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곁에 없어서인지, 내가 나이를 급하게 먹고 있는건지. 나는 올 가을을 심하게 타고 있다. 여러 책을 번갈아 손에 들지만 잘 읽히지 않는다. 이럴 땐 홀로 기차여행이라도 떠나면 딱 좋을텐데.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자로 남아 책만 탐닉할 뿐이다. 길지 않은 템포에, 활력을 주는 책. 뭐가 있을까.

 

 

책을 손에 들고 당당히 걸어가는 책 표지 속 그녀. “할머니가 되어서도 책 모임을 할 수 있다면” 문구에 시선이 머물렀다. 책모임 중독자인 그녀는 얼마나 많이 책 판을 벌리면서 살아왔을까? 책 모임에서는 어떤 책을 읽어 왔을까? 그녀의 책모임을 엿보고 싶었다. 내가 나가고 있는 책모임에 끌어가고픈 아이디어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들었다. 나도 책 표지의 저자처럼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를 손에 들고 긴 산책길에 나섰다.

    

 

블로그 ‘글쓰는 도넛’을 운영하는 저자는 강의하고, 글을 쓰며, 15년 동안 책모임을 해왔다. 자서전읽기, 비평읽기, 영화와 소설 같이 읽기, 작가 전작읽기 등. 그녀가 진행하는 책모임은 다양했다. 저자는 책을 선정할 때 “모두에게 가장 좋을 만한 책”을 고른다. 하지만 가끔은 운영자가 탐했던 책, 혼자 읽기 버거운 책 또는 모임하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을 정하기도 한다.

    

 

저자는 책을 읽고 토론할 때 어느 한 사람 편을 들지 않는 균형있는 관찰자가 되고자 한다. 그래서 되도록 말을 아끼고  토론자들을 배려한다. “이런 말 해도 되나?”, “한 회원에게 편향된 마음을 노골적으로 보이면 다른 의견을 지닌 이가 말하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저자가 특별히 사랑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정미경 작가의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때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꾹 참고 입을 다물며  토론 상황을 지켜보는 그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자 자신의 의견을 억누르려고 애쓰는 모습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한번 마음에 꽂힌 책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안달을 낸다. <달과 6펜스>는 그녀에게 인생책이다. 100회이상 토론을 했는데도 여전히 이 책에 관련된 논제를 잘 만들고 싶어 애가 탄다. <달과 6펜스>가 지루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기도 한다. 권여진의 <봄밤>이라는 단편을 인상 깊게 읽고 ‘봄밤’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현재 2명. 앞으로 3명은 더 기다려 본단다.

    

 

영화비평가 정성일의 심야 방송을 들으며 비평세계에 빠져든 그녀. 그후부터 “나만의 경험”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하기 시작한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난 후 쓰고 토론하는 삶은 고스란히 그녀의 블로그에 남아있다. 그녀는 책에 관한 새로운 테마가 생각나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을 모은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독서토론을 오는 사람, 온라인으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고 사십 명이 넘게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다. 요즘은 글쓰기 모임이 많아졌단다. <카프카 일기>를 읽고 필사하기,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발췌하며 다시 작문하기, 독서일기 등. 그녀는 꾸준히 토론과 글쓰기에 관한 기획을 짜고 있다. 그녀가 다음 책을 낸다면, 아마도 글쓰기 모임에 관한 게 아닐까?

    

 

좀 더 재미나고 알찬 책모임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저자는 책선정, 논제 만드는 방법, 서평의 발췌까지 보여주며 책모임의 준비과정과 마무리인 글쓰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저자가 모임에서 치열하게 읽었던 책을, 현재 책모임을 하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우리도 읽어봐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녀가 오래도록 책모임을 이어 나가길, 새로운 책 친구를 만나길 바란다.

 

 

   

 

 

"집안일을 해도 너무 많이 했어. 책이나 읽을걸!" - P73

문학이란 다른 세상, 다른 민족, 다른 국가의 심정을 내부에서 그려주는 것이지요. 프랑스 혁명 시대 소설을 보면 그 시대 그 사람의 내면을 상상하게 해주는데, 그게 바로 문학이죠. 소설을 읽는 게 하나의 수단이고 글쟁이로서는 그런 힘이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에 많은 게 달려 있다고 봅니다. (서경식) - P258

어떤 일을 하는지, 결혼은 했는지, 나이는 몇인지보다 책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성별도 스펙도 나이도 묻지 않는 자유로운 익명의 섬, 책 모임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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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즈 2020-09-20 0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모임도 하는 저로서는 이 책이 반갑네요.
균형적인 진행과 관찰자적인 시선은 독서진행자의 가장 필요한 덕목일 겁니다. 공감이 가네요.
후기 덕분에 또 배웠고 내친 김에 책까지 구입해봐야겠습니다^^

청공 2020-09-20 21:45   좋아요 1 | URL
책 모임을 하고 계시는군요^^
같은 책을 읽더라도 서로 받아들이는게 달라서 여러 의견 나누는게 정말 재밌지요? 저희는 진행자가 따로 없어서 매번 다른길로 잘 빠집니다ㅎ 요책은 정말 술술 잘 읽힐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