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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다
글배우 지음 / 강한별 / 2020년 7월
평점 :
...그러니까, 나만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며 사는 게 아닌 거구나.
세상 사람들 모두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렇다고 누구 만나서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면서
괜히 부정적이고 어두운 사람이라고 낙인찍혀 분위기를 흐리거나
그도 아니면 나의 불안과 슬픔에 기뻐하는 상대방의 가식적인 위로를 듣고 싶지 않을 때
이 책은 좋은 지지대가 되겠지.
사실 서평단에 선정돼서 책을 받았는데
서점에 가보니 이미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이 책이 올라와 있길래
한편으로는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책이 벌써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렇다면 굳이 서평 이벤트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나 하는 괜한(?) 출판사 걱정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정말 요즘 갑갑하고 조금은 울적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꼭 코로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 나는 저녁을 먹자는 누군가의 제안을 거절했다.
예전 같으면 아프다고 하거나 (그러고 나서 죄책감 때문에 실제로 아파지거나)
아니면 최악의 저녁을 피하기 위해 차악의 약속을 만들어 또 다른 불편한 만남을 이어가거나,
그도 아니면 약속을 다른 날짜로 바꾸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부담스러운 저녁이 아닌 점심으로 바꾸는 처세술을 발휘했을 텐데,
이번에는 이 모두 아닌, 그냥 가볍게 저녁을 거절했다.
“저녁은 괜찮습니다. 사양합니다.”
아프다고 하지도 않고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지도 않았고 다른 날짜를 제안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거리를 멀리 둬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이유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힘들었다. 문자 그대로 뇌 어딘가에 안개에 낀 것처럼 뿌옇고 갑갑하고 어지러워서, 명확하게 무어라 표현되지 않았고, 무리하게 표현하려고 하면 십중팔구 늘 아팠기 때문에, 이 책에 있었던 몇몇 글들을 통해서 조금 더 객관화시켜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은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사랑을 전혀 느낄 수가 없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토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를 늘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가 어려웠으나
여기 나오는 몇몇 글들이 내 생각을 정확하고 적확하게 표현해주는 것 같아 속이 시원했다.
아울러 내가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할 때마다 왜 그렇게 느낀 적이 없는지, 왜 토할 것 같은지도 알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날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가 속상했던 일을 말하면 “그런 걸 말로 하는 게 속이 시원하냐”며 비웃고(왼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픽)
내가 말을 하면 딴 짓을 하고, 다른 데를 보고, 하품을 하다가 화장실 간다며 일어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내가 본인이 모르는 것을 알면 화를 내면서 그렇지 않다며 소리를 지르며 신경질을 내고
내가 본인이 잘못 아는 것을 객관적인 자료를 대면서 이야기해도 인터넷도 다 믿을 수 없는 거라며 화를 내고
내가 본인이 하는 특정 말과 행동에 기분이 좋지 않다, 상처를 받는다고 말하면 왜 자신을 공격하냐며 나와 대화하기 싫다라고 하고
내가 본인이 과거에 했던 어떠한 말과 행동에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다, 상처를 받았다라고 말하면 네 기억력에는 문제가 있다, 네 뇌에는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니 -
내가 힘든 점이나, 내가 아팠던 부분, 상처받았던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건 예민한 내가 문제인 것이고, 왜 자신을 이렇게 공격하냐, 너는 왜 이렇게 부정적이냐 - 라는 말을 계속해서, 결국 그 사람 옆에 있으면 아무리 몇 십만 원짜리 밥을 먹고 비싼 공연을 봐도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스스로를 믿기 어렵고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자학적인 사고 방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기 시작하니 - 대체 어디를 봐서 나를 사랑하는 겁니까. 대체 어디를 봐서 나를 존중하고 위한 겁니까. 내 생각과 의견을 이리 개무시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내가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당신이 하라는 걸 하고 가라는 곳으로 가고 보라는 것만 보고 먹어야 하는 걸 먹었을 때만 평화로운 관계 아니었나요.
오랜 고민 끝에, 그런 사람은 내 삶에서 잘라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내 결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빨리 도려냈어야 했는데.
이 사람에게 모든 걸 맞추지 않는 이상 아주 기본적인 일상적인 대화조차 불가능한데
그래서 늘 살얼음판 걷는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다 맞추어줘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소중하게 여기기는 커녕 기본적인 존중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게 사랑인가요.
실패는.
사람에 대한 실패도 있다.
자신을 믿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과 환경은,
자신을 계속 하찮은 존재로 대우하는 사람과 환경은,
멀리하는 게 맞다.
그런데 간혹 이런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JK 롤링의 경우
미혼모로 나라 보조금으로 겨우 살면서도 해리포터를 쓰면서, 12번이나 퇴짜를 받으면서도 "이 책은 출판되기까지는 힘들겠지만 출판이 되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작품이 될거야"라는 확신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확신은 어떻게 드는거지? 나중에 성공하고 나서 그냥 만든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조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어떤거냐, 어떻게 하는 거냐고 질문하고 싶은 심정이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런 자기 확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있는건가? 그것도 노오력이 필요한건가?
돈은 물론 중요하지만
책에 나와있는 것처럼
마음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모인 돈은 결국 더 크게 스트레스 푸는 방식으로 쓰게 되어 있더라.
이 책에서 일과 회사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최근에 2011년도 개봉작이었던 영화 <굿모닝 애브리원>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같은 작가, 같은 제작진인데두 불구하고 2006년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비해 여러가지로 촌스럽고 시대에 뛰떨어진 영화였다.
그러나 그런 영화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꿈에 그리던 방송사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던 주인공의 모습.
10년 전의 나라면 저런 일생일대의 커리어 기회를 저버리는 주인공이 이해 안가고 짜증이 나겠지만,
지금의 나라면 오히려 정반대로 주인공의 선택을 지지하고 오히려 이해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끝으로.
일상에 지쳤을 때 좋은 지지대가 되어줄 책이다.
조용히 혼자 가만히 있고 싶을 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