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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 - 영악한 자본주의 뒤집기
전병길.고영 지음 / 꿈꾸는터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공정무역은 중도다. 그래서 좌파와 우파의 공격을 모두 받는다. 우파로부터는 시장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비판을 받지만, 좌파로부터는 현재의 잘못된 구조들을 바꾸지 못하고 제국주의의 잘못을 고착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120P
새로운 자본주의 위코노미란 ‘WE’(우리)와 'Economy'(경제)의 합성어인데, 파편화된 ‘개인’이 아니라 협력․참여․공생하는 ‘우리(We)'가 주인공인 자본주의를 말한다. 양극화와 같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우리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일종의 새로운 자본주의 실험이다. 전통적 자본주의가 무시해온 약자 배려, 환경보호 같은 사회적 가치를 자본주의 체제 안에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형태로 구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238P
대기업 토목공구장이었다가 지난달에 희망퇴직을 한 선배 K는 새 직장을 알아보는 와중에도 곧 있을 기술사 자격증 시험 준비에 하루 10시간 이상을 쏟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대입 수험생마냥 치열하고 진지한 자세가 대단하다 싶어 그 이유를 물었다.
“내 하루 일당이 얼만 줄 알아? 알면 허투루 못 보낸다.” 짐짓 자랑스레 늘어놓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K가 구직활동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전화기를 그렇게 초조해하며 바라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난 5월 1일자 신문에 ‘곡우에 4천600억 원짜리 단비 내렸다’는 기사가 실렸다. 4월 20일 경에 내린 비의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서 발표한 것이다. 오랜 봄 가뭄을 해갈한 단비이니 반가운 마음이야 더할 나위 없지만, 한편으로 돈 가치로 환산하지 않으면 실감하지 못하는 세태를 반영한 듯하여 씁쓸했다. 자연 현상을 상호 관계가 아니라 물적 가치로 해석한 이 기사는, 정작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보다는 자연스럽게 가뭄 해소를 위한 댐 건설의, 특히 그 막대한 건설비용의 당위성으로 연결되겠구나 싶었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라는 잣대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돈독이 올라서 돈 가치가 없는 것들을 무색무취무미하게 대하거나 일부러 돈으로 탈바꿈시킨다. 이기적인 자본주의는 사람을 단순히 탐욕에 젖는 정도가 아니라 어느 순간 사고를 정지시킨다. 눈가리개를 쓴 경주마처럼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게 되면, 다른 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리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주마는 폐기처분된다. (K선배는 자칭 ‘4대강 정비사업’을 맡을만한 기업에 가고 싶어했는데, 관련한 대운하 논쟁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 그가 경력으로 말하는 몇몇 도로는 중복투자 문제, 환경 평가 미비 등의 문제가 제기된 곳이었다. 하지만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에게는 열심히 일할 만한 곳 혹은 일한 증거일 뿐, 전혀 논의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물 경제가 아닌 데이터 상의 자료만 오고가는 ‘가상의 돈 잔치’인 미국식 금융정책이 세계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은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의 실체를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승자독식, 그러니까 ‘나만 위한 자본주의 사회’의 완성은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1999)’의 은유처럼 착각이고 허상이다. 일개 인터넷 논객의 입바른 소리조차 용납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강한 수면제를 찾아서 여전히 꿈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좌파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우파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지지한다. 그렇다면 이제 사회주의가 해답인가? 실제 삶은 영화와 달라서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중 하나를 선택하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실패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닌 선한 자본에 기초한 경제가 조금씩 기반을 다져가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선언한다.
이들이 말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키워드는 ‘우리(We)'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움직이며, 동시에 자본주의는 우리를 위해 공헌하는 공생․협력의 패러다임인 위코노미(‘WE’와 'Economy'의 합성어)를 주장한다.
위코노미라는 조잡하게 들리는 이 단어 조합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동저자인 전병길과 고영이 구호만 외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실증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실제 현장에서 위코노미에서 적용, 배양하고 있는 30대 젊은 활동가들이다.
기독교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청교도 나눔 정신부터 현재 박원순의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자본주의와 관련된 사례를 끌어 모은 백과사전이자, 현재 사회적 기업가와 SCG(전문가 재능기부 단체, Social Consulting Group)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실험 적용 중인 중간 보고서이기도 하다.
사회적 기업, 공정무역, 마이크로크레딧, 사회책임투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현재 활발하게 번지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사례를 한 데 모아 큰 틀로 묶어내어 위코노미의 개론서 역할도 충분히 해낸다.
다만 이들의 말하는 변혁이 공정무역의 중도적 입장에 대한 좌우파의 논란에서 보듯이 한계를 드러낸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한정지었다는 점, 저자들이 세세하게 모은 사례들이 호혜 정신에 바탕을 둔 나눔으로 이를 자본주의로만 규정할 수 있는가, 라는 점, 그라민 뱅크 등 몇몇을 제외하면 아직은 지엽적인 효과에 그쳤다는 점(이 역시도 도리어 자본주의의 고착화 비판이 유효한 지점이다)은 역으로 위코노미의 순항을 낙관하지 못하는 이유로도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열거한 사례들은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조짐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5년 동안 자료를 모아 3년 간 집필한 책 내용에는 출판되기 직전(2009년 4월 1일 초판)까지의 진행 사례는 물론, 저자 이전에 운동가인 이들이 참여하는 SCG의 올해와 내년의 목표가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다. 다시 말해 대안과 희망을 얘기하는 이 책의 1년 후 가치가 저자들의 노력과 성과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단순히 성과를 냈느냐를 가지고 이 책을 가치를 논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공산주의를 노동자를 선동한 이상주의라고 치부할 정도로 현실주의자인 그들의 결의에 일말 기대를 걸게 된다. 그나마 세계에서 경제 위기의 여파가 덜 하다는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배수진을 칠 정도로 다급하고 악화된 상황 탓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