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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 물신 숭배의 허구와 대안 - 카이에 소바주 3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4년 8월
평점 :
이 책의 부제는 ‘물신숭배의 허구와 대안’으로 경제적 합리성이 지배하고 교환의 원리가 물상화되어 숭배되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고 새로운 삶의 원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특이한 것은 대개의 자본주의 비판서가 경제학, 정치철학, 사회이론 등을 다루는 데 비해 이 책은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라는 시적이고 추상적인 제목으로 신화적 마인드의 회복을 주장한다.
철학자이며 종교학자인 나카자와 신이치는 일본의 근대소설과 볼테르, 동굴벽화, 신화, 인류학, 양자역학, 마르크스와 라캉 등을 넘나들며 경제원리의 원형적(신화적) 구성과, 교환의 원리가 부상하고 화폐가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독특하게 밝혀낸다.
저자는 합리성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와 비합리적이며 불확정적인 감정의 교호관계를 나타내는 사랑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욕망에 의해서 움직이는 한 덩어리의 것이었다고 말한다. 경제는 교환과 더불어 인격성이 배어있는 사물들을 주고받으면서 형성하는 증여, 쌍방간의 증여의 동등성이 허물어지고 비대칭적이며 불확정적인 힘과의 관계를 다루는 순수증여로 구성되어 있다. 증여를 기반으로 한 교환이 증여를 변형하고 부정하면서 지배원리로 부상하고 사랑과 경제는 배타적인 관계가 된 것이다.
모스의 증여론을 확장하며 개입시킨 순수 증여의 원리는 단순한 인격적 힘이 아닌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영력으로 작동하며, 그것은 곧 자연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생명력에 대한 신화적 사고이다. 교환과 증여, 순수증여가 분리되지 않고 변형되지 않았던 시대의 부는 자연으로부터 얻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증식과 소멸의 개념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고, 생명의 순환과 관계있는 것이었다. 화폐가 발생하기 이전의 고래의 부의 증식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며, 그것은 곧 가치의 원천이 땅이라는 중농주의로 이어진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관계를 지배하는 교환의 원리가 아닌, 증여와 순수 증여의 원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리적이고 고정된 화폐에 의한 관계가 아닌 비합리적이고 불확정적인 인격적 유대에 바탕한 관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사랑과 경제가 하나가 되는 길이다.
재밌는 것은 라캉의 ‘보로메오의 매듭’의 도식을 원용하여 교환과 증여, 순수증여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정신분석학에서 밝힌 인간의 마음의 구조와 경제적 관계의 구조가 동일하고, 쾌락과 부의 증식도, 기독교의 삼위일체도 같은 원리에 의해서 설명된다. 이것은 인간이 이뤄낸 모든 것이 신석기 시대에 이미 원형적으로 잠재해 있었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근대적 분과학문은 물론 신화와 동굴벽화 등을 넘나들고 시대와 공간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박학함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다분히 자의적이고 엄밀하지 못하다. 각각의 경제현상과 그것에 대한 해석, 의미들은 국지적이고 역사적인 것들이고 시대와 공간에 따라서 제약되는 것인데 비해, 저자의 사유는 종횡무진 거친 비약과 단순한 도식을 오간다. 현란하고 전방위적인 논리의 전개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이기 보다는 지적 영감, 상상력의 산물에 불과해 보이는 것이다.
사실 영성과 자연이 배제된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고, 모든 것을 교환의 대상으로만 규정하는 경제적 합리주의 또한 무수한 비판으로 인한 상처투성이이다. 이런 가운데 자본주의의 핵심인 교환의 원리를 적대하고자 하는 저자의 사유는 독창적이고 신선하면서도 원론적 주장과 현란한 지적 유희 이상의 통찰력과 설득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