니까 최대한 피하라는 조언을 했다.
그 이유를 보니, 아, 때린 쪽이든 맞는 쪽이든 어쨌든 폭행 사건에 연루되면 양쪽 다 똑같이 처벌받는다는 점이었다.
오. 그렇구나.
클럽 외에도 다양한 신고들이 있는데 - 실종 신고부터 택시 기사가 안 태워준다는 신고, 고속버스 기사인데 길을 잃었다는 신고(????) 등등.
특히 저자처럼 나 역시 그 이유가 궁금했던 지적장애 2급 여성이 홍대 클럽에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이폰 사달라고 엄마한테 졸라서 아이폰을 샀는데 충전도 안 하고 손에 꼬옥 쥐고 있는 모습. 여자 경찰한테는 그래도 말을 하는 모양이니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혹시나 자신이 홍대 클럽에 계속 오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가끔 뉴스에서 직업윤리가 없는 나쁜 경찰들 기사도 접하게 되는데, 그렇게 못된 경찰들도 있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시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경찰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끝으로 - 이런 직업군을 가진 사람은 사람에 대해서 어떤 기본 인식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다.
예전에 어디선가 변호사나 판사가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남의 불행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다.
나름 일리 있는 말이라고 느꼈다.
사람들의 불행과 더러움 가득한 모습을 매일 봐야 하는, 그들을 처리하고 관리하고 보호해야 하는 경찰은
사람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삶을 시니컬하게 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