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다른 수식이나 설명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사람이 가진 표정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려 노력한다. 그럴 때 주변의 복잡한 배경은 이야기에 방해가 된다. 사람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서 내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사진을 찍는 그 순간만큼은 내 사진의 처음이요 끝이 된다. (99쪽)

사진을 볼 때 문득 렌즈의 사각 프레임 밖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웃고 있는 얼굴 옆으로 선 밖으로 잘려나간 그 자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있어서 저렇게 웃을까. 저 이는 왜 울고 있을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진기는 보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이기적인 매체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컷 수가 늘고, 자르고 이어붙이는 편집이 비교적 손쉬워진 덕에 프레임 개념이 확장되었지만 자를 수는 있어도 더 많은 걸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한계를 넘는 자리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회화가 있을 것이다. 사진이 회화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복제로 인한 아우라 소멸에만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것. 사진의 힘이 거기까지 미친다면 앞으로 내가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아내야 할 것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벅찬 마음에 가슴 한구석이 뻐근했다. 사진가로서 또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53쪽)

유명 연예인 사진을 찍어 이름이 알려진 사진작가 조세현의 사진집 <조세현의 얼굴>에서는 수많은 컷 중 고르고 골라 실은 사진들 마냥 담담하게 시구처럼 적어내린 글귀에서 그 한계를 극복한 순간을 말한다. 자랑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웠던 그러나 분명 “경이로운 순간”의 경험이다.

<조세현의 얼굴>을 오가는 지하철에서 그만 다 읽고 말았는데, 여유 없이 글자만 좇아간 이유이다. 그래서 집에 와서 사진을 다시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병마총으로 유명한 중국 시안[西安]에서 주민들의 편안한 일상을 담은 작품집 속 인물들은 하나 같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심지어 병마총도 ‘프로필’의 원뜻이라는 옆모습을 스스럼없이 내보인다. (옆모습이 사람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외국인들 사진이 그렇다. 평평한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전환이다.) 카메라를 응시한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웃음! 쫓겨서 카메라를 발기한 성기마냥 들이대는 낯선 관광객에 보여줄 표정이 아니다. ‘내 사진에는 유독 웃는 얼굴이 많다 (…) 거짓 웃음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호기심으로 스스로를 무장해제시키는 웃음’이라는 그이의 말은 돈 몇 푼으로, 혹은 유명 사진작가를 타이틀로 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저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계속 나를 의식한다. 그럼에도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어내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좀 더 편하게 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97쪽)

억지웃음을 지을 때가 많은 연예인들이 조세현을 부러 찾는 이유라면, 사진 찍는 기술 이전에 그의 ‘편하게 해주는 것’일 게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연예인들의 참 표정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림자 연극 풍경을 담은 ‘표정들’ 외에는 한낮의 자연광 아래 찍은 사진들이다.

조세현은 그들의 삶에 맞춰 느릿느릿 시안 주민들의 속도에 맞추면서 그들과 렌즈 이전의 교감을 얼굴과 얼굴로 나누었을 것이다. 재빠른 손이 아닌 느긋한 발걸음으로 촬영한 사진은 사진을 찍기 이전의 과정이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사진이란 이런 것이구나, 후딱 읽히고 평범한 사람들의 표정에 싱겁다 싶었다가 집에서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깨닫는다.

2천 년 전 얼굴을 담은 병마총 군인들의 얼굴은 역시 비슷한 시기 시안에서 탄생한 그림자 연극을 총총한 눈으로 보는 마을 주민들의 얼굴과 겹친다. 한 밤의 어둠을 극장 삼아 마을 공터에서 주민 몇몇을 앞에 놓고 열리는 소박한 무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방식이다.

그런대도 우리는 생동감이 넘치는 진짜 얼굴을 무시하고, 본 따 만든 인형 얼굴만 대단하다, 대단하다 혀를 내두른다. 조세현이 말하는 ‘사람을 찍다 보면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그와 나의 눈이 늘 마주칠 수밖에 없는데, 사람의 눈을 마주하는 것은 그의 영혼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마음을 다해 사진을 찍다 보면 눈빛으로 대화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이 곧 소통이다. (98쪽)’이라는 말은 사진집을 읽는 나와 작가와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사진을 읽다 보면 사진작가의 마음이 엿보이는 ‘경이로운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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