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집 1 안데르센 동화집 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빌헬름 페데르센 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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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관광지로 제주도보다 더 많은 외국인이 찾는 곳이 있다. 14만평짜리 남이섬이다. 하지만 정작 가보면 눈길을 잡아끄는 휘황찬란한 뭔가가 있는 게 아니다. 잠깐 왔다 가는 이들의 눈에 뭐가 보이는지는 다 다르겠으나 담백한 가정식처럼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처럼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소소한 것들에 사연을 담아 작은 섬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중 남이섬에 첫 발을 들여놓는 곳, 선착장 근처 물가에 여인상이 하나 서 있다. 이른바, ‘남이섬 인어공주’(www.namisum.com/_ver01/_bbs_iw2000/?link_code=0704)다. 그리 잘 만든 작품인가 싶은데, 이야기를 담으니 풍성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요 작은 섬을 ‘나미나라’라 하여 채우고 있는 건 정작 눈에 보이지 않은 사연들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종종 눈에 띄는 인어공주상의 원조인 안데르센의 나라,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있는 인어공주상도 크기가 80cm에 불과한 작은 동상에 불과하지만 관광객들이 꼭 찾는 인기 관광명물이다.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의 상상력을 한껏 담은 동화책은 아이들에게 일용할 양식으로 지금도 널리 사랑받고 있고, 또 남이섬의 예처럼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변주되고 확장되면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의 창작 동화이나, 물속 세상을 다룬 이야기는 안데르센 당시 유럽 민담이나 독일 시인 푸케 시 등으로 알려진 소재이다. 유럽이 아니더라도 동서양에 고루 걸쳐 민담과 전설로 바닷속 세상을 전제로 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판소리 ‘심청전’나 고대소설 ‘별주부전’ 등으로 우리에게도 꽤 친숙한 편이다. 안데르센동화집은 스토리텔링의 놀라운 힘을 확인시켜주는 유명한 일례이다.

시공주니어에서 안데르센이 남긴 200여 편의 동화 가운데 156편을 완역본으로 출간하는 ‘안데르센 동화집’ 시리즈를 총 8권으로 발간하고 있다. 작품 순서까지 당시 출간에 맞추고 초창기 삽화를 그대로 싣는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개작하기보다는 안데르센과 그의 작품을 복원하는 데에 중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안데르센의 이야기가 지금처럼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이유를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안데르센의 어린 시절과 가족사, 안데르센 동화의 특징, 젊은 시절 화보와 작품마다 전문가의 해설을 곁들여 작품의 출처, 의의와 배경을 소개하면서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인어공주’를 예로 들면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의 자아로, 바닷속 세상은 안데르센이 태어나고 자란 하층 계급사회를, 왕자가 사는 물위 세상은 덴마크 상류사회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사람 취급을 못 받고 괴물 취급을 받는 인어공주가 두 발을 얻은 뒤 걸을 때마다 칼날을 밟는 듯한 고통과 시련을 받는 일련의 과정은 상류 사회를 동경하는 배우지망생이었으나 퇴짜를 맞고, 소설가가 된 뒤에도 동화를 발표할 때마다 비난받기 일쑤였던 당시 심정을 반영하고 있다고 풀어낸다. ‘인어공주’는 평단의 싸늘한 평가에 동화를 쓸 마음을 접고 소설 집필에만 전념하던 안데르센이 착상과 플롯이 떠올라 ‘도저히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어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만약 당시 그가 역경을 겪지 않았더라면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지 않고 왕자와 행복하게 잘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애초 왕자님이 탄 배가 폭풍우를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막내 공주가 호기심을 가질 일도 없이 다른 언니들처럼 바닷속에서 만족하면서 살았다는 식의 무난한 이야기가 나왔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랬다면 평단에서 계몽적, 교육적 측면은 없고 환상적인 묘사에만 집착한다거나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이라 어린이한테 읽히면 안 될 작품’(작은 클라우스와 큰 클라우스)이라는 혹독한 비판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우리는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비극적 정서를 담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은 ‘인어공주’는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안데르센 스스로가 14살에 배우가 되겠다고 무작정 시골 마을에서 대도시 코펜하겐으로 떠났듯이, 그가 보는 아이들이란 어른들의 생각처럼 어리지도 않고 어수룩하지도 않으며 어리석지도 않은 작은 어른임을 익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반대로 ‘벌거숭이 임금님’(원제 : 황제의 새 옷)처럼 허위와 허풍으로 가득한 어른들을 일깨워줄 이야기로 썼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리기는커녕 뜨끔해하면서 안데르센 동화집을 읽는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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