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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
다부사 에이코 지음, 윤지영 옮김 / 이마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그녀는 과민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게다가 기까지 세서, 주변인들을 피로하게 만드는 엄마에게서 태어났다. 그녀는 하필 엄마의 ‘드센’ 성정을 닮지 않아, 엄마의 간섭과 기세에 무기력하게 시달리며 자괴감과 위축감에 빠져 성장하게 된다. 엄마와의 관계가 실패한 것은 그녀에게 원체험으로 남아 일상의 숱한 국면마다 시종 그녀를 압박하고 흔들어놓게 되고, 엄마에 대한 적개심은 무럭무럭 부풀어올라, 결국 엄마, 부모와의 결별, 절교를 선언한다.
엄마와 딸, 엄마와 자식, 부모와 자식, 가족이라는 내밀하고 끈끈한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균열을 디테일 돋게 그려내는 이 만화의 독특함은 엄마의 입장이 설명되며 엄마를 이해하게 되거나, 엄마를 미워하고 거부하는 감정의 벽이 허물어지며 화해에 도달하는 가족 서사의 문법을 극딜하는 데 있다.
이 만화의 서사에서 엄마라는 사람은 그녀를 간섭하고 통제하고 지배하는 압제자의 모습으로만 그려지고, 그녀는 엄마에게서 따뜻한 감정을 1도 반추하지 않는다. 엄마는 과민하고 자기 감정에 사로잡혀 일방적으로 주변인들을 학대하는 까칠한 여자이기도 하지만, 세상물정을 잘 이해하고, 세세하고 사려깊고 또 균형감 있게 상황을 준비하고 정리해가기도 하는 평균적이고 깍듯한 사람이기도 한데, 그녀에게는 그 모든 것이 압제와 핍박, 상처와 좌절로 기억된다.
결국 엄마에게서 도망치기, 엄마에 대한 증오를 실천하기 등으로 자기 내면의 공간을 확보하고 평화를 얻고자 하는 그녀의 서사는 ‘사랑이 꽃피는 나무’가 아닌 ‘증오와 상처가 꽃피는 나무’로서 가족의 속살을 까발긴다.
엄마와 자식, 가족이라는 제한된 관계만이 아닌, 여러가지 차이로 권력관계가 형성되거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규정되는 인간관계의 어떤 국면에 대한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내 안에 숨어 있는 악마와 패배자의 두 얼굴을 마주하게 하기도 하는 이 서사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삑사리와 상처로 점철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발이자 거울상이다.
상처받은 영혼의 처절한 고발서인 이 만화는 우리로 하여금, 부정의 문법, 즉 헤어지고 포기하고 끊어버리고 그럼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는 단절의 힘을 생각하게 한다. 기실 우리는 얼마나 뜬금없는 화해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기만하고 퇴행하고 있는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부정하고 부정하고 또 헤어지고 포기하고 버리고 끊고 멀어져야 하는 것은 불가항력이자 또 하나의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