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요슈 선집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토 모키치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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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구나. 

일본 문학을 사랑하고 그중에서도 만요슈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뜻깊은 책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창 셰익스피어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 원문을 찾아 읽었던 <맥베스>가 생각났다. 16세기 영어를 이해하기 위해 사전을 붙잡으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단어를 찾고 또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만요슈 선집>을 쓴 저자의 열정뿐만 아니라 번역가의 노력과 고생이 느껴져서 역자의 후기가 무척이나 반가웠던 (<피로사회> 이후 두 번째) 책이었다.



책 표지는 사람으로 치면 외모라고 할 수 있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디자인도 재질도, 고급스럽다. 

만요슈에 대해서 아는 게 전무해서 공부를 좀 해야 했다.


일단 와카라는 것에 대해. 

(이건 네이버에서 찾았다. 만요슈 선집을 읽을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다들 '와카'가 무엇인지 당연히 아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일본 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책 말미에 있는 Q&A 부분에 와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 디폴트 값 지식인 모양인지 와카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아무 데도 없어서....)


와카란 "일본 노래"라는 뜻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5음 7음 정형시를 말한다.

중국에서 온 한시와 대조적인 것으로 일본 고유의 시를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만요슈란 무엇인가.


만요슈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집(시집 묶음)을 말한다

수록 작품이 무려 4500여수가 된다고 한다.


<만요슈 선집>은 

이 4500여수 중에서

사이토 모키치(1882~1953)라는 정신과 의사이자 가인이었던 사람이 1938년, 이 4500여 수 중에서 10%인 359수를 선정하여 대중적으로 만요슈가 널리 읽히고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 책이라고 한다. 


이 359수는 원래 일본에서는 상하권으로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만요슈 선집>은 이 중 상권을 다루고 있고, 그래서 166여수가 적혀 있다. (개인적으로 세어본 거라 혹 숫자에 이상이 있으면 알려주시길.)  


사이토 모키치는 <만요슈 선집>을 쓰면서

이 중 장가(長歌)는 빼고 단가(短歌)만 선별했다고 고백한다.


* 장가 長歌: 5.7의 음수율 형태가 3구 이상 이어진 후 마지막을 7로 마무리하는 긴 정형시

* 단가 短歌: 5.7.5.7.7.의 음수율을 가진 짧은 정형시



다시 말해 4500여수 중에서 장가는 300여수, 단가는 4200여수인데 이 중 10%를 추렸다고 한다.

이렇게 결정한 그만의 이유가 있는데, 사이토 모키치는 이 책이 대중적인 "만인을 위한 작품집을 지향하기 위해",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만요슈 단가를 담기 위해" 썼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만요슈를 순수하게 즐기고 감동하는, 감상이 핵심.



그래서 저자 본인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많이 (훌륭하게) 한 비평이나 주석은 하지 않았고, "만요슈의 정신, 이본적인 성격, 국민성 등은 논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만요슈를 애정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왜 만요슈가 걸작이라고 칭해지는지, 그 이유를 독자 스스로 하나하나 읽으면서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말한다.  

만요슈와 <만요슈 선집>이 최근 국내외적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는 이유가 있는데,

2019년 5월 1일, 일본의 248번째 연호 '레이와'가 만요슈에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이 연호가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일본 고전에서 인용된 연호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려 130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일본의 연호는 그동안, 출전이 판명된 연호는 모두 중국의 고전에서 채택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바로 전 연호인 '헤이세이'는 <사기>와 <서경>에서 채택된 것이라고 한다.


책에 있는 166여 개의 만요슈 단가를 읽다 보면, 우리나라 번역가의 노력과 고충이 느껴지는 동시에 저자 사이토 모키치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각각의 단가를 이해하고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는지 알 수 있다. 만요슈는 둘째치고 와카나 하이쿠도 전혀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게 생소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내가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일본 역사에 무지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저자의 의도대로 그냥(?) 순수하게 시들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본 역사를 알면 시를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덴노나 황후 등 일본의 계급 사회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 저자가 열심히 설명을 해도 (그리고 저자가 열의를 다해 설명한다는 점이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상을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내가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왔던 만요슈 단가들이다. 


가을 들녘에 이삭 위를 감도는 아침 안개여

내 사랑도 어딘가로 사라질 수 있으리오


사랑하는 이 야마토로 보내려

밤은 깊은데 새벽녘의 이슬에 젖어 서성이노라


둘이 넘어도 넘어가기 힘겨울 이 가을 산을

어찌하여 그대는 홀로 넘고 있을까


우리 대왕은 신이신 까닭으로

천둥이라는 이름 가진 산 위에 행궁을 지으셨네



일본 문학에 관심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와카, 하이쿠, 만요슈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


아울러 일본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더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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