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전사 소은하 창비아동문고 312
전수경 지음, 센개 그림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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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전 서평단은 처음이다. 오 신기해라. 그래서 책이 가제본이구나.


게다가 우리나라 어린이책 수상작(23회 창비 어린이책 공모 대상)은 처음 읽는거라, 

기분 좋은 두근두근이 한가득. 



난 어린이용이라는 해리포터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해리포터 시리즈는 어른 작품 못지 않게 뛰어난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어린이/청소년 책 서평단은 모두 자녀가 있는 부모인지를 묻는 카테고리가 있길래 좀 답답했었다. 아니, 그냥 내가 좋아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내가 애가 없어도 조카나 친구 애들한테 선물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창비는 바로 서평단에 선정. 후후후. 기분 좋아라. 


결론부터 말하면 재미있다. 그리고 유익해. 

건강하고 긍정적이고, "우리 모두 함께 파이팅하자!" 정신이 가득하다.



게임을 안하는 남녀노소가 거의 없는 요즘, 누구라도 주인공에게 자신을 대입시켜 상상할 수 있는 요지가 있어 좋았고 그 중에서도 협동을 통해 - 어린이들의 협동, 그리고 어린이들과 어른들의 협동을 통해 이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를 물리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나조차도 이해하기 수월했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희생도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작품에 남겨 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끝에 (스포일러가 될까봐 쓰지 않겠지만) 에이 설마, 설마 작가가 이렇게 하겠어, 했는데 작가가 진짜 그 설마를 해서 아이들 소설이라고 너무 해피엔딩스럽게 결말을 내지 않은 점도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 중 하나였다.

물론 시정해주었으면 하는 점이 아예 없는 작품은 아니다. 


한 두가지 갸우뚱거리는 설정이 있어서 작가에게 수정을 요청하고 싶지만 뭐 그리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거라. 나라면 한정되어 있는 페이지수를 고려할 때 등장인물들의 비중을 조금 더 다르게 했으면 좋았을거란 정도?


예를 들어 지구별은 아직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에 정체를 밝히지 말라고 엄마가 말하는데, 그런 엄마는 아프자마자 바로 인간이 운영하는 국군병원에 입원하고, 외계인 묘지로 가고... 차라리 헥시나에서 파견된 사람들 중에서 군의관이 있어서 (당연히 군인들을 파견한거니까 군의관도 함께 파견됐을 것 아닌가????) 헥시나 출신 군의관이 몰래 자기 집 어딘가에서 치료해 준다고 하는 설정으로 하지. 그리고 묘지는 그냥 일반인 묘지로 하는 게 설정 충돌도 안 일어나고 동시에 지구에서 살기로 결정한 은하에게 더 와닿는 결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나라면 은하의 단짝 친구인 소령이와 귀신 본다는 기범이의 분량과 활약상을 더 늘렸을 것 같다. 주인공을 왕따시키고 괴롭히는 일명 "bully" 3인방 다미, 채리, 지나 분량은 - 생각보다 그 괴롭힘 정도가 심하지 않고(뭐랄까, 최근 스파이더맨 영화에서 톰 홀랜드를 괴롭히는 역할로 나온 플래시 톰슨처럼 그 괴롭힘의 정도가 매우 약해졌다고 할까) - 게다가 반 아이들이 모두 이 3명의 말에 일방적으로 다 따라하는 것 같지도 않고 - 그리고 주인공이 그래서 외롭다고 느끼고 본인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점도 잘 알겠는데, 그런데 너에게는 친구가 2명이나 있잖냐!!! 그건 이미 왕따가 아니여!!!  

무엇보다 초등학생들을 위한 게임을 개발하고,

그 게임을 세상을 없애는데 이용하고,

다시 그 게임을 이용해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연합, 아이들과 어른들의 연합, 지구인과 외계인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 

함께하면 그 무엇도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건강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소설.


아울러 아, 우리나라에서 대상을 받는 어린이 소설은 이렇구나, 라는 걸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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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다
글배우 지음 / 강한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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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만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며 사는 게 아닌 거구나.


세상 사람들 모두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렇다고 누구 만나서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면서 

괜히 부정적이고 어두운 사람이라고 낙인찍혀 분위기를 흐리거나 

그도 아니면 나의 불안과 슬픔에 기뻐하는 상대방의 가식적인 위로를 듣고 싶지 않을 때

이 책은 좋은 지지대가 되겠지.


사실 서평단에 선정돼서 책을 받았는데

서점에 가보니 이미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이 책이 올라와 있길래

한편으로는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책이 벌써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렇다면 굳이 서평 이벤트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나 하는 괜한(?) 출판사 걱정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정말 요즘 갑갑하고 조금은 울적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꼭 코로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 나는 저녁을 먹자는 누군가의 제안을 거절했다.


예전 같으면 아프다고 하거나 (그러고 나서 죄책감 때문에 실제로 아파지거나) 

아니면 최악의 저녁을 피하기 위해 차악의 약속을 만들어 또 다른 불편한 만남을 이어가거나, 

그도 아니면 약속을 다른 날짜로 바꾸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부담스러운 저녁이 아닌 점심으로 바꾸는 처세술을 발휘했을 텐데,

이번에는 이 모두 아닌, 그냥 가볍게 저녁을 거절했다.


“저녁은 괜찮습니다. 사양합니다.”

아프다고 하지도 않고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지도 않았고 다른 날짜를 제안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거리를 멀리 둬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이유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힘들었다. 문자 그대로 뇌 어딘가에 안개에 낀 것처럼 뿌옇고 갑갑하고 어지러워서, 명확하게 무어라 표현되지 않았고, 무리하게 표현하려고 하면 십중팔구 늘 아팠기 때문에, 이 책에 있었던 몇몇 글들을 통해서 조금 더 객관화시켜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은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사랑을 전혀 느낄 수가 없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토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를 늘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가 어려웠으나

여기 나오는 몇몇 글들이 내 생각을 정확하고 적확하게 표현해주는 것 같아 속이 시원했다.

아울러 내가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할 때마다 왜 그렇게 느낀 적이 없는지, 왜 토할 것 같은지도 알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날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가 속상했던 일을 말하면 “그런 걸 말로 하는 게 속이 시원하냐”며 비웃고(왼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픽)

내가 말을 하면 딴 짓을 하고, 다른 데를 보고, 하품을 하다가 화장실 간다며 일어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내가 본인이 모르는 것을 알면 화를 내면서 그렇지 않다며 소리를 지르며 신경질을 내고

내가 본인이 잘못 아는 것을 객관적인 자료를 대면서 이야기해도 인터넷도 다 믿을 수 없는 거라며 화를 내고

내가 본인이 하는 특정 말과 행동에 기분이 좋지 않다, 상처를 받는다고 말하면 왜 자신을 공격하냐며 나와 대화하기 싫다라고 하고

내가 본인이 과거에 했던 어떠한 말과 행동에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다, 상처를 받았다라고 말하면 네 기억력에는 문제가 있다, 네 뇌에는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니 -

내가 힘든 점이나, 내가 아팠던 부분, 상처받았던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건 예민한 내가 문제인 것이고, 왜 자신을 이렇게 공격하냐, 너는 왜 이렇게 부정적이냐 - 라는 말을 계속해서, 결국 그 사람 옆에 있으면 아무리 몇 십만 원짜리 밥을 먹고 비싼 공연을 봐도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스스로를 믿기 어렵고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자학적인 사고 방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기 시작하니 - 대체 어디를 봐서 나를 사랑하는 겁니까. 대체 어디를 봐서 나를 존중하고 위한 겁니까. 내 생각과 의견을 이리 개무시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내가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당신이 하라는 걸 하고 가라는 곳으로 가고 보라는 것만 보고 먹어야 하는 걸 먹었을 때만 평화로운 관계 아니었나요. 


오랜 고민 끝에, 그런 사람은 내 삶에서 잘라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내 결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빨리 도려냈어야 했는데.


이 사람에게 모든 걸 맞추지 않는 이상 아주 기본적인 일상적인 대화조차 불가능한데

그래서 늘 살얼음판 걷는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다 맞추어줘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소중하게 여기기는 커녕 기본적인 존중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게 사랑인가요. 


실패는.

사람에 대한 실패도 있다.


자신을 믿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과 환경은,

자신을 계속 하찮은 존재로 대우하는 사람과 환경은,

멀리하는 게 맞다.


그런데 간혹 이런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JK 롤링의 경우

미혼모로 나라 보조금으로 겨우 살면서도 해리포터를 쓰면서, 12번이나 퇴짜를 받으면서도 "이 책은 출판되기까지는 힘들겠지만 출판이 되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작품이 될거야"라는 확신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확신은 어떻게 드는거지? 나중에 성공하고 나서 그냥  만든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조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어떤거냐, 어떻게 하는 거냐고 질문하고 싶은 심정이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런 자기 확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있는건가? 그것도 노오력이 필요한건가? 


돈은 물론 중요하지만

책에 나와있는 것처럼

마음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모인 돈은 결국 더 크게 스트레스 푸는 방식으로 쓰게 되어 있더라.

이 책에서 일과 회사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최근에 2011년도 개봉작이었던 영화 <굿모닝 애브리원>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같은 작가, 같은 제작진인데두 불구하고 2006년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비해 여러가지로 촌스럽고 시대에 뛰떨어진 영화였다. 


그러나 그런 영화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꿈에 그리던 방송사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던 주인공의 모습.

10년 전의 나라면 저런 일생일대의 커리어 기회를 저버리는 주인공이 이해 안가고 짜증이 나겠지만,

지금의 나라면 오히려 정반대로 주인공의 선택을 지지하고 오히려 이해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끝으로.


일상에 지쳤을 때 좋은 지지대가 되어줄 책이다.

조용히 혼자 가만히 있고 싶을 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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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 알면 벌고 모르면 당하는 '재벌법'의 10가지 비밀
천준범 지음 / 부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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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좋다. 


가독성이 높고, 공부도 되고, 몰랐던 사실이나 헷갈렸던 경제 개념도 잘 잡혔다. 특히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경제법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썼는데 간혹 이런 예시라고 든 가상 상황들을 다른  책들처럼 쓸데없이 드라마 시나리오 식으로 쓰지 않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았다.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같이 한 찹터씩 함께 경제 공부하겠다. 


띠지가 조금 오바스럽지만 -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관심을 끈다는 건 아는데 굳이 그런 홍보 문구를 덧붙이지 않아도 - 충분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세계 경제가 만만해지는 책>과 함께 추천하고 싶은 경제 책. 출판사는 다르지만 세트로 팔면 좋겠다. 나처럼 경제경영 이해가 고픈데 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 두 권 다 무척 만족스러운 책이어서 둘 다 추천.


목차 정리도 잘 되어 있다.


우리나라 경제 법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보여준다. 저자는 "재벌법"이라는 단어를 손수 창작하여 독자로 하여금 변화하는 국제 경제와 그에 걸맞게 변화된 우리나라 경제 제도와 "재벌법"에 대해, 치킨 회사를 차린 재현, 우현, 영미의 3가지 다른 시각을 - 재벌 3세, 대학 졸업 대기업 입사 후 스카우트된 사장, 부모의 음식점 경영을 보고 자란 사업가 - 로 중간 중간 짧게 삽입하여 자칫 어려운 경제 법 개념들을 쉽게 풀이해 준다. 

개인적으로 주식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사람이라 - 내 퇴직금이 부모 주식으로 날라간 경험이 있어서 - 주식은 단 한번도 관여한 적이 없는데, 서문에서 저자가 주식 투자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다면 당연히 "재벌법"을 알아야 한다는 말과 그 이유에 납득이 갔다. 


살짝 옆길로 새서 이 책을 추천했다는 존 리의 말을 어느 tv 프로에서 본 걸 잠깐 언급해보자면, 주식을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투기와 다를 게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존 리처럼 주식을 관리해야 하는데, 단순히 주식을 사고 파는 수준이 아니라 이 책 내용처럼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에 관한 우리나라 법은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고 있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 책은 두 가지 "재벌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나는 재벌이 돈을 버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재벌을 규제하는 (방)법. 


이를 위해 회사의 기분 운영 설계도부터 시작해 운영 방식, 그리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법들을 알려준다. (이 서평에는 그 방법들을 하나하나 쓰지 않을 것이다)

책 내용을 모두 다 외우고 싶을 정도로 좋았지만,

특히 기업 합병에 대한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합병은 "1+1=1"이라는 것. 무게가 2가 되는 것이지 1이 되는 것인데,

그 과정을 회사 "부풀리기"와 "붙이기", "분할"로 설명하는 부분이 (이해하기가 너무 쉬워서)인상적이었다.

특히 합병 전, 후에 지분 다량 보유를 위해 일부러(!!!) 회사를 작게 보이도록, 다시 말해 회사가 돈을 많이 벌지 않는 것처럼 보이도록 조절해 합당해 보이는 타이밍에 합병 시점을 고른다는 사실은, 10년 재판 후 2009년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된 1996년 "마법쿠폰" 사건보다 재미(?)있었다. 


자기주식=자사주이고, 주식을 발행한 회사가 다시 사서 갖는다는 개념도 부끄럽지만 처음 알게 되어서 여러모로 공부가 많이 되었던 책이다.  책을 한 번 더 읽어야 겠다. 


이렇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그만큼 더 서평을 잘 쓰고 싶은데, 확실히 경제경영법 책들은 서평 쓰기가 조금 더 힘든 것 같다. 자칫하면 그냥 단순 요약법이 되어버려서 말이지. 


여하튼 추천입니다.


좋은 경제, 좋은 법 교양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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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요슈 선집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토 모키치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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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구나. 

일본 문학을 사랑하고 그중에서도 만요슈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뜻깊은 책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창 셰익스피어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 원문을 찾아 읽었던 <맥베스>가 생각났다. 16세기 영어를 이해하기 위해 사전을 붙잡으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단어를 찾고 또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만요슈 선집>을 쓴 저자의 열정뿐만 아니라 번역가의 노력과 고생이 느껴져서 역자의 후기가 무척이나 반가웠던 (<피로사회> 이후 두 번째) 책이었다.



책 표지는 사람으로 치면 외모라고 할 수 있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디자인도 재질도, 고급스럽다. 

만요슈에 대해서 아는 게 전무해서 공부를 좀 해야 했다.


일단 와카라는 것에 대해. 

(이건 네이버에서 찾았다. 만요슈 선집을 읽을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다들 '와카'가 무엇인지 당연히 아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일본 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책 말미에 있는 Q&A 부분에 와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 디폴트 값 지식인 모양인지 와카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아무 데도 없어서....)


와카란 "일본 노래"라는 뜻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5음 7음 정형시를 말한다.

중국에서 온 한시와 대조적인 것으로 일본 고유의 시를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만요슈란 무엇인가.


만요슈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집(시집 묶음)을 말한다

수록 작품이 무려 4500여수가 된다고 한다.


<만요슈 선집>은 

이 4500여수 중에서

사이토 모키치(1882~1953)라는 정신과 의사이자 가인이었던 사람이 1938년, 이 4500여 수 중에서 10%인 359수를 선정하여 대중적으로 만요슈가 널리 읽히고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 책이라고 한다. 


이 359수는 원래 일본에서는 상하권으로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만요슈 선집>은 이 중 상권을 다루고 있고, 그래서 166여수가 적혀 있다. (개인적으로 세어본 거라 혹 숫자에 이상이 있으면 알려주시길.)  


사이토 모키치는 <만요슈 선집>을 쓰면서

이 중 장가(長歌)는 빼고 단가(短歌)만 선별했다고 고백한다.


* 장가 長歌: 5.7의 음수율 형태가 3구 이상 이어진 후 마지막을 7로 마무리하는 긴 정형시

* 단가 短歌: 5.7.5.7.7.의 음수율을 가진 짧은 정형시



다시 말해 4500여수 중에서 장가는 300여수, 단가는 4200여수인데 이 중 10%를 추렸다고 한다.

이렇게 결정한 그만의 이유가 있는데, 사이토 모키치는 이 책이 대중적인 "만인을 위한 작품집을 지향하기 위해",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만요슈 단가를 담기 위해" 썼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만요슈를 순수하게 즐기고 감동하는, 감상이 핵심.



그래서 저자 본인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많이 (훌륭하게) 한 비평이나 주석은 하지 않았고, "만요슈의 정신, 이본적인 성격, 국민성 등은 논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만요슈를 애정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왜 만요슈가 걸작이라고 칭해지는지, 그 이유를 독자 스스로 하나하나 읽으면서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말한다.  

만요슈와 <만요슈 선집>이 최근 국내외적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는 이유가 있는데,

2019년 5월 1일, 일본의 248번째 연호 '레이와'가 만요슈에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이 연호가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일본 고전에서 인용된 연호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려 130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일본의 연호는 그동안, 출전이 판명된 연호는 모두 중국의 고전에서 채택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바로 전 연호인 '헤이세이'는 <사기>와 <서경>에서 채택된 것이라고 한다.


책에 있는 166여 개의 만요슈 단가를 읽다 보면, 우리나라 번역가의 노력과 고충이 느껴지는 동시에 저자 사이토 모키치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각각의 단가를 이해하고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는지 알 수 있다. 만요슈는 둘째치고 와카나 하이쿠도 전혀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게 생소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내가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일본 역사에 무지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저자의 의도대로 그냥(?) 순수하게 시들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본 역사를 알면 시를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덴노나 황후 등 일본의 계급 사회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 저자가 열심히 설명을 해도 (그리고 저자가 열의를 다해 설명한다는 점이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상을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내가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왔던 만요슈 단가들이다. 


가을 들녘에 이삭 위를 감도는 아침 안개여

내 사랑도 어딘가로 사라질 수 있으리오


사랑하는 이 야마토로 보내려

밤은 깊은데 새벽녘의 이슬에 젖어 서성이노라


둘이 넘어도 넘어가기 힘겨울 이 가을 산을

어찌하여 그대는 홀로 넘고 있을까


우리 대왕은 신이신 까닭으로

천둥이라는 이름 가진 산 위에 행궁을 지으셨네



일본 문학에 관심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와카, 하이쿠, 만요슈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


아울러 일본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더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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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클럽 홍대 술의 그림자 - 당신이 잠든 시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기록
박기형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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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허우, 리얼해. 


한밤의 홍대(혹은 그냥) 클럽에 대해 생생하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기를. 아울러 경찰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체험 책. 저자는 최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했다며 이 책을 "르포"라 주장했지만, 곳곳에 피곤과 짜증과 겨우 참는 분노가 여기저기 느껴져서 "르포"라고 하기에는 조금... 책의 80%가 한밤중에 일어나는 클럽 세상만사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사실 그런 일들을 따라 읽다 보면 나라도 객관적이래야 객관적일 수가 없을 것 같긴 하더라. (여담으로 비기자 출신으로 가장 "르포"에 가까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썼던 <언더그라운드>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그 책들은 정말 저자가 최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을 배제하고 또 배제하려고 노력한 티가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흑역사라고 생각했던 나의 20대 술 인생이,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냥 귀여운 눈물 많은 청춘이라는 - 본의 아니게(?) 읽다가 치유받는 일도 생겼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커피도 그렇고 술도 그렇고, "어른"이면 당연히 마셔야 되고 마셔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무기력적으로 따르다가 카페인 중독과 술독에 빠져 20대를 보낸 사람인데 (담배의 경우 내가 20대 때는 '여자가 어디서 감히 담배를'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서 담배를 피는 여자들은 당시에 모두 숨어서 폈다. 나는 한번 시도해보다가 몸에 너무 안 맞아서 - 한 모금에 바로 구토를 했다 - 술과 커피와는 다르게 흡연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 그 담배 냄새가 너무 싫어서. 구토도 구토지만 손에도 옷에도 나는 담배 냄새가 너무 싫어서 피지 않았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인사불성이 되어서 길바닥에서 쓰러져 자거나 똥오줌을 지리거나 친구들과 싸우거나 모르는 사람들과 치고받거나, 경찰차를 타고 지구대에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내 20대가 멋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흑역사라고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허허허.



문득 든 생각인데,


경찰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거짓 없는 리얼 직업 체험담 차원에서 읽는 것도 좋겠다 싶다.

소설가나 드라마나 영화 작가들이 경찰들의 수고스러운 한밤중 직업담을 알고 싶을 때 읽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어떤 이론이나 분석이나 우리나라 및 국내외 치안 상태와 대안 방안 등을 기대한다면, 그런 건 없다. 책의 후반부 5% 정도 OECD 통계와 함께 우리나라와 해외 경찰들의 치안 대처 방법을 비교하지만 그게 전부다. 대부분이 저자가 경찰로서 체험한 한밤중에 더럽고 무시무시한 클럽 방문객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특이하게도 

목차 리스트가 여름, 가을, 겨울, 봄, 다시 여름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외국인들의 한밤중 추태 스토리가 이어진다.


그냥 술 먹고 블랙아웃된 사람들, 토하는 사람들, 똥 싸는 사람들, 오줌 싸는 사람들, 욕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게다가 나는 이런 사람들을 경찰이 직접 차에 태워서 경찰서 안에서 '보호 조치'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매트리스에서 재우고 돌려보내던데,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건물 안에 매트리스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 매트리스에서 또 토하고 똥오줌 싸고, 또 그걸 치우는 경찰들에 대해 읽다 보면... 우리나라 경찰분들, 정말 고생이 많다. 책 후반부에 저자가 외국 경찰들은 이렇게까지 안 한다고 하는데, 맞다. 아마 외국 경찰들이라면 그냥 길바닥에 버려두고 가거나 벌금을 세게 멕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특히 백인이 아니라면) 총으로 쏠지도 몰라. 



그냥 멕시코인이라고 하지 "'00코'인들"이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게다가 여러 외국인들의 지저분한 이야기가 많지만 특히나 중국인 여자가 정말 별로였는지, 이 여자가 소리 지르는 걸 모두 "꽥꽥!"거렸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토할 때 음식물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외국 사람들은 토할 때 대부분 술만 나온다는 분석(?) 글도 있다. 그건 아마 외국 사람들은 (특히 유럽, 미국 쪽 백인 사람들은) 현지에서 클럽 술값이 어마무시하게 비싸기 때문에 늘 집에서 미리 한두 잔씩 마시고 클럽에 가서 춤만 추는데, 아마 그런 논리로 음식물 섭취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클럽비는 저렴한 편인거지. 저자의 또 다른 분석처럼 우리나라처럼 국민건강보험이 없는 외국의 경우 119에 실려가는 건 돈이 많이 나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아무리 아파도 일단 병원 가기를 꺼려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폭행에 대한 이야기가 -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라서 유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변호사들은 폭행 사건 때 무조건 맞고 있으라고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경찰의 입장은 "그냥 현장을 뜨라" - 그러니까 최대한 피하라는 조언을 했다. 


그 이유를 보니, 아, 때린 쪽이든 맞는 쪽이든 어쨌든 폭행 사건에 연루되면 양쪽 다 똑같이 처벌받는다는 점이었다.  


오. 그렇구나. 


클럽 외에도 다양한 신고들이 있는데 - 실종 신고부터 택시 기사가 안 태워준다는 신고, 고속버스 기사인데 길을 잃었다는 신고(????) 등등. 


특히 저자처럼 나 역시 그 이유가 궁금했던 지적장애 2급 여성이 홍대 클럽에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이폰 사달라고 엄마한테 졸라서 아이폰을 샀는데 충전도 안 하고 손에 꼬옥 쥐고 있는 모습. 여자 경찰한테는 그래도 말을 하는 모양이니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혹시나 자신이 홍대 클럽에 계속 오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가끔 뉴스에서 직업윤리가 없는 나쁜 경찰들 기사도 접하게 되는데, 그렇게 못된 경찰들도 있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시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경찰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끝으로 - 이런 직업군을 가진 사람은 사람에 대해서 어떤 기본 인식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다.


예전에 어디선가 변호사나 판사가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남의 불행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다.


나름 일리 있는 말이라고 느꼈다.


사람들의 불행과 더러움 가득한 모습을 매일 봐야 하는, 그들을 처리하고 관리하고 보호해야 하는 경찰은

사람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삶을 시니컬하게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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