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소녀, 마이티 모
레이첼 스와비.키트 폭스 지음, 이순희 옮김 / 학고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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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에세이로 책 방송을 한다고 했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다음으로 무슨 책을 다뤄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가장 최신작인 <마라톤 소녀, 마이티 모>를 선택했습니다.



실화입니다. 


별명은 마이티 모. 우리나라 말로는 위대한 모. 


이름은 모린 윌튼. 

1953년생입니다. 

만 13살 때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내고 그냥 사라져버린 소녀지요. 



마라톤이 여자들에게 금지되었던 시절(법적으로도 금지가 되어 있었고, 이를 어기고 뛰면 각종 공격을 남녀노소 모두에게 받았던 시기입니다), 그 금기와 억압을 이겨낸 (고작) 만 13살의 캐나다 소녀가 1967년 어느 작은 마라톤에서 세계 신기록을 이뤄낸 이야기입니다. 지금이라면 말그대로 '천재'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느껴질 신동이었지요. 그러나 그녀는 결국 만 17살에 달리기를 포함해 모든 운동을 그만 두고 마라톤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아갑니다. 



이 책은 이렇게 사라진 1953년생의 소녀를 60이 다 되었을 때 다시(!!!) 찾아내 21세기에 들어 이 할머니의 업적을 널리 널리 알린 러너스 월드 웹사이트 편집자이자 해당 팟캐스트를 운영 중인 레이첼 스와비와 키트 폭스가 저자가 되어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처음에는 저자들이 러너스 월드 웹사이트 운영자라는 걸 알고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올해 5월달에 있었던 대한체육회의 100년 후손에게 보내는 손편지 공모전에 쓰려고 올림픽 마라톤 조사를 하다가 (왜냐하면 그때 한창 올해 열리기로 했던 올림픽을 한다 안한다 뜨겁게 논쟁 중이었거든요) 결국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했던 여자 선수들에 대해 알아보다가 - 우리나라에는 정보가 없어서 외국 사이트를 알아보다가 이 러너스월드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거든요. 정보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 곳 운영자라고 하니 그저 놀랍기만 했습니다. 



참고로 여자가 올림픽 마라톤 풀코스에 출전 가능했던 시기는

1984년 미국 LA 올림픽 때 부터입니다. 



이 책의 유일한 아쉬운 부분은 모린 윌튼이 직접 쓴 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조금 무리수거든요. 저자가 본인이 아니다 보니 책 내용이 다소 팩트 위주의 건조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무리 상대를 잘 안다 하더라도 어쨌든 제 3자가 쓴 이야기니까요.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마라톤 에세이 취향때문에 느껴지는 아쉬움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마라톤 에세이들을 좋아하고 일부러 찾아 읽는 이유는 - 20대까지만 해도 땀은 여름이라 흘리는 걸로 알고 살았던 제가 30대가 되어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겪으면 변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 중점에 있는 것이 달리기이자 마라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마라톤 에세이들을 읽으면, 대부분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달리기를 하면서 몰랐던 사실도 많이 배우고 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돈이 아까운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은 비록 저자가 모린 윌튼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감동과 공감대 형성면에서는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서 더더욱 2020년 오늘 지금은 당연시 되는 무언가가 실은 과거 수많은 이들의 불 튀기는 투쟁과 눈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깊이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래서 하루하루 더 감사해야 할 일들이 늘어난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고마운 책입니다.



위의 목차도 사실 조금 조정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이티 모, 그러니까 모린 윌튼의 이야기만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물론 무언가 그동안 금지되었던 것이 그 반대가 되는 과정은 - 그러니까 예를 들어 노예제도나 여성 참정권 말입니다 - 분명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록 당시에는 소수에 불구하지만 싸우고 싸우고 싸웠던거지요.


이 책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 모~든 사람들을 다 다루고 있어서, 사실 모린 윌튼에 대한 이야기만 읽고 싶었던 저에게는 (미안하지만) 약간의 피로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재차 말하지만 


여성의 올림픽 마라톤 풀코스 참여는 1984년 미국 LA 올림픽 때 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나가면 남녀노소 다 욕했어요 ㅠㅠ


그래서 만 13살의 천재 달리기 소녀는 만 17에 세상을 등지고,


은행 창구 직원으로 살다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자녀 둘을 낳지요. 


성을 바꾸어서 모린 윌튼에서 모린 몬쿠소가 됩니다.




세상도 그녀를 찾지 않았지만,


그녀도 세상을 찾지 않았어요.




https://en.wikipedia.org/wiki/Maureen_Wilton



위에 있는 위키피디아 소개를 보면 마치 금융계에서 일한 것처럼 나오는데, 다른 자료를 찾아보면 은행 창구 직원으로 조용히 일했다고만 나와요. 달리기와 마라톤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며 살아서 남편도 자녀들도 엄마가 한때 세계 신기록을 세웠던 사람이었다는 걸 전혀 몰랐다고 해요. 






https://www.runnersworld.com/runners-stories/a29460762/mighty-moe/



그런 그녀가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건


이 책의 저자들이자 러너스월드 운영진들이 그녀를 집중적으로 세상에 알리기 되면서부터지요.




덕분에 2009년도에 모린 윌튼은,


1967년에 함께 마라톤을 뛰었던 미국 여자 선수 캐스린 스위처 (같은 해 보스턴 마라톤 뛰다가 사람들에게 머리채가 잡혔던 선수입니다)와 무려 42년만에 만나 함께 마라톤 참가를 하지요.










...참고로 모린 윌튼/몬쿠소의 자녀 중 한 명은 현재 달리기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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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의 양식 - 한식에서 건진 미식 인문학
송원섭.JTBC <양식의 양식>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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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너무 재밌고 유익하다.


내 취향 300%. 특히 자칭 타칭 고메이자 식도락가라고 자부하는 내 입장에서 이 책은 말그대로 취향 저격. 원래 JTBC에서 방영했던 방송 프로그램이라는데 오랜만에 예능이 아닌 교양(교양예능?) 프로그램을 찾아 보고 싶어졌다. 책도 이렇게 재밌으면 방송은 더 재밌을 것 같아. 



책 <양식의 양식>은 먼저 동명 프로그램으로 방송됐다. 


<양식의 양식은> "2019년 12월 1일부터 2020년 2월 9일까지 JTBC와 히스토리 채널코리아를 통해 방송된 8부작 교양프로그램"으로 백종원, 정재찬, 유현준, 채사장, 최강창민이 모여 한식 8가지 - 삼겹살, 냉면, 치킨, 백반, 국밥, 불+고기, 짜장면, 삭힌 맛 - 을 두고 6개월간의 국내외(한국, 미국, 스페인, 중국, 태국, 프랑스, 인도네시아) 촬영을 마치고 방영됐다. 이 책은 방송에서 나오지 못했던 조금 더 세밀하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담겨 있다.



글 가독성이 높아서 읽기가 편하고 시원시원하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읽으면 읽을 수록 점점 더 배가 고파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방송으로 보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까....) 삼겹살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삼겹살이, 냉면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냉면이, 치킨을 읽을 때는 치킨이, 백반에 대해 읽을 때는 백반이.... 이렇게 줄줄이 식탐이 이어진다. 식단 조절 중인 사람이라면 조심스럽게 독서 유보를 권유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8가지 한식 이야기 모두 다 흥미로웠지만, 그 중에서 내가 자주 요리하는 돼지고기 - 여기서는 삼겹살 - 에 대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적어보겠다.  




삼겹살. 


1980년대에는 냉동삼겹살, 90년대에는 생삼겹살, 그리고 다시 최근에는 냉동삼겹살이 유행하는 중.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가 어딘가 미국 흑인들이 프라이드 치킨을 먹게 된 역사적 배경과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은 돼지 소비국 세계 5위인데 (2018년 도축된 돼지 약 1,700만마리) 이렇게 된지는 50~60년밖에 안된다고 한다. 돼지가 2,000년 전부터 가축으로 키워진 역사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돼지고기를 지금처럼 먹었던 시기는 극히 최근에 일어난 사실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이유가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 첫 번째, 국내산은 다 자라도 22.5~26.5kg인데 비해 수입해서 들어온 돼지는 무려 도축 최소 중량인 60kg 이상인 110~120kg 사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출하중량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 수입 이전 국내에서는 강아지만한 사이즈의 돼지는 고기가 별로 없어 대중적으로 그리 당기는 고기가 아니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양돈 산업이 일본 수출을 지향하는 구조로 구축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 부분이 미국 흑인들의 프라이드 치킨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1960년대 한국은 대규모 양돈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주 목적은 일본 수출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돼지고기 중 안심과 등심 부위는 일본으로 수출되었고, 한국인들은 그 나머지 부위들을 집중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삼겹살을 중심으로 족발, 내장, 머릿고기 등 잡고기 부위를 주로 소비하게 된 것이다"라는 점. 잡고기 부위 소비라니, 마치 백인들이 안 먹고 버리는 닭고기 부위들을 흑인들이 더운 날에 최대한 안 상하고 최대한 많이 흡수할 수 있게 돼지 비계 기름에 밀가루를 입혀 고기도 뼈도 최대한 흐물흐물하게 먹을 수 있게 해서 탄생한 프라이드 치킨이랑 어딘가 닮았다. 



세 번째 이유는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바로 1960년대 시작한 정부의 "집중적인 돼지 사육 장려"때문이라는 점이었다. 해방 이후 소고기를 유독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 의해 균등한 고기 사육과 소비를 위해 매주 월요일을 '소고기 안 먹는 날'로 정하면서까지 닭과 돼지고기 공급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정부가 지원까지 했다니.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돼지고기는 주로 수육이나 제육으로 먹는 게 우선이었고, 지금처럼 삼겹살을 먹는 데 대유행이자 대한민국의 소울푸드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삼겹살 집이 지금처럼 어딜가나 볼 수 있게 된 시점은 1979년부터라는 것이다. 


역사가 41년밖에 안되었다.




삼겹살이 이처럼 일반화되기 위해서 다음과 같다. 



첫째, "돼지고기가 질과 양 면에서 풍성해져야 한다." 해방 이후 돼지고기 사육과 소비 진흥에 힘쓴 한국 정부로 인해 "기업적인 대량 사육이 이뤄졌고, 돼지들은 위생적인 환경에서 관리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길러진 비육종 돼지들을 접하면서 한국인들은 돼지에 대한 오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 재래종보다 3, 4배 더 체구가 큰 수입 비육종 돼지들은 과거 재래종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성한 삼겹살(즉, 뱃살)이라는 신세계를 열어 준 것이다".



둘째, 휴대용 가스레이니지(부루스타)와 철판의 등장. 기름이 많은 삼겹살에 기존의 석쇠는 기름 뚝뚝 덜어지는 고기를 굽기에는 불편하기만 했고, 연탈불을 주 가열 기구로 사용했던 예전에는 화력이 남다른 - 그러니까 "안정적으로 화력을 공급하는 - 부루스타의 등장은 삼겹살을 먹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셋째, IMF 사태, 그리고 2003년 광우병 사태로 인한 삼겹살 유행. 사실 이건 내가 유일하게 동의 못하는 이유인데... IMF 때문에 소고기 꽃등심만 먹다가 삼겹살을 먹는 것으로 대체되고(가격 때문에?)... 글쎄. 그래도 광우형 사태로 상대적으로 돼지고기 선호도가 올라갔다는 건 동의한다. 뭐랄까, 좀더 안전한 먹거리로 보여 같은 고기를 먹을거면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고기 보다는 별탈 없어보이는 돼지고기를 더 좋아했을 것 같아. 




추신: 미국 멤피스 축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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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이기주의자
율리엔 바크하우스 지음, 박은결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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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젊은 갑부, 86년생 율리엔 바크하우스의 책이다. 어마무시하게 유명한 모양인데 나는 이 책 덕분에 처음 알았다. 독일 사람과 한국 사람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나뉘어졌(었)다는 공통점때문인지 그 국민 속성에도 묘하게 닮은 점이 있는데, 여기서 이 독일 영 리치는 독일 사회에서 강조하는 “이기주의자”라는 단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강조하며 왜 우리 모두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지, 나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자유로운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는지를, 자신의 유명하고 돈 많고 행복한 삶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이 책은 독일 내에서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글쎄. 이런 종류의 긍정적 이기주의에 대해 많이 듣거나 읽어 본 사람에게도... 글쎄. 




이 책이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이유는 책의 내용보다는 이 사람 자체가 유명한 영 리치 셀렙이기 때문인 것 같더라. 마치 우리나라에서 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데, 뭐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누구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그냥 문자 그대로 젋은 나이에 사업에 성공해서 돈도 많고 미디어에도 자주 출연하고 본인도 그걸 즐기는, 유명해서 유명해지는 그런 호환(?) 사이클로 독일에서 남들이 많이 부러워하는 유명인이 쓴 책이라. 베스트셀러가 된 케이스라고나 할까. 


일단 책 내용이 너무 뻔하다. 익숙하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런 “긍정적 이기주의”에 대한 책들을 넘치고 넘쳤다. 


먼저 저자가 말하는 “이기주의”에 대한 새로운 정의.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왜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근거. 


게다가 그런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방법도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고, 심지어 왜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지 제시하는 근거들도 지겹도록 읽고 들었던 것들이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 그리고 지금은 반박 실험 자료가 나와서 60년대 실험이 이제는 거의 무시되는 ‘아이들의 인내의 마시멜로 실험”이야기를 아직도 하는 걸 보고 비행기에서 산소 마스크를 본인이 먼저 써야 하는 이유 역시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다. 



 ‘자유로운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한 방법 16가지들도.... 그 16가지 중에... 나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건 하나도 없었다. 미안. 

오히려 공감이 안되는 근거들.


이 책은 저자가 독일에서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자신의 개인적 삶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 중 몇 가지는 이 사람처럼 부자가 아닌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가는 게 여러군데 있었다. 단순히 사는 세계가 달라서 그런건가, 싶은 것들도 있었고 그냥 이 사람 성격이 부자이고 잘생기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강박증같아서 좀 꺼려지는 부분도 있었고. 


가령 우버 같은 블랙래인서비스  이야기라든가.

프라이빗 플레인을 놓쳐서 비행기를 탔는데 커피를 옮겨달라는 이야기라든가.

 

 

 아니 사실 여기서는, 카운데 빈 자리에 커피를 놓은 옆 좌석 사람에게 옮기라고 ‘부탁’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 전에 자신은 비행 조종사도 아니면서 비행기 터뷸런스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안다는 이야기를 5줄에 걸쳐 이야기하는 게 우스웠다. 그리고선 그 커피를 옮겨 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그 커피가 자신한테 쏟아졌을 거라면서 말하는 것도 - 그리고 결국 그 커피는 그걸 주문한 사람에게 쏟아진 게 무슨 사필귀정인 것 마냥 말하는 것도 웃겼고.

 

 

노숙자를 다가와 돈을 달라고 했는데 너무 더럽고 냄새나고 그래서 싫어서 뿌리친 것 까지는 이해도 되었고, 이걸 방송에서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이 사과하라 어쩌라 안 그러면 너네 회사 물건을 더이상 안 사겠다 했는데 ‘나는 내 생각을 말한 거고,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 안하기 때문에 사과할 생각이 없다, 내 회사와 연을 끊으면 다른 파트너를 더 구하면 된다’식의 사고방식까지는 좋았지만, 그 다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생 개념이 없기 때문에 자신은 다른 사람들도 다 만질 수 있는 도어넙(?????)도 안 만진다고 말하는 건 좀 코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러면, 넌 어떻게 문을 여니? 남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니? 남보고 문을 열어달라고 하니?


그래도 배울 만한 점은.



그래도 배울 점들은 있었다. 기대한 것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있긴 있었다. 

모든 책들이, 좋은 책이든 나쁜 책이든 배울 점이 있듯이. 


일단 나는, 이 사람이 호텔 조식에서 매번 스크램블 에그를 새로 데워달라고 요청해서 달라고 하는 등의 에피소드에서, 그러니까 식어빠지고 맛없는 스크램블 에그는 저얼대로 나의 소중한 시간과 인생에 허락하고 싶지 않고, 나는 돈을 내고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니 이런 요구는 불평불만이 아니라 당연히 나의 니즈를 요청하는 내 권리 실현이다, 라고 말하는 다양한 예시에서, 비슷한 상황에서도 늘 참고 손해보고 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편해도 늘 아무 말 못하고 결국 끙끙대다가 만만한 사람으로 보여 좋은 일보다 화나는 일들이 더 많았던 내 삶을 돌아보고 -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화풀이가 아니라 정당한 요구인 경우에는 이 저자처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 실천 방안 중 하나로 며칠 전에 찾아갔던 24시간 카페에서 음악 볼륨을 좀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좀 개인적인 부가 설명을 하자면,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내 집’이 아니다. 게다가 여기는 24시간 카페가 하나밖에 없고, 내가 있는 곳은 (아직도) ‘임시 거주지’라 방에 인터넷이 설치가 되어 있지 않다. 사실 한 달에 만원만 내면 방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기회에 인터넷 중독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글 좀 써보려고 하는 터에 일부러 이 ‘임시 거주지’에 인터넷 설치를 안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부득이하게 한밤중에 인터넷을 써야하는 상황이 생겨서 밤 11시에 24시간 카페에 갔었다.) 



뭐 별 거 아닐 수 있는 에피소드지만 예전의 나라면 천장에서 내 머리를 소리로 때리는 것 같은 큰 음향에도 그냥 한숨만 쉬면서 소음을 소음으로 막기 위해 그냥 이어폰을 끼고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날은 그렇게 하다간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또 예전에 이 카페에 왔을 때는 이렇게 옆 자리 수다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음향이 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음향이 너무 커서, 가서 음향을 좀 줄여달라고 했다. 확언하건데, 분명 그 날 음향을 줄여달라고 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본사 규정이라서 줄일수가 없다고, 죄송하다고 하는데 - 그게 뻥이라는 걸 알아서 지난 번에 왔을 때는 안 이랬다, 라고 말했는데도 결국 한 명이 더 오더니 코로나때문에 본사 규정이라고 줄일 수가 없다, 죄송하다 해서 - 그냥 포기하고 왔다. 그래도(?) 새벽 3시가 되니까 카페 2층에는 손님이 나를 포함해 남자 둘, 3명밖에 없으니 그 시간이 되니 불륨이 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내 발언때문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어쨌든 한번 말하니까 그래도 후련하더라. 

 


음... 몇 년전에 테드 등 여러 곳에서 나왔던 지아 장의 ‘거절하기에 익숙해지기’ 중 하나라고나 할까. 


내가 율리엔 바크하우스가 했던 말들 중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말 3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칭찬과 비난 모두 거리를 두라.

공감. 칭찬과 비난은 결국 같은 것이라고 믿고 있는 나에게는 같은 생각을 하는 말이 반가웠다. 

 

2. 평생 함께하는 동반자는 자신뿐.

공감. 자신을 자신의 베스트프렌드로 두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 뿐이다. 

 

3. 통제의 즐거움.공감. 저자는 스스로 통제를 원하기 때문에 술과 설탕을 멀리한다고 한다. 나는... 통제를 찾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추천이라고 하기에도, 추천을 못하겠다고 하기에도 망설여지는 책이다.

 

배울 점은 있지만, 이미 이 책의 많은 내용들이 서점에 나왔다가 사라져서, 중복되는 근거들과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다.만약 당신이 그런 책들을 많이 접하지 못했거나, 율리엔 바크하우스란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읽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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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집 사계절 중학년문고 36
우미옥 지음, 차상미 그림 / 사계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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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기자기 귀여운 5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그림도 예쁘다. 



<내 친구의 집>, <휴대폰때문에>, <멸치 인어>, <인형 장례식>, <우리 선생님이 마녀라면>.

조카와 함께 앉아 읽고 싶다. 읽고 조카의 생각을 듣고 싶다. 



<내 친구의 집>


아파서 학교에 못 갔던 ‘나’, 예림은 내일 모레있을 사회시험때문에 공책을 빌리러 친구의 집을 찾아간다.  처음에는 다온이네 집을, 그 다음은 재미네 집을, 그 다음은 강이네 집을, 그 다음은 소이네 집을, 그 다음에는 다같이 ‘나’의 집을. 

 

친구의 집은 모두 친구처럼 특성이 가득하다. “온기 가득 온실”, “재미있는 재활용 가게”, 크나큰 대문 집, 줄이 대롱대롱 매달려서 소방대원 아빠와 벽을 타고 내려올 수 있는 집. 마지막에는 다같이 공부하러 ‘나’의 집에 가는데, 제 부모보다 나를 더 닮아 내 딸같은 조카에게 묻고 싶다. ‘나’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다른 친구들의 집과는 어떻게 다를까?



<휴대폰때문에>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연아가 부러운 해주. 이번에도 최신 휴대폰을, 그것도 블링블링 예쁘게 꾸며서 자랑까지 하는 연아가 부럽다. 그래서 우연히 화장실에서 주운 연아의 휴대폰을 찰나의 타이밍때문에 건네주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두 아이는 색다른 우정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엄마를 마귀할멈이라고 저장해놓은 연아와, 엄마에게 휴대폰을 사달라고 말할 수 조차 없는 해주 중에, 조카야, 너는 누가 더 너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하니?



<멸치 인어>

 

 사람 얼굴을 한 멸치같이 생긴, 멸치만한 사이즈의 멸치 인어. 귀엽다. 재수없게 다른 멸치들과 함께 붙잡혀 (해산물 택배로!!!!) 옮겨왔지만,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남아 택배를 연 ‘나'에게 물에 넣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바다로 가야한다고 한다. (택배 안 열었으면 어쩔 뻔 했냐!!!) ‘나’는 일단 귀여운 멸치 인어를 수돗물에 넣어주고 (이러면 죽는 거 아닌가? 소금이라도 왕창 넣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안그래도 친했던 친구가 요즘 자신이랑 놀지 않고, 아빠는 강릉에 있고, 엄마는 일하느라 바빠 늘 혼자인 ‘나’는, 멸치 인어를 살리고 오랜만에 아빠도 만날 겸 혼자 강릉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실행에 옮긴다. 가면서 이상하고도 다양한 사람들을 잠깐씩 만난다. 그리고 멸치 인어는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 바다로 돌아간다. 



 

<인형 장례식>


 좋아하던, 늘 가지고 있던 곰인형이 드디어 소생 불가능 수준까지 가자 장례식을 치뤄준다. 엄마가 더럽다고 세탁기에 넣었다가 말그대로 더 엉망이 되어버린 곰인형, 더이상 가지고 있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넣는 건 예의도, 그런 마음도 들지 않으니 친구와 함께 정중히 장례를 치르는 아이의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만남뿐만 아니라 제대로 헤어지는 연습을 어렸을 때부터 하는 건 중요해.



<우리 선생님이 마녀라면>


 마음에 안드는 우리 담임 선생님. 그러니까 선생님은 분명 마녀가 분명해! 하며 반 친구들끼리 돌아가며 우리 선생님이 마녀인 이유와 증거를 하나하나 이야기하는데, 어찌나 그 추리가 하나같이 모두 웃음짓게 하던지. 정말 아이들의 담임이 마녀였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자신들이 옳았다고 기뻐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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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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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곧은 붓으로 담담하게 글씨를 세긴 아름다운 서예 작품을 감상한 것 같았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과연 어떤 재능과 성실, 체력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걸까. ...부럽다. 


한번 책을 펼쳤다가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과연, 오바마와 오프라가 추천하고도 남을 소설이다. 



미국의 19세기 노예제도를 다룬다고 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클리셰가 없다.


이 작품에는 극심한 노예 제도 속에서 사는 노역자 흑인, 돈을 얻고 자유를 얻은 자유인 흑인, 상급자 백인, 하급자 백인, 그 사이의 간격, 남부와 북부의 차이, 노예 해방 운동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백인들과 흑인들의 다채로운 모습들, 남부와 북부의 차이를 세세하면서도 묵묵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 모든 것의 중심이자 특별한 '초능력' - "인도 능력" - 이 있는 주인공 나, 하이람 워커가 있다. 하이람은 백인 상급자 아버지를 "주인님"이라 부르고, 노역자이자 기억이 제대로 안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팔아버린 흑인 어머니의 자식이다. 



화려한 띠지 외에도, 일단 표지가 아름답다.


처음에는 아래 사진 설명처럼 이 소설이 19세기 미국의 노예제도에서 "사물을 인도하는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길래, 나는 당연히 <워터댄서>가 주인공의 초능력에 초점을 맞춘, 인류의 슬픈 역사 중 하나인 노예제도에 대한 한풀이식 환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인도"라고 표현되는 초능력은, 뭐랄까,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초능력이라고 하면 흔하게 떠오르는 슈퍼맨 닥터 스트레인지같은 그런 능력이 아니라, "인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특수하고 특출한 능력이긴 하지만 눈에서 레이저 나오고 하늘을 마구 날아다니는 그런 초능력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사물을 이동시킬 수 있는 "인도"라는 능력은, 나에게는 일상 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가끔 마주치는 작은 기적같은 특별한 무언가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 능력이 "기억"을 하는 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나', 하이람 워커는 아버지가 백인 상류층이어도 특별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게 그 시대에는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주변의 다른 노역자들과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하이람에게는 모든 걸 다 기억하는 특별한 능력인 '기억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하이람에게는 이런 똑똑한 능력 외에도 "인도"라는 능력도 있었지만, 그건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야, 그리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이끌어내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기에 처음에는 그런 능력이 있는지 인지도 못하고, 사용도 자유자재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이렇게 모든 걸 한번 보면 잊지 않는다는 하이람의 기억력에 유독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에게 팔려버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다시 온전히 떠올리기 전까지 하이람은 "인도"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이 소설은 1부, 2부,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는 이복형이자 백인인 형의 하인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면서 사는 하이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형의 마차를 몰다가 강에 떨어져 형은 죽고 본인은 살며, 이후 사랑하는 여자와 도망칠 계획을 짠다.


2부에서는 믿었던 같은 동료 노역자에게 배신을 당해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져 어딘가에 감금당하고, 사냥질을 당하는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죽을 고비에 가봐야 초능력이 진짜 있는지 알 수 있다며 자신의 할머니에게도 있었다는 능력 "인도"를 확인하기 위한 노예해방운동 "언더그라운드"에 발견되어 소속되고, 훈련한다. 남부에서만 살다가 북부로 가 남부와 북부의 차이, 그리고 그 안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백인, 흑인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운동의 방향을 경험을 한다.


3부는 다시 고향에 돌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여자를 탈출시킬 수 있는 "인도"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 사용한다. 


사람 심리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초능력인 "인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벽돌만큼이나 실제적인 기억"력이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이다. 어머니를 잃은 아픔으로 모든 걸 잊지 않고 기억하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어머니에 대한 기억만은 없던 하이람은, 죽을 고비와 훈련과 다양한 사람들을 겪으면서 마침내 어렸을 때 헤어진 어머니에 대한 온전한 기억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인도"를 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나이에도 아직도 오래 전의 일들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으면 자주 악몽을 꾸는 내 사람으로서, 좋았던 일들 뿐만 아니라 슬프고 아팠던 모든 일들을 반드시 잊지 않고 기억해야 비로소 "인도"(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을 갖추는 거라는 소설의 이야기는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필사하고 싶은 구절이 많은 책이었다.

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



아. 그런데 p100에 오타 있어요. "다른 이게게"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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