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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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시기가 우리 대에서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자식 대에는 목욕이란 풍습이 존재했던 호시절을 환상처럼 그리며, 선조들이 참 파렴치하게 지구를 말아 먹었다고 원망할지도 모른다. 아, 나는 파렴치한 사치를 누리고 있구나. 누가 이런 나를 본다면 참 궁상스럽게 산다고 생각하겠지? 어쩌다가 목욕 한 번 하면서.-50쪽

"어라? 고등어 먹는 게 왜 변태야? 개고기는 괜찮고 고등어는 변태야? 자기는 독일 사람이니까 생선 안 먹고 자랐지. 나는 한국 사람이라서 고등어가 고향 음식이란 말이야."
"그럼 앞으로는 당신만 먹어. 다른 사람들까지 먹을 필요는 없잖아. 바다 생선 안 먹고도 잘 살아온 사람들까지 맛을 들여 엄청나게 먹어대니 씨가 안 마르겠어? 정작 생선에 의지해온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빼앗긴 셈이고 말이야. 그건 변태야."
"으이그, 그럼 나도 먹지 말라는 소리지. 그냥 안 먹고 말지. 어떻게 나 혼자 먹으려고 고등어를 굽겠어? 근데 당신 말이 맞네. 알았어."-63쪽

평소에 말수가 적은 그 친구는 과일 장수에게 왜 소비자들이 남아공 과일을 사지 말아야 하는지 또박또박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보이콧을 하는 사람들이 유럽에도 소수였다는 것을. (…) 나중에 남아공에서 인종차별법이 철폐되고 흑백 차별 없이 자유 총선거를 치러 정치적으로나마 인종차별이 없어지는 일이 외국의 경제적 압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괜히 마음이 흐뭇했다.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정치적으로 종결시키는 데 내 힘도 한몫한 게 아닐까 해서.-69~70쪽

당장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하는 일이 바로 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는 기쁨 아니겠는가? 사회가 뒤집어지거나 말거나 변치 않는 나의 가치를 확인한 것. 이것이 인생의 횡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77쪽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는 우리가 결혼 초반에 직업 세계에서 승승장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인생관이 확고하게 서기 전에 일에 대한 유혹이 먼저 들어왔다면, 승부욕이 강한 우리의 성격으로 보건대 진로를 그 방향으로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랬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종류의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 아무런 후회 없이 이렇게 행복한데, 내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폄하할 이유는 없다. 나는 이런 행복감이 나만의 거짓말인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사실이다.-85~86쪽

아이들 나이가 십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우리 부부는 그나마 쥐고 있던 고삐도 늦추고 느긋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어른이라고 우리가 더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과소평가하고 참견하는 일이 낯간지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 곁에 친구처럼 있어줄 뿐이다.-96쪽

우리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이 평생 신념과 사랑을 가지고 전념할 일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공부든 기술이든 상관없다. 공부 잘해서 성공한 판나 교수도 조직의 노예가 도리 수 있고, 평범한 기술자도 주인 의식을 가지고 살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늘 강조했다.
"너에 관해서 너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 엄마 아빠도 네 일에 관해서 너보다 더 잘 알 수는 없어."-103쪽

느낌과 감은 당장에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우니 남 보기에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총괄적인 성격이라고 나는 믿는다. 느낌과 감에는 경험과 기억, 잘되고자 하는 인간적 본능, 진화론에 입각한 인류의 지혜가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110쪽

"그, 그걸 말이라고 해? 공부도 안 끝난 애가 임신하면 어떡해? 그 애 인생은 어떻게 되고?"
"인생이 어떻게 되긴? 우리 아직 건강하겠다, 부모가 힘껏 도와줄 텐데 아기 키우면서 공부하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그런 걸로 사람 인생 안 망쳐. 그런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우울증이나 마약 같은 마음의 병이야. 그건 부모가 암만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잖아."
남편은 화를 낼까 말까 망설이는 눈치더니 결국 "그래, 당신 말이 맞아" 하고 대답했다.-118쪽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나를 우습게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무적으로 여겨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았다. 재미있게도 평소에 빠릿빠릿하게 잘 따라오는 학생들은 나와 비슷한 아이디어를 냈고, 평소에 이해가 좀 느린 학생들은 나와는 다른, 그러나 때로는 나보다 나은 아이디어를 냈다.-233쪽

졸업식 날 부모들은 그 말썽 많았던 수학 전공반의 평균 점수가 2점(미국식으로 B에 해당)이란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낙제 점수로 시작한 열등생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상위권의 성적을 낸 것이다. 또 이 사건에서 자칫 피해자가 됐을 수도 있는 우등생들은 협동 작업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창조적인 공부를 경험하고 좋은 점수까지 유지했다.-242쪽

‘능력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은 구별되어야 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일에 대한 의욕을 잃겠지만,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열심히 노력한다. 자칫 잘못하면 보조금을 받아 연명했을 사람도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244쪽

시험 볼 때 책, 참고서, 필기 노트를 사용해도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달달 외워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응용 능력을 묻는 창조적인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이다. 옆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는 시스템이랄까? 자율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공부와 연구를 하는 것은 치열한 경쟁 시스템에서 옆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246쪽

나는 나처럼 조금은 치사하고 비겁한 보통 사람도 자유와 자긍심에 빛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는 걸 고백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지구 저편에서 이미 그렇게 살고 있거나 또는 그렇게 살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격려를 받고 싶었다.-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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