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김성민 글, 이태진.조동성 글 / IWELL(아이웰)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일제의 남경대학살 만행을 다룬 <난징 대학살> 저자 아이리스 장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 앞에 과연 우리는 자유로운가. 1923년 9월, 관동대진재학살을 비롯해 일제와, 이후 군부독재의 광주 대학살 만행은 아픈 근현대사로 남아 있다.

나치의 만행과 진상을 밝히고, 이후 나치를 옹호하는 경우를 냉정하게 처벌한 독일과 달리 일본은 군국주의에 대한 목소리나 역사를 날조, 왜곡하는 자국 역사가들에 대해 여전히 관대하다. 위안부 문제에서 보듯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사안으로 봐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가 과거가 아닌 현재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반민특위는 흐지부지, 친일파가 쥔 기득권이 군사정권으로 이어진 게 멀지 않은 일이다. 해방 이후 64년만인 올해 11월 8일, 이제야 친일인명사전이 나왔다. 등재 사실을 두고 사죄하는 친일파 후손도 있으나, 대부분 사전 자체를 폄하를 하고 핏대를 세운다. 그렇게 망각은 정신 이상을 가져온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기억을 해야 한다. 올해는 안중근 하얼빈 거사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안중근 의사’ 우리가 익히 배워 알고 있는 칭호이다. 허나 선비 사(士)를 쓰는 의사라는 칭호는 개인적 울분에 의한 의거를 의미하는 말로, ‘포수가 애국심으로 저지른 무모한 테러’라는 일본 법원의 손을 들어주는 말이다.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독립 전행을 하였고, 또 전쟁 포로 대우하라고 일본 법정에 요구했다.

올 한 해, 다양한 문화 장르에서 안중근을 기리는 작품들이 연이어 소개되었다. 일본 희곡작가의 눈으로 본, 감옥에 갇힌 이후 안중근의 사상을 다룬 연극 <겨울꽃>과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를 중심에 놓고, 안중근 다시알기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는 50억 대작 프로젝트 창작 뮤지컬 <영웅> 등이 그렇다.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공식 사과를 한 안타까운 실화를 다룬 짧은 단편 소설 <이토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에서는 안중근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역설적 제목의 단편 소설은 호부견자(虎父犬子) 소리를 들는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준생의 삶을 다룬다.

안중근 거사 이후, 일본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안준생의 어렸을 적 삶은 비참했다. 안준생의 형은 일곱 살 때 누군가가 준 과자에 먹다가, 배고파할 동생과 나눠 먹을 심산으로 집으로 가지고 오는 길에 죽는다. 독살을 당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공식으로 사과를 하고, 죽음 대신 삶을 택한 안준생은 한때 임시정부의 암살 대상이었다.

안중생의 삶은 역사적 환호 뒤에 가려진 단면의 일부일 뿐이다. 안준생을 약재상을 돈을 벌어 그의 아들은 미국에서 의사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영웅의 이야기는 뮤지컬의 장엄한 결말과 달리, 연극의 일본인까지 감동을 한 사상가의 면모를 드러낸 모습과 달리 감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는 좀 더 많은 부분에 대해 외면했거나 무시했거나 왜곡해왔다. 독립군 가계의 비참한 대물림, 친일파 자손들의 득세는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이다. 일제의 의해 훼손되어 함부로 다뤄진 안중근의 유해는 어디에 묻혔는지도 여전히 찾지 못했다.

거사 이후, 가족의 비참한 미래를 안중근이 짐작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안준생에게 아버지 안중근이 영웅일 수 있는가. 이면의 진실 때문에라도 우리가 안중근을 새롭게 다룬다면 보다 촘촘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 얘기들이 현실이 되지 않는 이상 일제 잔재 청산을 비롯해 반쪽짜리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없다. 그리고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이상,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

며칠 남지 않은 2010년은 안중근 순국 100주년이다. 내년에는 이 작품이 보다 치밀한 얼개를 가지고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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