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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랑지수 1
옌쩐 지음, 박혜원 외 옮김 / 비봉출판사 / 2003년 7월
평점 :
이 책은 사회주의 중국의 개혁개방기 이후의 사회상을 다룬 세태소설이다. 지대위라는 이상주의적 지식인이 이전투구와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세태에 부딪치고, 좌절하고, 적응해가는 줄거리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세태비판소설이면서 세태보고소설이기도 하다. 지대위란 인물을 굴복시키고, 타락시키는 염량세태의 실상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그 자체로 현실 비판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지대위가 이상주의자에서 멀어지는 과정 또한 그 현실타당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개혁개방기 중국은 국가가 일원적으로 지배하고, 또 국가로 모든 것이 수렴되는 사회주의 관료제와 자본주의적 시장이 혼재되어 공존한다. 중국인들의 생활은 관료적 조직구조에 따라 결정되고, 위계관계는 시장에 의해 보완되거나, 역전된다. 얼핏 모순적이기도 한 사회주의적 관료제와 시장은 중국인들의 생활수준과 인간관계를 좌우하고,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동물적으로 반응하며 관료제와 시장이 혼합되어 있는 세태에 적응한다.
이 책에서 생활수준과 인간관계, 이해관계 등은 사소한 문제들을 누적시키고 마침내는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생존의 과제를 부여한다. 책의 말미에 정리되어 있는 처세훈의 하나인 ‘벌레똥도 계속 쌓이면, 거름 한 통이 된다’는 경구는 실로 다양한 차원에서 압박받는 인간의 조건을 설명한다. 이를테면, 엘리트 지식인 지대위는 염량세태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면서 지위하락을 경험한다. 승진에서 밀려나고, 한직으로 쫓겨 가고 등의 명시적인 문제들은 차치하더라도, 사무실에서의 책상배치, 윗사람과의 악수순서, 아파트의 배정, 병원치료, 유치원 입학 등등의 쪼잔한 것이 분명한 일들은 일일이 관료적 위계와 시장이 보완적으로 작동하여 이뤄진다. 그것은 당장에 장모와 한방을 써야하며, 임신한 부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원거리 출퇴근을 계속해야 하며, 화상을 입은 아이가 치료받지 못하는 등의 기본적인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겪는 숱한 모멸감은 자존감을 형편없이 짓밟는다. 그야말로 빗방울이 콘크리트벽의 구멍을 내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정치체제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의 공존이라는 현대 중국사회는 적자생존의 경쟁이 펼쳐지는 정글이며, 복마전이다. 관료제와 시장에 의해서 이뤄지는 자원배분은 실상 음모와 협잡이 그 작동원리이며, 사회주의 중국의 이상인 민중주의와 자본주의의 핵심원리인 개인의 능력발휘는 음모와 협잡의 포장에 불과하다. 개혁개방기 중국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것은 무차별적이고 절제되지 않는 개인의 이해관계이고, 생존이다.
하방당해 산촌에서 쓸쓸히 죽어간 아버지를 비롯하여, 공자, 굴원, 두보 등의 옛 성현의 말씀을 아로새기며 살던 지대위는 마침내 염량세태에 항복하게 되고 지대위의 이상주의는 굴절된다. 이름을 남긴 옛 성현은 하나같이 지조를 지키는 대신, 현세의 생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었고, 생존을 위협받는 지대위는 끊임없이 갈등한다. 지대위는 현실의 압박에 위협받으면서도, 체화된 이상주의를 포기하지 못하고, 순간순간 현실의 치사함과 비정함에 치를 떨지만, 생존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한다. 사실 생존의 유혹은 유혹이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다. 인간은 그것에 동물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고, 바로 거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지대위의 타락과 굴복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소상하고 면밀하게 설명되고 있는 이러한 딜레마 덕분이다.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이른 나이에 청장의 지위에 오른 지대위는 종국에 자신을 ‘승리한 실패자이자, 실패한 승리자, 고결한 속물이자 세속적인 군자’로 자임한다. 그는 아버지가 탐독하던 성현의 일생이 담긴 책을 태워버리면서, 현실세계의 진상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고, 신성함, 궁극, 형이상학적 세계와 결별한다. 그러나 지대위는 생존이야말로 유일한 진실이라면서도, 그 잔혹한 진실에 격파당했다는 아픔을 느낀다. 사명의식과 책임감, 이름을 남기겠다는 것을 허망한 환상, 불가능성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강요된 허무주의로 받아들인다. 끝내 그에게 신념과 절개라는 아버지의 진실은 불살라지면서 신성함을 획득하여 생존이라는 진실과 양립한다. 딜레마는 계속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창랑지수](창랑에 물이 맑으면 갓끈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 흐리면 발 씻으면 되지)는 굴원의 [어부사]에서 따온 것이다. 일찍이 명망을 얻은 굴원은 정치적 갈등 끝에 유배와 추방을 거듭하며 전락하고, 굴원이 탄 배의 노를 저어주던 어부가 바로 굴원에게 현실의 잔혹한 진상, 혹은 이상주의적 관념의 덧없음을 충고한다. 중국인들의 현실주의는 기원전인 전국시대의 고사로 소급된다. 개혁개방기 중국의 당대사회와 군상들을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그려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과 처세라는 키워드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것이기도 한 것이다.
처세라 함은 그 사소한 벌레똥의 문제들을 다루는, 얄팍하고 가식적인 기술로 인식된다. 반면에 거대 형이상학인 철학은 진정성이 듬뿍 배어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사람들과 사귀며 살아가는 것’이란 처세의 사전적 의미가 말해주듯이, 처세와 철학 모두 잘 살기 위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관념만을 먹고 살 수는 없는 존재이고, 물질적인 차원은 물론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소하고 작은 문제들에 자존감을 훼손당한다. 생존은 이렇게 다양하고 복합적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처세는 오히려 형이상학이 무용한 곳에서 발휘된다. 엄밀히 따지고 들면 일차적인 것은 처세이고, 형이상학은 부차적이며, 벌레똥이 쌓이듯 누적된 처세는 형이상학을 넘어서지만, 거대 관념은 처세에 무력하다.
하여 ‘인간관계에 대한 천기누설의 책이자 처세의 비법이 담긴 책’이라는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빈말이 아니다. 이 책에서 그려지고 있는 오만군상들의 인간관계는 아무도 발설하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모이는 곳이면, 자잘한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미묘한 권력관계가 발생한다. 사람은 그러한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권력관계로부터의 자유는, 신분제로부터의 자유가 굶어죽을 자유와 등치되는 것과 유사하다. 처세란 사람사이에서 살아가는 일을 일컫는 것이고, 결국 인간은 갖가지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처세의 지혜는 그러한 모순을 끌어안는 것에서 발휘된다. 현실의 잔혹함과 이상주의적 관념은 어느 것도 배타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지대위가 도달한 '실패한 승리자, 승리한 실패자, 고결한 속물, 세속적인 군주’는 모순과 긴장으로 헤쳐가야 하는 처세의 한 경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