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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이기주의자
율리엔 바크하우스 지음, 박은결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독일의 젊은 갑부, 86년생 율리엔 바크하우스의 책이다. 어마무시하게 유명한 모양인데 나는 이 책 덕분에 처음 알았다. 독일 사람과 한국 사람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나뉘어졌(었)다는 공통점때문인지 그 국민 속성에도 묘하게 닮은 점이 있는데, 여기서 이 독일 영 리치는 독일 사회에서 강조하는 “이기주의자”라는 단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강조하며 왜 우리 모두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지, 나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자유로운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는지를, 자신의 유명하고 돈 많고 행복한 삶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이 책은 독일 내에서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글쎄. 이런 종류의 긍정적 이기주의에 대해 많이 듣거나 읽어 본 사람에게도... 글쎄.
이 책이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이유는 책의 내용보다는 이 사람 자체가 유명한 영 리치 셀렙이기 때문인 것 같더라. 마치 우리나라에서 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데, 뭐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누구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그냥 문자 그대로 젋은 나이에 사업에 성공해서 돈도 많고 미디어에도 자주 출연하고 본인도 그걸 즐기는, 유명해서 유명해지는 그런 호환(?) 사이클로 독일에서 남들이 많이 부러워하는 유명인이 쓴 책이라. 베스트셀러가 된 케이스라고나 할까.
일단 책 내용이 너무 뻔하다. 익숙하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런 “긍정적 이기주의”에 대한 책들을 넘치고 넘쳤다.
먼저 저자가 말하는 “이기주의”에 대한 새로운 정의.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왜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근거.
게다가 그런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방법도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고, 심지어 왜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지 제시하는 근거들도 지겹도록 읽고 들었던 것들이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 그리고 지금은 반박 실험 자료가 나와서 60년대 실험이 이제는 거의 무시되는 ‘아이들의 인내의 마시멜로 실험”이야기를 아직도 하는 걸 보고 비행기에서 산소 마스크를 본인이 먼저 써야 하는 이유 역시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다.
‘자유로운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한 방법 16가지들도.... 그 16가지 중에... 나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건 하나도 없었다. 미안.
오히려 공감이 안되는 근거들.
이 책은 저자가 독일에서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자신의 개인적 삶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 중 몇 가지는 이 사람처럼 부자가 아닌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가는 게 여러군데 있었다. 단순히 사는 세계가 달라서 그런건가, 싶은 것들도 있었고 그냥 이 사람 성격이 부자이고 잘생기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강박증같아서 좀 꺼려지는 부분도 있었고.
가령 우버 같은 블랙래인서비스 이야기라든가.
프라이빗 플레인을 놓쳐서 비행기를 탔는데 커피를 옮겨달라는 이야기라든가.
아니 사실 여기서는, 카운데 빈 자리에 커피를 놓은 옆 좌석 사람에게 옮기라고 ‘부탁’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 전에 자신은 비행 조종사도 아니면서 비행기 터뷸런스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안다는 이야기를 5줄에 걸쳐 이야기하는 게 우스웠다. 그리고선 그 커피를 옮겨 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그 커피가 자신한테 쏟아졌을 거라면서 말하는 것도 - 그리고 결국 그 커피는 그걸 주문한 사람에게 쏟아진 게 무슨 사필귀정인 것 마냥 말하는 것도 웃겼고.
노숙자를 다가와 돈을 달라고 했는데 너무 더럽고 냄새나고 그래서 싫어서 뿌리친 것 까지는 이해도 되었고, 이걸 방송에서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이 사과하라 어쩌라 안 그러면 너네 회사 물건을 더이상 안 사겠다 했는데 ‘나는 내 생각을 말한 거고,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 안하기 때문에 사과할 생각이 없다, 내 회사와 연을 끊으면 다른 파트너를 더 구하면 된다’식의 사고방식까지는 좋았지만, 그 다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생 개념이 없기 때문에 자신은 다른 사람들도 다 만질 수 있는 도어넙(?????)도 안 만진다고 말하는 건 좀 코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러면, 넌 어떻게 문을 여니? 남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니? 남보고 문을 열어달라고 하니?
그래도 배울 만한 점은.
그래도 배울 점들은 있었다. 기대한 것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있긴 있었다.
모든 책들이, 좋은 책이든 나쁜 책이든 배울 점이 있듯이.
일단 나는, 이 사람이 호텔 조식에서 매번 스크램블 에그를 새로 데워달라고 요청해서 달라고 하는 등의 에피소드에서, 그러니까 식어빠지고 맛없는 스크램블 에그는 저얼대로 나의 소중한 시간과 인생에 허락하고 싶지 않고, 나는 돈을 내고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니 이런 요구는 불평불만이 아니라 당연히 나의 니즈를 요청하는 내 권리 실현이다, 라고 말하는 다양한 예시에서, 비슷한 상황에서도 늘 참고 손해보고 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편해도 늘 아무 말 못하고 결국 끙끙대다가 만만한 사람으로 보여 좋은 일보다 화나는 일들이 더 많았던 내 삶을 돌아보고 -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화풀이가 아니라 정당한 요구인 경우에는 이 저자처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 실천 방안 중 하나로 며칠 전에 찾아갔던 24시간 카페에서 음악 볼륨을 좀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좀 개인적인 부가 설명을 하자면,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내 집’이 아니다. 게다가 여기는 24시간 카페가 하나밖에 없고, 내가 있는 곳은 (아직도) ‘임시 거주지’라 방에 인터넷이 설치가 되어 있지 않다. 사실 한 달에 만원만 내면 방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기회에 인터넷 중독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글 좀 써보려고 하는 터에 일부러 이 ‘임시 거주지’에 인터넷 설치를 안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부득이하게 한밤중에 인터넷을 써야하는 상황이 생겨서 밤 11시에 24시간 카페에 갔었다.)
뭐 별 거 아닐 수 있는 에피소드지만 예전의 나라면 천장에서 내 머리를 소리로 때리는 것 같은 큰 음향에도 그냥 한숨만 쉬면서 소음을 소음으로 막기 위해 그냥 이어폰을 끼고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날은 그렇게 하다간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또 예전에 이 카페에 왔을 때는 이렇게 옆 자리 수다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음향이 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음향이 너무 커서, 가서 음향을 좀 줄여달라고 했다. 확언하건데, 분명 그 날 음향을 줄여달라고 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본사 규정이라서 줄일수가 없다고, 죄송하다고 하는데 - 그게 뻥이라는 걸 알아서 지난 번에 왔을 때는 안 이랬다, 라고 말했는데도 결국 한 명이 더 오더니 코로나때문에 본사 규정이라고 줄일 수가 없다, 죄송하다 해서 - 그냥 포기하고 왔다. 그래도(?) 새벽 3시가 되니까 카페 2층에는 손님이 나를 포함해 남자 둘, 3명밖에 없으니 그 시간이 되니 불륨이 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내 발언때문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어쨌든 한번 말하니까 그래도 후련하더라.
음... 몇 년전에 테드 등 여러 곳에서 나왔던 지아 장의 ‘거절하기에 익숙해지기’ 중 하나라고나 할까.
내가 율리엔 바크하우스가 했던 말들 중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말 3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칭찬과 비난 모두 거리를 두라.
공감. 칭찬과 비난은 결국 같은 것이라고 믿고 있는 나에게는 같은 생각을 하는 말이 반가웠다.
2. 평생 함께하는 동반자는 자신뿐.
공감. 자신을 자신의 베스트프렌드로 두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 뿐이다.
3. 통제의 즐거움.공감. 저자는 스스로 통제를 원하기 때문에 술과 설탕을 멀리한다고 한다. 나는... 통제를 찾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추천이라고 하기에도, 추천을 못하겠다고 하기에도 망설여지는 책이다.
배울 점은 있지만, 이미 이 책의 많은 내용들이 서점에 나왔다가 사라져서, 중복되는 근거들과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다.만약 당신이 그런 책들을 많이 접하지 못했거나, 율리엔 바크하우스란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읽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