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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곧은 붓으로 담담하게 글씨를 세긴 아름다운 서예 작품을 감상한 것 같았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과연 어떤 재능과 성실, 체력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걸까. ...부럽다.
한번 책을 펼쳤다가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과연, 오바마와 오프라가 추천하고도 남을 소설이다.
미국의 19세기 노예제도를 다룬다고 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클리셰가 없다.
이 작품에는 극심한 노예 제도 속에서 사는 노역자 흑인, 돈을 얻고 자유를 얻은 자유인 흑인, 상급자 백인, 하급자 백인, 그 사이의 간격, 남부와 북부의 차이, 노예 해방 운동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백인들과 흑인들의 다채로운 모습들, 남부와 북부의 차이를 세세하면서도 묵묵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 모든 것의 중심이자 특별한 '초능력' - "인도 능력" - 이 있는 주인공 나, 하이람 워커가 있다. 하이람은 백인 상급자 아버지를 "주인님"이라 부르고, 노역자이자 기억이 제대로 안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팔아버린 흑인 어머니의 자식이다.
화려한 띠지 외에도, 일단 표지가 아름답다.
처음에는 아래 사진 설명처럼 이 소설이 19세기 미국의 노예제도에서 "사물을 인도하는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길래, 나는 당연히 <워터댄서>가 주인공의 초능력에 초점을 맞춘, 인류의 슬픈 역사 중 하나인 노예제도에 대한 한풀이식 환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인도"라고 표현되는 초능력은, 뭐랄까,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초능력이라고 하면 흔하게 떠오르는 슈퍼맨 닥터 스트레인지같은 그런 능력이 아니라, "인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특수하고 특출한 능력이긴 하지만 눈에서 레이저 나오고 하늘을 마구 날아다니는 그런 초능력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사물을 이동시킬 수 있는 "인도"라는 능력은, 나에게는 일상 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가끔 마주치는 작은 기적같은 특별한 무언가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 능력이 "기억"을 하는 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나', 하이람 워커는 아버지가 백인 상류층이어도 특별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게 그 시대에는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주변의 다른 노역자들과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하이람에게는 모든 걸 다 기억하는 특별한 능력인 '기억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하이람에게는 이런 똑똑한 능력 외에도 "인도"라는 능력도 있었지만, 그건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야, 그리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이끌어내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기에 처음에는 그런 능력이 있는지 인지도 못하고, 사용도 자유자재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이렇게 모든 걸 한번 보면 잊지 않는다는 하이람의 기억력에 유독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에게 팔려버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다시 온전히 떠올리기 전까지 하이람은 "인도"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이 소설은 1부, 2부,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는 이복형이자 백인인 형의 하인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면서 사는 하이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형의 마차를 몰다가 강에 떨어져 형은 죽고 본인은 살며, 이후 사랑하는 여자와 도망칠 계획을 짠다.
2부에서는 믿었던 같은 동료 노역자에게 배신을 당해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져 어딘가에 감금당하고, 사냥질을 당하는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죽을 고비에 가봐야 초능력이 진짜 있는지 알 수 있다며 자신의 할머니에게도 있었다는 능력 "인도"를 확인하기 위한 노예해방운동 "언더그라운드"에 발견되어 소속되고, 훈련한다. 남부에서만 살다가 북부로 가 남부와 북부의 차이, 그리고 그 안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백인, 흑인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운동의 방향을 경험을 한다.
3부는 다시 고향에 돌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여자를 탈출시킬 수 있는 "인도"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 사용한다.
사람 심리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초능력인 "인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벽돌만큼이나 실제적인 기억"력이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이다. 어머니를 잃은 아픔으로 모든 걸 잊지 않고 기억하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어머니에 대한 기억만은 없던 하이람은, 죽을 고비와 훈련과 다양한 사람들을 겪으면서 마침내 어렸을 때 헤어진 어머니에 대한 온전한 기억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인도"를 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나이에도 아직도 오래 전의 일들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으면 자주 악몽을 꾸는 내 사람으로서, 좋았던 일들 뿐만 아니라 슬프고 아팠던 모든 일들을 반드시 잊지 않고 기억해야 비로소 "인도"(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을 갖추는 거라는 소설의 이야기는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필사하고 싶은 구절이 많은 책이었다.
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
아. 그런데 p100에 오타 있어요. "다른 이게게"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