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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또노미아 - 다중의 자율을 향한 네그리의 항해 ㅣ 아우또노미아총서 1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03년 10월
평점 :
조정환이 쓴 『아우또노미아』는 포스트맑스주의로 지칭되는 이론가 중의 한 명인 네그리에 대한 해설서이다. 세계 최초로 네그리를 일괄하는 해설서라는 일설에 부합하게도 야심차고 방대하며 현란한 네그리 이론을 분과이론 별로 나누어 정리하는 한편, 해설서가 갖게 마련인 요점정리 위주의 약점을 피하며 네그리 이론의 풍부함과 현란한 수사들도 고스란히 살려내 네그리의 독특함만큼이나 독특한 해설서가 되었다.
네그리는 맑스주의의 경제결정론적인 성격을 배격하고 역사적 유물론의 역동성과 계급투쟁을 부각시키며 맑스주의를 혁신한다. 그의 맑스주의는 여타의 포스트맑스주의와 유사하게 현란하고 난해한 개념들을 구사하면서도 시종 현장의 투쟁과 맞닿아 있다. 그는 투쟁을 중심으로, 또 투쟁을 이론화하면서도 독자적인 자본주의론, 정치이론, 윤리학 등을 체계적이고 깊이있게 구축하며 방대한 사상체계를 세운다.
어떤 이론이든지 마찬가지이지만, 네그리는 특히 좌파운동사적 맥락, 좌파이론사적 맥락에서만이 이해될 수 있다. 실로 네그리 이론의 탁월함은 기존 좌파이론과 운동의 한계, 맹점을 지적하며 다방면에서 좌파이론을 혁신한 데에 있다. 자율(autonomia)이라 명명된 네그리 이론은 기존의 운동이 관료제(노동조합)와 국가주의(당)로 수렴되거나, 전위와 대중의 이분법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넘어서며, 억압과 착취를 타개하는 다양한 개인들의 자기가치화와 운동 자체로 설명된다.
기존 좌파이론들을 비판하는 네그리는 새로운 만큼이나 도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좌파 이론 진영의 집결체라 할 수 있는 맑스꼬뮤날레에서 2년 연속으로 네그리를 쟁점으로 두고 토론을 벌였다는 사실은 지금 네그리가 매우 민감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네그리를 두고 벌어지는 첨예한 논쟁은 네그리의 도발이 일정하게 동의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기존 이론의 혁신을 모색하는 네그리의 문제의식은 네그리와 상관없이도 존재해왔으며, 누군가 하고 있고, 해야 했던 일을 네그리는 멋들어지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역설은 활력, 자율 등으로 개념화되며 기존 이론의 경직되고 도식적이며 교조적인 성격을 비판하는 네그리의 생동감 넘치는 입론이 네그리안들에게는 경전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조정환이 대표적으로 자칭타칭 네그리안들은 정통좌파들이 맑스레닌주의의 체계에 현실을 끼워맞추듯이 하나부터 열까지 네그리 없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의 초국적화 경향과 다양하고 이질적인 주체들이 부각되는 현실에 대한 설명력의 공헌과 성과는 네그리를 모르고는 좌파 행세를 할 수 없다는 속설이 말해주듯이 공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네그리의 한계와 약점에 대한 비판은 자본의 주권화가 노동의 활력화로 전화되듯이, 네그리의 올바름과 완벽함으로 전화된다. 화려한 개념과 수사는 네그리를 편향적으로 옹호하는데 더없이 적합하게 사용된다.
그것은 방대하고 야심찬 만큼이나 보편성을 지향하는 네그리 이론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론전개와 계급투쟁의 절합이라는 면에서 탁월한 성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네그리 이론은 자가발전적이며 자기완결적이다. 네그리는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자기 이론을 수정하고 갱신해가지만, 이론적 전제로 현실을 설명하고 그것으로 다시 이론을 강화해나간다. 또 난해하고 현란한 철학적 개념과 수사들은 이론의 관념성을 과시한다.
자율과 활력 등의 개념은 개인의 행위 차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구체적이면서, 심도깊은 철학적 논의로 전개되어 추상적이다. 주권과 계획이라는 과거의 기획의 한계에 대한 적확하고 신선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율은 영원하다라는 명제가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