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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의 양식 - 한식에서 건진 미식 인문학
송원섭.JTBC <양식의 양식>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너무 너무 재밌고 유익하다.
내 취향 300%. 특히 자칭 타칭 고메이자 식도락가라고 자부하는 내 입장에서 이 책은 말그대로 취향 저격. 원래 JTBC에서 방영했던 방송 프로그램이라는데 오랜만에 예능이 아닌 교양(교양예능?) 프로그램을 찾아 보고 싶어졌다. 책도 이렇게 재밌으면 방송은 더 재밌을 것 같아.
책 <양식의 양식>은 먼저 동명 프로그램으로 방송됐다.
<양식의 양식은> "2019년 12월 1일부터 2020년 2월 9일까지 JTBC와 히스토리 채널코리아를 통해 방송된 8부작 교양프로그램"으로 백종원, 정재찬, 유현준, 채사장, 최강창민이 모여 한식 8가지 - 삼겹살, 냉면, 치킨, 백반, 국밥, 불+고기, 짜장면, 삭힌 맛 - 을 두고 6개월간의 국내외(한국, 미국, 스페인, 중국, 태국, 프랑스, 인도네시아) 촬영을 마치고 방영됐다. 이 책은 방송에서 나오지 못했던 조금 더 세밀하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담겨 있다.
글 가독성이 높아서 읽기가 편하고 시원시원하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읽으면 읽을 수록 점점 더 배가 고파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방송으로 보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까....) 삼겹살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삼겹살이, 냉면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냉면이, 치킨을 읽을 때는 치킨이, 백반에 대해 읽을 때는 백반이.... 이렇게 줄줄이 식탐이 이어진다. 식단 조절 중인 사람이라면 조심스럽게 독서 유보를 권유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8가지 한식 이야기 모두 다 흥미로웠지만, 그 중에서 내가 자주 요리하는 돼지고기 - 여기서는 삼겹살 - 에 대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적어보겠다.
삼겹살.
1980년대에는 냉동삼겹살, 90년대에는 생삼겹살, 그리고 다시 최근에는 냉동삼겹살이 유행하는 중.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가 어딘가 미국 흑인들이 프라이드 치킨을 먹게 된 역사적 배경과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은 돼지 소비국 세계 5위인데 (2018년 도축된 돼지 약 1,700만마리) 이렇게 된지는 50~60년밖에 안된다고 한다. 돼지가 2,000년 전부터 가축으로 키워진 역사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돼지고기를 지금처럼 먹었던 시기는 극히 최근에 일어난 사실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이유가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 첫 번째, 국내산은 다 자라도 22.5~26.5kg인데 비해 수입해서 들어온 돼지는 무려 도축 최소 중량인 60kg 이상인 110~120kg 사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출하중량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 수입 이전 국내에서는 강아지만한 사이즈의 돼지는 고기가 별로 없어 대중적으로 그리 당기는 고기가 아니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양돈 산업이 일본 수출을 지향하는 구조로 구축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 부분이 미국 흑인들의 프라이드 치킨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1960년대 한국은 대규모 양돈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주 목적은 일본 수출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돼지고기 중 안심과 등심 부위는 일본으로 수출되었고, 한국인들은 그 나머지 부위들을 집중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삼겹살을 중심으로 족발, 내장, 머릿고기 등 잡고기 부위를 주로 소비하게 된 것이다"라는 점. 잡고기 부위 소비라니, 마치 백인들이 안 먹고 버리는 닭고기 부위들을 흑인들이 더운 날에 최대한 안 상하고 최대한 많이 흡수할 수 있게 돼지 비계 기름에 밀가루를 입혀 고기도 뼈도 최대한 흐물흐물하게 먹을 수 있게 해서 탄생한 프라이드 치킨이랑 어딘가 닮았다.
세 번째 이유는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바로 1960년대 시작한 정부의 "집중적인 돼지 사육 장려"때문이라는 점이었다. 해방 이후 소고기를 유독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 의해 균등한 고기 사육과 소비를 위해 매주 월요일을 '소고기 안 먹는 날'로 정하면서까지 닭과 돼지고기 공급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정부가 지원까지 했다니.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돼지고기는 주로 수육이나 제육으로 먹는 게 우선이었고, 지금처럼 삼겹살을 먹는 데 대유행이자 대한민국의 소울푸드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삼겹살 집이 지금처럼 어딜가나 볼 수 있게 된 시점은 1979년부터라는 것이다.
역사가 41년밖에 안되었다.
삼겹살이 이처럼 일반화되기 위해서 다음과 같다.
첫째, "돼지고기가 질과 양 면에서 풍성해져야 한다." 해방 이후 돼지고기 사육과 소비 진흥에 힘쓴 한국 정부로 인해 "기업적인 대량 사육이 이뤄졌고, 돼지들은 위생적인 환경에서 관리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길러진 비육종 돼지들을 접하면서 한국인들은 돼지에 대한 오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 재래종보다 3, 4배 더 체구가 큰 수입 비육종 돼지들은 과거 재래종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성한 삼겹살(즉, 뱃살)이라는 신세계를 열어 준 것이다".
둘째, 휴대용 가스레이니지(부루스타)와 철판의 등장. 기름이 많은 삼겹살에 기존의 석쇠는 기름 뚝뚝 덜어지는 고기를 굽기에는 불편하기만 했고, 연탈불을 주 가열 기구로 사용했던 예전에는 화력이 남다른 - 그러니까 "안정적으로 화력을 공급하는 - 부루스타의 등장은 삼겹살을 먹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셋째, IMF 사태, 그리고 2003년 광우병 사태로 인한 삼겹살 유행. 사실 이건 내가 유일하게 동의 못하는 이유인데... IMF 때문에 소고기 꽃등심만 먹다가 삼겹살을 먹는 것으로 대체되고(가격 때문에?)... 글쎄. 그래도 광우형 사태로 상대적으로 돼지고기 선호도가 올라갔다는 건 동의한다. 뭐랄까, 좀더 안전한 먹거리로 보여 같은 고기를 먹을거면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고기 보다는 별탈 없어보이는 돼지고기를 더 좋아했을 것 같아.
추신: 미국 멤피스 축제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