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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행자
윤대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34살의 소설가인 나는 소속 에이젼시의 k로부터 소포를 건네받는다. 소포 속에는 아기들에게 숫자를 가르치
는 카드가 있고, 카드 속에는 자잘한 메모들이 적혀 있다. k는 나를 카드 속의 여정을 따라 여행하게끔 일본
으로 떠나보내는 자신의 마지막 일을 끝마치고 부산으로 가서 벙어리 소녀의 부모를 찾아주겠다고 한다. 나
는 앓는 이와 천식을 핑계로 대지만 결국 일본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눈을 따라 여행한 메모를 쫓아 그 일정
을 되밟으며 나는 눈 속에서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게 되고 그 아이를 달래기 위해 동요를 부른다. 마지막 여
정에서 나는 자신에게 소포를 보낸 사람을 알게 된다. 출발지이자 종착지인 니가타에서 나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이종희 씨로부터 그의 아내와 딸 아이의 죽음, 아이의 화장 후 아내가 눈을 따라 가며 아이의
10개의 이빨을 눈 속에 묻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위로할 수 있는 가마쿠라(얼음집,
소설)를 나에게 지어주길 원한 것이다.
어찌보면 구성은 간단하다. 서울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지낸 10개의 여정... 그 여정은 나의 경험과
겹쳐진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학대받으며 자란 외사촌 누이와 동거하며 연수라는 아이를 갖게 된다. 그러나
외사촌 누이는 나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나를 떠나 일본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일본 여행 마지막 날 아이와
만남, 외사촌 누이와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용서하게 된다.
소설에 나타나는 세 개의 아픔은 동질성을 지닌다. k가 데리고 있는 벙어리 소녀, 말이 늦된 생후 한 살 되어
사고로 죽은 이종희의 딸, 외사촌 누이와의 사이에서 나온 축복받지 못한 아이 연수... 하지만 이 세 가지 아
픔은 그 당사자들이 느끼는 아픔이 아니다. 오히려 주변에 살아남은 가장 가까운 자들이 느끼는 아픔이다.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벙어리 소녀의 경우 살아 있지만 딸을 잃은 이종희는 자신의 아내가 말을 하지 못하
는 실어증 증세를 보이게 된 것이 이미 죽은 상태로 단정하며, 연수는 나에게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로, 강
보에 쌓여진 아기로 인식되다 니가타에서 만나고서야 여섯 살로 성장한 아이를 보면서 그 아이가 다시 나의
기억에서 부활하게 된다)를 잊지 못해 슬퍼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눈이라는 배경이 하는 역할이 크다. 오히려 플롯은 부차적인 것이다. 눈과 관련된 서정적 분위기와 눈 속에
서의 부활 만이 이 소설에서 내가 읽은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