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다이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서동시집의 내한공연은 그야말로 꿈의 무대였다. 8월 15일, 장소는 임진각 평화공원, 그리고 베토벤 <합창>교향곡 연주.  당시 바렌보임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들이 우리의 음악으로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남북한 국민이 함께 모여서 음악을 감상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한국 공연을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광복절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합창 소리를 들으며, 그날 임진각 평화공원에 앉아있던 관객들은 화합에 대해 생각해 봤음직하다.

<평행과 역설>은 이스라엘 출신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문학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5년에 걸쳐 나눈 대담을 담은 책이다. 스스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고 음악에 관한 에세이를 다수 써온 사이드는 바렌보임과 음악 관련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교육, 철학, 정치 등 여러 분야의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독일 바이마르에서 괴테 탄생 250주년 행사를 기획하며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바이마르 워크숍에서 처음 만난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젊은이들 사이에는 “아랍 음악은 아랍 사람만이 연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베토벤 음악은 독일 사람만 연주할 자격이 있다는 건가”라며 서로 다른 민족적 정체성 때문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베토벤 교향곡 7번을 함께 연주하며 하모니를 이루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하나가 된다. 바렌보임은 분쟁은 타자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며 중동국가 젊은 음악가들을 이끌고 오랜 기간 지휘를 해왔다.

    

 

바그너는 친 나치 작곡가일까. 바그너 곡 연주가 금지된 이스라엘에서 바렌보임은 왜 연주를 하려는 걸까. 바그너는 작곡과 오페라 대본을 직접 썼고 다수의 산문을 남겼다. 그는 “모든 유대인을 불태워버려라”라는 글을 썼던 반유대주의자였다. 바렌보임은 바그너가 “그의 오페라에서 유대인 등장인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반유대주의를 암시하는 장면이나 대사도 전혀 없다.” 그리고 “정말로 오페라에서 반유대주의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그는 숨기지 않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연주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1948년 바그너 음악에 대한 연주를 보이콧한 일부 여론을 비판하며 바그너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현세대들은 바그너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바렌보임이 바그너에게 열중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부분보다는 “음악적”인 이유가 컸다. 그는 바그너가 기존 오페라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음의 연속성을 기반으로 작곡했기에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바렌보임이 음악 작품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그는 베토벤의 교향곡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있기에 협주곡 5번 2악장을 연주할때 “어떻게 신성이 구현되었는지 매우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프랑스 혁명에서 영감을 받은 베토벤은 음악에서도 투쟁과 용기를 담으려 한 작곡가이다. 바렌보임은 “점점 세게 연주하다가 갑자기 여리게 연주”하는 기법은 고도의 연습을 요구하기에 연주자는 온 몸으로, 과감하게 투쟁하듯 곡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행과 역설>은 사이드와 바렌보임의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와 주관적인 해석이 담긴 책이다. 음악을 중심으로 사이드와 바렌보임이 나눈 대화는 다양한 이슈를 넘나든다. 국가 간 정치적인 분쟁 문제, 문학과 음악이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획일적으로 전문화 된 교육에 대한 숙고, 인간의 감정의 내적과정과 음악이 고립된 채 사회적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등.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기에 <평행과 역설>은 토론의 장으로 가져가기 좋은 책이다.

 

 

다만,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아니라면 바렌보임이 베토벤과 바그너의 작품을 음악 용어를 예를 들어 해석하는 부분에서  멈칫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렌보임은 일반 청중들이 아닌, 오랫동안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하고 사랑해 온 에드워드 사이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평행과 역설>에 언급된 음악을 감상하며 두 지성의 우정어린 대화에 천천히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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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8 00: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책 저도 좋아합니다
바렌 보임이 개인적인것(병든 아내 버린)을 떠나 유대인임에도 자신의 소신을 밝혀서,,,
가장 깨어있는 음악가라고 생각합니다.
2021년 빈필 신년 음악회때 바렌보임의 피아노 연주 노장임에도 훌륭했습니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지금 이순간이라고 ,,,

청공 2021-09-09 06:33   좋아요 1 | URL
뒤프레.넘 안타깝죠? 개인사와 작품을 연관지어 예술가를 평가해야할지, 분리해야 하는건지 늘 어려워요.바렌보임 올해 내한공연이 취소된 거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스콧께서 신년음악회 관련 페이퍼를 쓰셨던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네요ㅎㅎ 워낙 글을 많으쓰셔서^^ 바렌보임 음반은 스콧님 페이퍼에 여러 번 올라온 것 기억나구요.^^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있다면, 지금 이순간˝에 밑줄 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