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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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실격人間失格 

명랑사회 구현. 해묵은 비타민 음료 광고에서 당시 인기절정 걸 그룹은 명랑댄스로 명랑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열심히 춤을 춘다. 모니터 앞에 가만히 앉아 몇 번이고 반복 재생해서 보니 명랑해지는 듯도 하다. 하지만 방금 지은 표정은 ‘어딘 모르게 음산하고 불길한 것’이고 ‘애초에 이건 웃는 얼굴이 아’니라는 <인간실격> 요조의 어린 시절 얼굴과 닮지 않았을까. 어린 요조는, 기획사가 됐든 가난한 집안이 됐든, 명랑사회를 위해 피곤을 무릅쓴 그녀들을 봤던 걸까.

나는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감이니 뭐니 하는 도덕성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 맑고 밝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 같은 인간이 내게는 난해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끝내 내게 그런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알았다면 나는 인간을 이토록 두려워하며 죽을 둥 살 둥 광대 짓 서비스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요. <인간실격> 27쪽

자살이 다자이 오사무가 스스로 자신에게 내린 죄의 대가 실격 판정 '벌'일까. 번번이 여자를 끼고 물에 뛰어들었다가 자신만 살아남은 파렴치한이래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그를 보면, 삶이란 이리 구차한 것으로 지독하게 살아보자, 는 역설을 읽는다. 만개했다가 한 번에 지는 벚꽃 이미지는 칼날이 잘 들어가지도 않을 법한 근육질로 몸을 단련하고서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가 죄다 차지했지 병약하고 나약한 다자이 오사무의 투신자살로 돌아갈 몫은 아니다. 흐흐. 죽죽는 순간까지도 빛나는 가면이 되고 싶었던 미시마 유키오를 다자이 오사무가 살아 봤다면(다자이 오사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 특유의 웃음을 지어보였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에게 ‘광대 짓’ 절정이 혹시 자살 시도가 아니었을까. 그가 할복자살을 할 만한 위인이 못 된다는 건 짐작이 가지만 목을 매달거나 독약을 먹거나 아니면 건물에서 뛰어 내리는 대신, 살 여지가 있는 투신자살을 택했던 이유는 ‘죽을 둥 살 둥’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줄을 타는 광대여서가 아니었을까. 여자와 같이 뛰어내렸다가 혼자 살아남은 상황만 보면 지독한 이기주의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산다는 건 누구라도 이기적이지 않은가. 어쩌면 혼자 살아남았을 때 그는 ‘실제’로 죽을 각오를 한 그녀를 위해 최고의 광대 짓을 해보인 것 아닐까 짐작한다. 

여자 상인이 남자 상인보다 나를 두 배나 유효하게 사용한 것 같아요. 여자의 욕심이란 남자의 욕심보다 한층 철저하고 야비해서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구석이 있습니다. 화폐 230쪽

단편 소설 <화폐>에서 100엔 짜리 지폐가 말하는 진술은 참 이기적인 편견이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삶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2배 이상 ‘유효’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그 지독한 애증 관계에 기꺼이 몸을 던진 건 오사무인데, 무섭고 야비하다고 야유를 보내고 있으니, 참 속편하고 얄미운 화상이다. 그래도 여자가 아니라면 그가 어디에서 위로와 위안을 찾았을까, 하면 끙 하고 만다. (미시마 유키오가 부러워했던 게 요런 점이었을 게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라고 생각되는 건 그것뿐입니다. 인간실력 135쪽

마침내 자살을 하고 말았지만 당시 그의 몸은 지독한 결핵이 갈아먹고 있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명랑성과 건강성을 대표하는 단편’을 다작으로 써대는 광대 짓을 반복하면서 인간 탐구를 계속할 여지가 없어진 뒤다. 내내 술, 마약, 여자만 좇았으니 미시마 유키오의 힐책처럼 자업자득이래도 할 말이 없지만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그것뿐이다’는 잠정 결론에 도달한 이상 39년 인생이면 족하지 싶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센스도 있고, 술만 마시지 않았다면, 아니, 마셨어도…, 하느님 같이 착한 아이였어.” 소설에서 요조를 기억하는 마담의 입에서 흘러나온 아쉬움 가득 담긴 여운이다. 소설 밖에서도 기행으로 얼룩진 망나니가 아닌 순수하고 센스도 있고 착한 아이로 기억되길 바라는 그의 소망은 이루어졌을까. 죽고 2달 뒤에 발표된 <인간실격>을 읽고 당시 일본 독자들이 어떻게 판단을 내렸을지 의문이다. 다만 마담의 마지막 말은 요조를 만난 적이 없고 오로지 요조가 쓴 ‘수기’만 읽은 소설가 ‘나’가 진술하는 후기에 등장하는 <인간실격>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다. 지금 막 소설을 읽은 독자인 나와 다르지 않다. 나약한 인간 막장기라 불러도 절절한 독백을 솔직하게 늘어놨지만 마지막 만큼은 다르게 기억되고 싶은 욕심일까. 아니다. ‘광대 짓’에서 더도 덜도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누군가에게 그의 소설이 위안을 준다면 지금껏 벌인 ‘광대 짓’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이 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면 광대 짓을 하면서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뻔뻔하거나, 광대 짓이 광대 짓일 줄 모르고 살거나 둘 중 한 가지여서는 아니어야 한다. '당신은 기꺼이 광대 짓을 해보이며 위로를 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요조를 그렇게 기억하는 인물은 부모, 형제, 친구, 아내가 아니다. 관객인 그들은 정작 요조의 광대 짓을 웃고 즐기면 그뿐이었지만, 광대 화장을 지우고 찾아갔던 술집 마담은 달랐다. 내가 벌인 광대 짓을 알아차리고 기꺼이 외상으로 술 한 잔을 따라주는 일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알아보는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다. 

요조가 한 말처럼 모든 것은 지나간다. 무심히 졸졸졸 흐르는 냇물이라도 보고 있으면, 다자이 오사무는 흐르는 물에서 물리적 개념으로 우주 전체를, 종교적 개념으로 이승과 저승을 아우른 온전한 세상의 회전을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광대 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꾸만 둘이 단짝이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 미시마 유키오도 기꺼이 동참해서 듀엣으로 말이다. 

<인간실격>은 책 한 권으로 묶기에는 어중간하다. 다자이 오사무가 결핵이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의 인간실험이 좀 더 오래 갔을 것이고 장편소설 한 권 분량이 나왔을 것이다. 뭐,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싶은 건 독자 생각이지만 책 편집자라면 고심할 부분이다. 시공사에서 나온 <인간실격>은 단편소설 <비둘기비늘 옷>, <로마네스크>, <새잎 돋은 벚나무와 마술 휘파람>, <개 이야기>, <화폐>가 같이 실렸다. 의도한 부분인지는 몰라도 다자이 오사무가 이전부터 물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짐작할 만한 편린이 있다. 

한차례 용소 깊숙이 가라앉았다가 상반신이 둥실 물 위로 튀어 올랐다. 눈을 감고 입을 조금 벌리고 있었다. 푸른색 셔츠 여기저기 찢어지고 채집 가방은 아직 어깨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뿐, 다시 쑥 물 밑바닥으로 끌려 들어갔다. (145쪽) 뭔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이윽고 몸을 하늘하늘 흔들며 똑바로 용소를 향해 다가갔다. 순식간에 빙글빙글 나뭇잎처럼 빨려들었다. (153쪽) '물고기비늘 옷' 

지로베는 간간이 강에서 목욕을 했다. 바닥 깊이 잠수해서 가만히 있기도 했다. 싸움이 한창일 때 아차 잘못해서 발이 미끄러져 강에 굴러 떨어졌을 경우를 고려한 수행이었다. 강이 온 동네를 흐르고 있으니 어쩌면 그런 경우도 있을 터였다. (173쪽) 그(사부로)에게 떠밀린 두부 가게 막내아들은 강물에 떨어지면서 가느다란 양쪽 다리로 오리처럼 세 번 천천히 허공을 할퀴듯 버둥거린 뒤에 풍덩 빠졌다. 파문이 강물의 흐름을 따라 한 칸쯤 아래쪽으로 옮겨간 뒤에 그 파문이 한가운데서 한쪽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179쪽) '로마네스크'

글쎄, 그 의대생이 나를 버리고 여관을 나간 뒤에 곧바로 세토우치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게 아니겠어요. 그때 일하는 아줌마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얼핏 들렸습니다. “혼자서 죽다니 너무 바보 같지 뭐야. 그렇게 예쁘장한 사내라면 내가 언제든지 함께 죽어줄 텐데.” (229쪽)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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